[인권 이슈 확대경] 국가인권위원회의 학교 내 휴대전화 일괄수거 인권침해 기각 결정

2025-04-30

[인권 이슈 확대경]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안창호)가 7일 개최된 전원위원회에서 휴대전화 일괄 수거 관련 진정 사건을 "인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연합뉴스


학생인권의 오래된 주제이자 가장 널리 알려진 문제는 학생인권조례가 2010년 경기도에서 처음 제정되면서 제기된 두발, 복장의 자유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휴대폰의 전국민적 보급과 스마트폰의 일상화에 따른 학교 내 휴대폰 사용 찬반 여부가 아마 시민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주제일 것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일관되게 학생 두발, 복장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해 왔고 학교내에서 휴대폰을 강제 수거하는 교칙에 대해서도 학생 인권침해라고 판단해 왔습니다.

그런데 국가인권위원회 안창호 위원장이 지난해 취임한 이후 10월 전원위원회 첫 의결에서 중·고교에서 등교 시 휴대전화를 일괄 수거하는 조치는 '인권침해가 아니다'라고 결정했습니다. 

인권위는 지난 10년간 학교의 휴대폰 강제수거를 학생 인권침해로 판단해 왔는데 이번에는 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인지 문제점은 무엇인지 시간은 조금 지났지만 중요한 문제라서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Q) 성인도 마찬가지겠지만 중고등학교 학생의 휴대폰은 이제 거의 신체의 일부가 된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런만큼 휴대폰 사용에 대해서 가정과 학교에서 갈등도 많은 것 같습니다. 이번 인권위의 결정 이전에 국가인권위원회가 학교의 휴대폰 수거를 인권침해라고 판단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국가인권위원회는 작년 10월 이런 결정을 하기 불과 5개월 전인 2024년 5월에도 휴대전화 소지를 전면 제한하는 학교생활인권규정을 개정하도록 권고했습니다. 그 이유는 교육적 목적으로 학교 내에서 학생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제한할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수업시간 등 교육활동 중에만 그 사용을 제한하고 휴식시간이나 점심시간에는 사용을 허용하는 등 학생들의 기본 권 침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을 고려하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학생의 휴대전화 소지를 금지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은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지역의 대부분 조례에도 명시되어 있습니다. 우리 지역인 충남의 경우 학생인권조례 11조(정보접근권) 3항에 “학교의 장은 학생의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 소지를 금지해서는 안 된다. 다만, 학교의 장은 교육활동의 원활할 운영 및 학습권 침해의 방지를 위하여 학칙으로 전자기기의 소지 및 사용범위를 정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학생인권조례 규정에는 그동안 일관되게 학생의 휴대전화 소지를 전면 금지해서는 안 된다고 해 왔습니다. 다만 수업시간 및 교육활동의 방해가 되는 경우에는 학칙으로 어느 정도 제한을 할 수 있다고 권고해 왔습니다.

중고등학교를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세종시에서 보낸 제 큰 아이의 경우에도 휴대전화는 학교에 자유롭게 가져갔습니다. 다만 등교하면 전원을 껐다가 집에 문제집이나 다음날 준비물이 필요한 경우 카톡이나 문자를 점심시간이나 휴식시간에 자주 보내왔습니다. 현재 중학생인 둘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Q) 지난 10년 동안 인권위는 학생이 학교에서 휴대전화를 아예 사용하지 못하거나 전면 수거하는 규정은 안된다는 권고를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는 말씀인데 그러다 작년 10월 전원위원회에서 왜 갑자기 휴대전화 일괄수거를 인권침해가 아니라고 한 겁니까?

인권위는 2014년부터 2003년까지 관련 진정 307건에서 일관되게 ‘인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왔습니다. 교사의 교육권 및 학생의 학습권보다 학생의 자유가 침해되는 피해가 더 크다고 본 것이죠. 2023년 7월에도 일과시간 중 학생들의 휴대전화를 수거하는 규정이 인권침해적이라고 판단해 해당 규정의 중단을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인권위는 지난해 10월 7일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전남의 한 고등학생이 2023년 진정한 ‘고등학교의 휴대전화 수거로 인한 인권침해’ 안건을 비공개로 심의하고 표결을 거쳐 8:2로 ‘기각’ 결정을 내렸습니다.

안창호 인권위원장, 김용원·이충상·한석훈·김종민·이한별·김용직·강정혜 위원이 기각 의견을 냈고 남규선·원민경 위원이 기각에 반대했습니다.

