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이상재(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유령의 시간 책표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독립운동에 삶을 바친 숙부를 존경하며 그 삶을 따르고자 했던 젊은이 ‘김이섭’이 있었다. 타고난 약골 체질과 집안의 가난에도 일본 유학까지 가서 공부하며 당시의 지식인 다수가 관심을 보였던 사회주의자가 된다.
마음에 맞는 여성을 만나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아이 셋을 낳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잠시였고 사회주의 진영에 속해 있던 이섭을 해방의 혼란과 한국전쟁은 가만 놔두지 않는다.
전쟁의 혼란 속에 남자는 가족을 찾으러 남에서 북으로, 다시 남으로 온 사이 아내와 세 아이는 북으로 가면서 영원한 이별을 맞는다.
이섭은 남쪽에 홀로 남아 가문 어른들의 반강제 권유로 다시 아내를 얻고 아이 넷을 낳아 가늘지만 거칠게 삶을 이어간다.
줄거리만 보면 여느 분단체제론 소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소설은 대산문학상 선정 사유의 한 줄처럼 작가의 역량에 기대어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가 지나간 자국에 담긴 개인의 고통과 진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우리 현대사가 서둘러 앞으로 나가면서 진실, 진정성 따위를 등 뒤에서 흘릴 때 그것을 조용히 수습하는 문학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소설은 이섭과 두 번째 결혼에서 얻은 딸이자 작가의 분신인 ‘지형’의 시각에서 주로 전개된다.
이섭의 시각은 첫 번째 가족을 잃어버렸다는 자책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두 번째 가족을 제대로 건사하기 위해 분투하는 사회주의 전력자의 생활묘사가 주를 이룬다.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제, 주변인의 삶까지를 다루는 지형의 서술은 작가가 소설을 쓸 때 책상 앞에 붙여놓았다던 ‘미화하지 말자’를 그대로 따랐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양보할 수 없었다던 “그(아버지)는 내게 인간은 사랑하고 신뢰해야 하는 존재라는 걸 가르친 사람이었다.” 또한 충실하게 반영된 것 같다.
사회주의 전력 때문이라지만 변변한 돈벌이를 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자식에게 불만과 실망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데, 지형의 아버지에 관한 서술에서 그런 평가는 찾기 어렵다.
잘난 남과 북, 두 정권의 아집 때문인지 이제는 영원히 볼 수 없는 전설이 되어버린 것 같은 남북 이산가족 행사를 볼 때마다 구구절절한 사연과 당사자들의 슬픔 때문에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헤어진 사연이야 각기 다르지만, 남북 이산가족의 공통점은 헤어질 당시에는 모두 길어야 몇 달 정도면 다시 볼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생이별을 한 것이기에 당사자가 가진 고통과 슬픔은 측정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섭이 북에 있는 아내와 자식을 그리는 장면과 무너져 내리는 심리묘사는 자칫 상투적인 것이 될 수도 있었는데 그리 다가오지 않는 것은 작가가 아버지를 옆에서 지켜봐왔던 현장감과 그걸 풀어낸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헤어짐의 원인이 죽음이라면 재회가 불가능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리움은 언젠가 옅어질 수 있다. 하지만 지구상 어딘가에 소중한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뒤틀린 삶 속에서도 희망이라는 ‘고통’을 키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딸이 사회주의자 아버지를 그리는 비슷한 플롯으로 전개되는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떠올랐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생활력은 없지만 사회주의가 인간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사상이었음을 믿고 주위 사람에게 실천하는 아버지의 묘사는 두 소설이 비슷하다.
다만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아버지는 유물론자와 사회주의자를 시종일관 내세우고 주변 사람들도 다 알며 옛 동지들과 교류도 한다. 반면에 ‘유령의 시간’에 나오는 아버지는 이산 가족의 아픔을 낙인처럼 지니고 살아가며 자신의 사회주의 경력을 주변과 전혀 나눌 수 없는 처지이기에 외롭고 고통스럽다. 두 소설 속 아버지가 놓인 환경의 차이는 소설의 분위기를 상반되게 한다. 분위기는 상반되지만 두 소설 모두 잘 쓰인 소설이고 평가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책을 잡고 새벽까지 단숨에 읽었다.
마지막 ‘편지’ 내용에서 눈물이 나왔다.
*이 책은 2015년 실천문학사에서 펴낸 책을 교유서가에서 이번에 다시 개정판으로 냈다고 한다. 좋은 소설을 다시 펴낸 눈 밝은 출판사에 감사드린다.
*스포일러처럼 책 내용의 일부를 적었는데 읽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 소설 속 내용은 훨씬 더 기구하다. 그러기에 읽어봐야 안다. 더 중요한 것은 소설을 끌고 가는 작가의 역량과 아버지를 그리는 작가의 진정성이 핵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유령의 시간 뒷표지
이 글은 대전충남인권연대 이상재 사무국장의 블로그에도 실린 글입니다.
https://blog.naver.com/tjtong/223605411713
글_이상재(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유령의 시간 책표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독립운동에 삶을 바친 숙부를 존경하며 그 삶을 따르고자 했던 젊은이 ‘김이섭’이 있었다. 타고난 약골 체질과 집안의 가난에도 일본 유학까지 가서 공부하며 당시의 지식인 다수가 관심을 보였던 사회주의자가 된다.
