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매사추세추주 로렌스시에서 1912년 1월 12일 시작하여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파업 투쟁을 벌여 결국은 노동자가 승리한 파업의 시작과 마무리, 그 뒷이야기까지를 다룬 책이다.
1912년 매사추세츠 주 정부는 노동시간을 주 56시간에서 54시간으로 줄였다. 노동계급의 입장에서는 환영해야 할 조치였지만 문제는 섬유공장 공장주들이 줄어든 노동시간만큼 임금을 깍아 버린 것이다. 깎인 임금은 24센트, 당시 빵 세 덩이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고 한다.
열악한 노동환경에다 저임금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은 “임금이 적다, 임금이 줄었다!”는 외침과 함께 작업을 거부하고 파업에 돌입한다. 폴란드 여성 노동자들이 제일먼저 앞장섰고 당시 미국으로 이민 와서 노동하고 있던 51개국의 노동자들이 저마다 동조하여 뒤따랐는데 참가자가 금새 눈덩이처럼 불어나 1만명이나 되었다.
처음에는 지휘하고 조직하는 상급 노동단체나 지도자도 없었고 당연히 체계적인 계획도 없었다. 51개국에서 온 노동자들은 각기 자기 나라의 언어로 ‘파업’을 외치며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나중에 조직적인 파업 집회를 할 때도 10개의 언어로 번역을 해서 파업 군중들에게 알려야 했다.
이 책 <빵과 장미>의 가장 큰 장점은 전형적인 노동자 파업 투쟁기를 넘어 20세기 초반 미국사회의 모습과 노동자들의 현실, 도시의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도록 풍부한 사료와 자료를 들여 다양한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최대 공장 소유주였던 월리엄 우드에 대한 성장사는 물론 파업 이후 반전이 있는 뒷이야기까지를 전해준다.
로렌스 시가 19세기에 계획도시로 만들어질 때는 아름다운 전원도시를 지향하며 건설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거의 전 세계의 이주 노동자들을 도시의 저임금 단순 노동자로 엄청나게 받아들인 후 파업이 시작된 1912년경에는 도시의 모습이 처음 계획과는 완전히 딴판이 된다. 처참한 주거 환경과 아동까지 힘든 노동에 시달리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저자 브루스 왓슨의 상세한 묘사는 엥겔스가 쓴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에 나오는 영국 노동자들의 삶과 별반 다른 것이 없어 보였다. 이는 로렌스 파업이 빵 세 덩이 값 임금의 차이에서만 시작된 것이 아니라 단지 발화점일 뿐이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했다.

뉴욕에 도착한 파업 참여 가정의 아이들을 환영하는 행진(출처 - 알라딘)
로렌스 파업이 한 도시의 파업에 머물지 않고 미국 전역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계기는 파업으로 인한 궁핍으로 정상적인 양육이 힘들었던 가정의 아이들을 미국 전역의 지지자들 가정으로 보낸 사건이었다.
첫 아이들 100여 명을 맞은 뉴욕시에서는 수천 명의 군중이 모여 열광적으로 환영했고, 이런 모습은 이후에도 이어지며 당시 로렌스시 파업이 단순히 한 도시 노동자만의 고립된 파업이 아니라 미국 시민들의 따뜻하고 강력한 연대와 지지가 있었음을 뒷받침해 주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또한 당시 파업은 남성 노동자들의 투쟁뿐만 아니라 여성 노동자들의 활약도 두드러진 싸움이 있었음을 상세한 설명을 통해 입증하고 있으며, 민병대와 경찰의 숱한 폭력과 사설탐정의 조작 음모 속에서도 장기간 이어졌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200만 명의 조합원을 두고 있던 미국노동총연맹(AFL)은 백인 숙련 노동자들만을 위한 조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AFL은 당시 로렌스 파업을 주도하던 단순노동 저임금 노동자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세우고, 로렌스 파업을 외부세력이 개인된 폭동으로 치부하며 공장주 편에서 붙어 파업노동자들을 철저하게 외면한다. 반면 세계산업노동자연합(IWW)은 조지프 애터, 엘리자베스 걸리 플린, 헤이우드 등의 걸출한 노동운동가를 로렌스 파업 현장에 파견하여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을 성별, 국적, 기술직을 가리지 않고 회원으로 받아들였으며, 비폭력투쟁을 기반으로 하는 유연한 전술을 전개해 가며 노동자들의 신임을 얻는다.