아동 인권침해 문제를 다루는 아동권리위원회(아동소위) 위원장인 이충상 위원은 관련 안건을 지난해 5월 전원위에 올리며 “중고등학교에서의 휴대전화 수거와 보관은 장점이 단점보다 적지 않고 피해 최소성을 위반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인권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안창호 인권위원장도 학칙 자체가 인권침해라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이번 결정이 다른 진정 사건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 결정문을 신중하게 작성해 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인권위는 통상 인용된 안건에 대해 결정문을 작성하는데, 이 결정문은 관련 안건의 조사 근거로 삼는 결정례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하나 기각된 사건에 대해서는 보통 결정문을 작성하지 않지만, 인권위는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이례적으로 결정문을 작성할 때 인용을 주장한 두 상임위원의 소수의견을 넣어서 작성했다고 합니다.

제가 인권위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확인했는데 아직까지도 결정문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Q) 말씀하신 설명을 들어보면 지난 10년간의 인권위 권고가 일관되었는데 지난해에 갑자기 바뀐 이유가 명확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뭔가 대내외 학생인권 환경이 바뀐 것도 아니구요. 그렇다면 왜 이런 결정이 내려진 것일까요?

일단 유추해 볼 수 있는 판단 근거는 인권위원회 안창호 위원장부터 상임위원, 비상임위원까지 전체적으로 보수 극우화되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서 기각 결정을 내란 8명의 위원 대부분이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던 인권위의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옹호 논란이 된 지난 2월10일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 극복 대책 권고의 건’에 대해 찬성 의견을 낸 위원들입니다.

앞서도 2024년 5월에도 휴대전화 소지를 전면 제한하는 학교생활인권규정을 인권위가 개정하도록 권고했다고 말씀드렸는데 사실 그 학교는 인권위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인권위가 지난 10년간 학생의 학내 휴대전화 전면 금지가 인권침해라고 권고를 내렸지만, 사실 학교 당국의 인권위 권고 불수용율은 상당히 높았습니다. 2020년 서울시교육청에서 발표한 '제2차 서울학생인권 실태조사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 지 10년이 되어 가던 당시에도 중학생 86.3%, 고등학생 49.2%가 학교 내에서 휴대전화를 일괄 수거하거나 소지가 금지된다고 응답했습니다. 즉 인권위의 권고와는 별개로 학교 현장에서는 학생들의 휴대폰을 일괄 수거하거나, 자의적으로 압수하는 등의 일은 꽤 많았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학생들의 학교 내 휴대전화 일괄 수거를 인권침해가 아니라고 판단한 인권위원회의 결정은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Q) 하지만 교사 학부모들은 학생들의 과도한 휴대전화 사용에 대해 걱정하시면서 뭔가 제재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것 같은데 뭔가 해결책은 없을지 궁금합니다.

기본권 제한의 일반적·헌법적 원칙인 '과잉금지의 원칙'을 기준으로 그동안의 학내 휴대전화 이용에 대한 원칙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기본적으로 학생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고 사용하는 것은 통신의 자유에 해당하므로 함부로 침해되어선 안 됩니다. 다만 합리적인 목적과 이유가 있다면 필요한 범위에서 적절한 절차로 만든 규칙에 따라 제한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육활동에 방해가 되지 않게 수업 시간에는 휴대폰을 무음으로 설정한다든지, 사용해선 안 된다는 식의 규칙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에 휴대폰을 갖고 오지 못하게 하거나 소지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과도하며, 휴대폰을 함부로 압수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 학생인권에서 말하는 정보접근권의 취지인 것입니다.

지난해 10월 7일 국가인권위 전원위원회에서 휴대전화 일괄수거에 대해 인권침해라는 소수의견을 낸 남규선 상임위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권위는 그동안 전면적으로 금지하기보다는 토론을 통해 규율을 정하고 이를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본인의 욕구와 행동을 통제·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교육기관으로서 보다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강조해 왔다”고 반박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영화관, 공연장, 일터, 교회 등에서 휴대전화 사용에 대한 강제적 규칙이 아닌 누구나 공감하고 이해하는 문화를 만들어왔고 또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휴대전화 사용문화를 만들어가는 학교도 꽤 있습니다.

강제적 규율이 아닌 서로의 약속에 기반한 휴대전화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교육의 장인 학교의 역할이 아닐까 싶습니다. 


- 위 내용은 대전충남인권연대 이상재 사무국장이 출연한 4월 8일 대전KBS대세남 ‘감시자들’ 코너를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