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세종, 충남 지역 인권의 현안과 현실, 대안의 목소리들이 담긴 칼럼을 싣습니다. 

지난 겨울 단상

관리자
2022-12-22
조회수 92

지난 겨울 단상




글 _이상재  




날씨가 좋은 요즘은 운전하다 정차할 때 차창 넘어 먼 산도 바라보며 봄기운을 느껴보는 여유를 부려보고 싶다. 하지만 겨울을 넘긴 최근에 자동차 운전을 할 때 이런 여유는 언감생심이고 전방의 도로 바닥을 그야말로 뚫어지게 주시해야 한다.

이유는 겨우내 도로 곳곳에 생긴 ‘포트홀(pot hole)’ 때문이다. 포트홀은 토목용어로 노면에 생긴 파인 곳을 말한다. 근래에 자주 언급이 되는 이유는 이번 겨울 제설을 목적으로 뿌려진 염화칼슘 때문이다. 염화칼슘으로 녹은 눈이 아스팔트 사이에 침투해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차량의 충격에 균열이 생겨 결합력이 약해진 아스팔트가 떨어져 나가는 현상이 전국 곳곳의 도로에 급격하게 많이 생겼다고 한다.

올 겨울은 유난히 잦은 폭설과 추위로 인해 각 지자체마다 제설을 위해 사용한 염화칼슘이 평년의 두 배를 웃돈다고 한다. 문제는 염화칼슘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염화칼슘은 눈을 녹이는 것 외에는 위에서 언급한 도로훼손 외에도 차량부식, 환경오염과 먼지로 변한 염화칼슘이 호흡기질환과 피부병 등의 건강상의 문제까지 일으킨다고 한다.

올 겨울 잦은 폭설과 한파로 주요 도로 곳곳에 크고 작은 포트홀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시민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남산 산책로의 도로 정비가 시급해 보인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외국에서는 러시아, 캐나다를 제외하고는 염화칼슘을 제설제로 사용하는 나라가 거의 없다는데 왜 우리는 염화칼슘을 이렇게 많이 사용하는 것일까?

해답은 우리나라 특유의 ‘문화’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에 눈이 많이 오는 날의 전후 상황을 한번 스케치해보자. 눈이 많이 온다는 날의 전날부터 일기예보에서는 내일 출근길에 대해 겁을 주기 시작한다. 전날 밤이건 새벽이건 일단 눈이 내리면 시민들은 관공서에다 왜 제설작업을 하지 않느냐고 항의전화가 빗발친다. 이 때문에 눈이 쌓여야만 작업을 하는 물리적 방식의 제설차량은 대기하고 있겠지만 염화칼슘을 뿌릴 수밖에 없다. 어떤 때는 눈이 오기 전에 미리 염화칼슘을 뿌려 준다고도 한다.

이러한 철두철미한(?) 시민정신과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눈 오는 날 아침 출근길을 전하는 뉴스는 미끄러진 차로 인한 교통사고, 미끄러져 넘어진 보행자들의 사고소식으로 넘쳐난다. SNS에서는 3시간, 4시간에 걸친 사투 끝에 기어이 사무실에 출근한 인간승리담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왜 우리의 눈 오는 날 아침이 이렇게 힘든 걸까? 이웃나라 일본만 해도 10cm가 쌓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제설차로 눈을 치운다고 하는데 왜 우리는 눈이 내리기 전부터 백해일익(百害一益)한 염화칼슘을 뿌려대는 것일까?

그것의 정답은 아마도 하늘이 무너져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출근과 등교가 아닐까 싶다. 그것도 오전 8시, 아니면 9시까지는 정확히 해야 하는.......

얼마 전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에 영국식 복지를 소개하는 유학생의 글이 실렸는데 유독 내게 인상적인 부분은 영국에서 많은 눈이 왔을 때 겪은 그 유학생의 에피소드였다. 눈이 많이 내린 날 힘들게 학교 어학센터에 도착했지만 10시, 11시가 넘어도 선생들이 들어오지 않아 따지러 갔더니 주로 동양계 학생들만 화를 내며 따지러 왔다는 이야기......(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30208142128)

왜 그 나라의 선생들은 오지 않았을까? 우선 눈이 많이 오면 버스가 다니질 않는단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교가 휴교에 들어가기 때문에 부모들인 어학센터 교사들도 당연히 아이들과 집에 있는 것이 상식이란다.

물론 우리나라도 폭설이 내리면 학교가 가끔씩 휴교에 들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가끔 있는 일이고 설사 그럴 때라도 직장이 휴무에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집이 아무리 멀어도 출근은 그야말로 죽기 살기로 해야 되며, 오늘 도착하기로 한 택배는 거친 눈보라를 뚫고서라도 오늘 꼭 도착해야 된다. 

어떤 사회가 행복한 사회인가를 생각해본다.

우리나라도 눈이 오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씨에는 학교는 휴교하고 사무실은 굳이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최소한 집에서 근무하는 회사가 많은 나라였으면 좋겠다. 

우편배달하는 노동자와 택배노동자도 당연히 배달을 멈추고 눈이 녹거나 치워질 때 까지 기다리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당연히 그로 인해 배달이 늦게 오는 것에 대해서 다들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안되면 되게 하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뭐라 할 생각은 없지만 안 되면 포기하거나 좀 쉬었다 가는 사람을 나무라지 않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뭐든 빠르게, 어떤 일이 있어도 해야 하는 일이 많은 사회일수록 포트홀과 같은 문제는 필연적으로 뒤따르게 마련이다. 

‘ 여유’가 있는 삶이 환경도 인권도 제대로 보호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 글은 인권연대 기고했던 글입니다. 

2019-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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