20세기에 들어서며 대량투입, 대량생산의 시대로 접어든 미국 산업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미국노동총연맹(AFL)의 활동은 세계산업노동자연합(IWW)의 적극적인 투쟁 전개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100여 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우리나라 역시 노동의 양상이 다양해지고, 1912년의 로렌스 만큼이나 많은 나라에서 이주 노동자들이 들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의 노동조합의 활동 방향이 어떠해야 할지를 묻게 된다.
1912년 1월 12일 로렌스에서 벌어졌던 파업은 혹독한 겨울의 추위와 두 달이 넘는 기간, 수많은 공격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으로 승리했다. 그러나 이 기념비적인 노동자들의 승리는 곧바로 잊히고 만다.
1950년대 들어 공장들이 문을 닫은 이후 노동자들의 투쟁사는 바로 잊혔고 그 빈 공간은 IWW와 파업노동자들을 공산주의자와 폭력배들이라고 비난하고 매도하는 허위 사실로 메워졌다. 지역의 학교에서는 상당기간 동안 당시 어떻게 외부 세력이 도시를 장악하고 혼란에 빠뜨렸는지가 공식 사실인 것처럼 교육 시켜버리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시대를 막론하고 빨갱이와 좌파라는 덧씌우기의 효능은 막강한 것이었나 보다. 그렇기에 사실을 전달하는 이 책의 가치는 높다고 생각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어떤 시대에서든 노동은 지속될 것이고, 자본가가 존재하는 한 노동자도 존재할 것이다. 부당한 대우를 받는 노동자의 싸움도 계속될 것이기에 노동자 투쟁의 ‘오래된 미래’ 와 같은 의미로 읽었다.
노동에 대한 제대로 된 대가를 의미하는 '빵'과 문화를 즐기는 삶을 의미하는 '장미'는 당시 로렌스 파업에서 여성 노동자가 “우리에게 빵을 달라, 장미를 달라”라고 쓰인 피켓을 들었다 하여 ‘빵과 장미 파업’이라는 명칭을 얻었다고 한다.
그 명칭은 미국 시인 제임스 오펜하임의 시 ‘빵과 장미’에서 연유한 것인데 오펜하임 역시 당시 미국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접하고 지은 시라고 한다.

미국의 매사추세추주 로렌스시에서 1912년 1월 12일 시작하여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파업 투쟁을 벌여 결국은 노동자가 승리한 파업의 시작과 마무리, 그 뒷이야기까지를 다룬 책이다.
1912년 매사추세츠 주 정부는 노동시간을 주 56시간에서 54시간으로 줄였다. 노동계급의 입장에서는 환영해야 할 조치였지만 문제는 섬유공장 공장주들이 줄어든 노동시간만큼 임금을 깍아 버린 것이다. 깎인 임금은 24센트, 당시 빵 세 덩이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고 한다.
열악한 노동환경에다 저임금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은 “임금이 적다, 임금이 줄었다!”는 외침과 함께 작업을 거부하고 파업에 돌입한다. 폴란드 여성 노동자들이 제일먼저 앞장섰고 당시 미국으로 이민 와서 노동하고 있던 51개국의 노동자들이 저마다 동조하여 뒤따랐는데 참가자가 금새 눈덩이처럼 불어나 1만명이나 되었다.
처음에는 지휘하고 조직하는 상급 노동단체나 지도자도 없었고 당연히 체계적인 계획도 없었다. 51개국에서 온 노동자들은 각기 자기 나라의 언어로 ‘파업’을 외치며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나중에 조직적인 파업 집회를 할 때도 10개의 언어로 번역을 해서 파업 군중들에게 알려야 했다.
이 책 <빵과 장미>의 가장 큰 장점은 전형적인 노동자 파업 투쟁기를 넘어 20세기 초반 미국사회의 모습과 노동자들의 현실, 도시의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도록 풍부한 사료와 자료를 들여 다양한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최대 공장 소유주였던 월리엄 우드에 대한 성장사는 물론 파업 이후 반전이 있는 뒷이야기까지를 전해준다.
로렌스 시가 19세기에 계획도시로 만들어질 때는 아름다운 전원도시를 지향하며 건설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거의 전 세계의 이주 노동자들을 도시의 저임금 단순 노동자로 엄청나게 받아들인 후 파업이 시작된 1912년경에는 도시의 모습이 처음 계획과는 완전히 딴판이 된다. 처참한 주거 환경과 아동까지 힘든 노동에 시달리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저자 브루스 왓슨의 상세한 묘사는 엥겔스가 쓴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에 나오는 영국 노동자들의 삶과 별반 다른 것이 없어 보였다. 이는 로렌스 파업이 빵 세 덩이 값 임금의 차이에서만 시작된 것이 아니라 단지 발화점일 뿐이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했다.