마음에 맞는 여성을 만나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아이 셋을 낳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잠시였고 사회주의 진영에 속해 있던 이섭을 해방의 혼란과 한국전쟁은 가만 놔두지 않는다.
전쟁의 혼란 속에 남자는 가족을 찾으러 남에서 북으로, 다시 남으로 온 사이 아내와 세 아이는 북으로 가면서 영원한 이별을 맞는다.
이섭은 남쪽에 홀로 남아 가문 어른들의 반강제 권유로 다시 아내를 얻고 아이 넷을 낳아 가늘지만 거칠게 삶을 이어간다.
줄거리만 보면 여느 분단체제론 소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소설은 대산문학상 선정 사유의 한 줄처럼 작가의 역량에 기대어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가 지나간 자국에 담긴 개인의 고통과 진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우리 현대사가 서둘러 앞으로 나가면서 진실, 진정성 따위를 등 뒤에서 흘릴 때 그것을 조용히 수습하는 문학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소설은 이섭과 두 번째 결혼에서 얻은 딸이자 작가의 분신인 ‘지형’의 시각에서 주로 전개된다.
이섭의 시각은 첫 번째 가족을 잃어버렸다는 자책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두 번째 가족을 제대로 건사하기 위해 분투하는 사회주의 전력자의 생활묘사가 주를 이룬다.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제, 주변인의 삶까지를 다루는 지형의 서술은 작가가 소설을 쓸 때 책상 앞에 붙여놓았다던 ‘미화하지 말자’를 그대로 따랐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양보할 수 없었다던 “그(아버지)는 내게 인간은 사랑하고 신뢰해야 하는 존재라는 걸 가르친 사람이었다.” 또한 충실하게 반영된 것 같다.
사회주의 전력 때문이라지만 변변한 돈벌이를 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자식에게 불만과 실망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데, 지형의 아버지에 관한 서술에서 그런 평가는 찾기 어렵다.
잘난 남과 북, 두 정권의 아집 때문인지 이제는 영원히 볼 수 없는 전설이 되어버린 것 같은 남북 이산가족 행사를 볼 때마다 구구절절한 사연과 당사자들의 슬픔 때문에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헤어진 사연이야 각기 다르지만, 남북 이산가족의 공통점은 헤어질 당시에는 모두 길어야 몇 달 정도면 다시 볼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생이별을 한 것이기에 당사자가 가진 고통과 슬픔은 측정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섭이 북에 있는 아내와 자식을 그리는 장면과 무너져 내리는 심리묘사는 자칫 상투적인 것이 될 수도 있었는데 그리 다가오지 않는 것은 작가가 아버지를 옆에서 지켜봐왔던 현장감과 그걸 풀어낸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헤어짐의 원인이 죽음이라면 재회가 불가능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리움은 언젠가 옅어질 수 있다. 하지만 지구상 어딘가에 소중한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뒤틀린 삶 속에서도 희망이라는 ‘고통’을 키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딸이 사회주의자 아버지를 그리는 비슷한 플롯으로 전개되는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떠올랐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생활력은 없지만 사회주의가 인간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사상이었음을 믿고 주위 사람에게 실천하는 아버지의 묘사는 두 소설이 비슷하다.
다만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아버지는 유물론자와 사회주의자를 시종일관 내세우고 주변 사람들도 다 알며 옛 동지들과 교류도 한다. 반면에 ‘유령의 시간’에 나오는 아버지는 이산 가족의 아픔을 낙인처럼 지니고 살아가며 자신의 사회주의 경력을 주변과 전혀 나눌 수 없는 처지이기에 외롭고 고통스럽다. 두 소설 속 아버지가 놓인 환경의 차이는 소설의 분위기를 상반되게 한다. 분위기는 상반되지만 두 소설 모두 잘 쓰인 소설이고 평가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책을 잡고 새벽까지 단숨에 읽었다.
마지막 ‘편지’ 내용에서 눈물이 나왔다.
*이 책은 2015년 실천문학사에서 펴낸 책을 교유서가에서 이번에 다시 개정판으로 냈다고 한다. 좋은 소설을 다시 펴낸 눈 밝은 출판사에 감사드린다.
*스포일러처럼 책 내용의 일부를 적었는데 읽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 소설 속 내용은 훨씬 더 기구하다. 그러기에 읽어봐야 안다. 더 중요한 것은 소설을 끌고 가는 작가의 역량과 아버지를 그리는 작가의 진정성이 핵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유령의 시간 뒷표지
이 글은 대전충남인권연대 이상재 사무국장의 블로그에도 실린 글입니다.
https://blog.naver.com/tjtong/223605411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