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잡혀가 물고문을 받은 적은 있지만, 그 외엔 별다른 피해가 없었습니다." 지난 2일, 제주시청 앞 '4·3 특별법 개정 촉구 유족·시민 결의대회' 발언대에 시민대표로 선 청년 양희주 씨의 담담한 고백에 청중은 고개를 끄덕이며 깊은 공감을 표시했습니다. 수만 명의 목숨이 사라진 비극의 땅에서, '고문' 정도는 사소한 일로 치부됐던 제주 사람들의 비극이 그 문장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몇 년 전에서야 평생 침묵했던 외할아버지가 과거 목포 형무소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수형인이었다는 걸 알게 된 겁니다. 외할아버지도, 부모도 연좌제의 굴레를 피하기 위해 팔 남매 자식들에게조차 철저히 과거를 숨겼던 겁니다. 이 청년은 이날 "할아버지가 '숨겨야 할 죄인'이 아닌, 늦었지만 '국가폭력의 피해자'로 명예를 회복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우면서도, 그 오랜 세월 말 한마디 못 했던 삶이 너무도 아프다"고 토로했습니다. 내후년이면 제주에서 4·3 항쟁이 일어난 지 80주년이 됩니다. 하지만 4·3 추념일 때마다 행사장 주변에서 제주의 비극을 주도했던 '서북청년단' 이름을 그대로 내걸고 극우 세력의 집회가 열립니다. 단순한 정치적 의사 표현이 아닙니다. '4·3은 폭동'이라 외치며 유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습니다. 피켓 대신 스마트폰을 들고 중계합니다. 내후년이면 제주에서 4·3 항쟁이 일어난 지 80주년이 됩니다. 하지만 4·3 추념일 때마다 행사장 주변에서 제주의 비극을 주도했던 '서북청년단' 이름을 그대로 내걸고 극우 세력의 집회가 열립니다. 단순한 정치적 의사 표현이 아닙니다. '4·3은 폭동'이라 외치며 유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습니다. 피켓 대신 스마트폰을 들고 중계합니다. |
75년의 침묵을 깬 청년의 고백, 이제 ‘법’이 응답할 차례
결국 이번 사건은 지난 2018년 퓨마 뽀롱이 사건 이후에도 종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부실한 시설과 적은 인원의 고강도 노동 등이 복합적으로 엮여서 일어난 구조적 문제로 보인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뽀롱이 사태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살아서 돌아오길 바라는 시민들의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글_구자현(하필왈리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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