뉴욕에 도착한 파업 참여 가정의 아이들을 환영하는 행진(출처 - 알라딘)
로렌스 파업이 한 도시의 파업에 머물지 않고 미국 전역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계기는 파업으로 인한 궁핍으로 정상적인 양육이 힘들었던 가정의 아이들을 미국 전역의 지지자들 가정으로 보낸 사건이었다.
첫 아이들 100여 명을 맞은 뉴욕시에서는 수천 명의 군중이 모여 열광적으로 환영했고, 이런 모습은 이후에도 이어지며 당시 로렌스시 파업이 단순히 한 도시 노동자만의 고립된 파업이 아니라 미국 시민들의 따뜻하고 강력한 연대와 지지가 있었음을 뒷받침해 주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또한 당시 파업은 남성 노동자들의 투쟁뿐만 아니라 여성 노동자들의 활약도 두드러진 싸움이 있었음을 상세한 설명을 통해 입증하고 있으며, 민병대와 경찰의 숱한 폭력과 사설탐정의 조작 음모 속에서도 장기간 이어졌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200만 명의 조합원을 두고 있던 미국노동총연맹(AFL)은 백인 숙련 노동자들만을 위한 조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AFL은 당시 로렌스 파업을 주도하던 단순노동 저임금 노동자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세우고, 로렌스 파업을 외부세력이 개인된 폭동으로 치부하며 공장주 편에서 붙어 파업노동자들을 철저하게 외면한다. 반면 세계산업노동자연합(IWW)은 조지프 애터, 엘리자베스 걸리 플린, 헤이우드 등의 걸출한 노동운동가를 로렌스 파업 현장에 파견하여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을 성별, 국적, 기술직을 가리지 않고 회원으로 받아들였으며, 비폭력투쟁을 기반으로 하는 유연한 전술을 전개해 가며 노동자들의 신임을 얻는다.
20세기에 들어서며 대량투입, 대량생산의 시대로 접어든 미국 산업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미국노동총연맹(AFL)의 활동은 세계산업노동자연합(IWW)의 적극적인 투쟁 전개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100여 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우리나라 역시 노동의 양상이 다양해지고, 1912년의 로렌스 만큼이나 많은 나라에서 이주 노동자들이 들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의 노동조합의 활동 방향이 어떠해야 할지를 묻게 된다.
1912년 1월 12일 로렌스에서 벌어졌던 파업은 혹독한 겨울의 추위와 두 달이 넘는 기간, 수많은 공격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으로 승리했다. 그러나 이 기념비적인 노동자들의 승리는 곧바로 잊히고 만다.
1950년대 들어 공장들이 문을 닫은 이후 노동자들의 투쟁사는 바로 잊혔고 그 빈 공간은 IWW와 파업노동자들을 공산주의자와 폭력배들이라고 비난하고 매도하는 허위 사실로 메워졌다. 지역의 학교에서는 상당기간 동안 당시 어떻게 외부 세력이 도시를 장악하고 혼란에 빠뜨렸는지가 공식 사실인 것처럼 교육 시켜버리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시대를 막론하고 빨갱이와 좌파라는 덧씌우기의 효능은 막강한 것이었나 보다. 그렇기에 사실을 전달하는 이 책의 가치는 높다고 생각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어떤 시대에서든 노동은 지속될 것이고, 자본가가 존재하는 한 노동자도 존재할 것이다. 부당한 대우를 받는 노동자의 싸움도 계속될 것이기에 노동자 투쟁의 ‘오래된 미래’ 와 같은 의미로 읽었다.
노동에 대한 제대로 된 대가를 의미하는 '빵'과 문화를 즐기는 삶을 의미하는 '장미'는 당시 로렌스 파업에서 여성 노동자가 “우리에게 빵을 달라, 장미를 달라”라고 쓰인 피켓을 들었다 하여 ‘빵과 장미 파업’이라는 명칭을 얻었다고 한다.
그 명칭은 미국 시인 제임스 오펜하임의 시 ‘빵과 장미’에서 연유한 것인데 오펜하임 역시 당시 미국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접하고 지은 시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