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세종, 충남 지역 인권의 현안과 현실, 대안의 목소리들이 담긴 칼럼을 싣습니다. 

인권을 찾아서 떠나는 다크투어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지’를 방문하고...

관리자
2024-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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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김정미(대전충남인권연대)


인터넷에서 베트남을 검색하다보면 ‘경기도 다낭시’라는 말이 등장한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생긴 말이다. 코로나 이전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휴양지로 각광받기 시작했고, 지금은 한국인 뿐 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찾는 유명 관광지로 자리 잡은 곳이라 우리에게 친숙하다.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저렴한 물가로 넉넉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알고 있던 베트남은 사실 대한민국과 풀어나가야 할 역사적 아픔과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가 있는 곳이다. 공주교육대학교에서 좋은 기회를 주어 인권시민교육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원 동기들과 직접 베트남의 인권유린의 가슴 아픈 현장을 다녀오게 되었다.

 

사진_손미학살 위령관 @김정미


첫날, 미국에 의해 학살이 자행된 미라이 마을 학살현장이다. 미라이 마을로 이동하면서 본 한적한 베트남의 풍경과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겨웠다. 삼모작이라던 베트남의 벼농사는 수익성이 떨어져 요즘은 이모작만 한다고 한다.

사진_손미학살 위령비 @김정미 


꽝응아이성의 손미사 미라이촌에서 170여명이 죽임을 당한 이곳을 손미학살 또는 미라이학살이라고 한다. 위령관과 위령탑, 집터, 묘비, 우물과 땅굴을 볼 수 있었는데 이는 학살의 현장을 유지, 보존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엿보였다. 마을에서 평화롭게 살았던 사람들의 일상이 담긴 집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위령관에는 희생당한 사람들의 명단과 나이, 성별이 기재되어 있다. 안에는 처참했던 당시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사진들로 인해 미국의 만행이 드러났고 진상이 밝혀졌다고 한다. 희생당한 분들을 기리는 위령비는 당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보 티 리엔의 남편이 만든 작품으로 그들의 엄중한 표정이 담긴 조각상에서 희생당한 분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우리나라의 노근리 등 학살의 현장에 있는 무의미해 보이는 위령비와는 사뭇 달랐다.


사진_마을 사람을 우물에 넣고 수류탄을 던져 학살했다. @김정미


사진_우연히 만난 학살의 피해자 @김정미

안내판에 손미마을 위령관과 동떨어진 위령비가 있어 의아해 하며 가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미라이 마을 학살지로 조성된 곳과 떨어져 있어 가보지 못하고 놓칠 뻔한 그곳에서 학살 당시 4살이었던 피해자 분과 우연히 만날 수 있었다. 마을 한쪽에 작은 위령비를 세워 관리하고 있었는데 피해자와의 첫 만남에 모두 숙연해졌다. 학살 이후 자신이 살아온 굴곡진 삶을 이야기하시며 눈물짓는 모습에 또 다른 가해국의 국민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컸다. 피해자와의 우연한 만남이라 우리 모두에게 의미가 컸던 것 같다. 


사진_퐁니퐁넛 마을 위령비 @김정미

 

둘째 날은 실제 한국군에 의해 학살이 자행된 퐁니퐁넛 마을과 하미마을을 방문했다. 퐁니퐁넛 마을은 1968년 1월 14일 74명의 죽음이 있었던 곳이다. 이른 아침, 우리는 피해 당사자로 2015년부터 베트남 전쟁 당시 자행된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건을 공론화해오고 있는 응우옌티탄씨를 만났다. 잊고 싶은 기억을 자신의 증언을 바탕으로 사회에 알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에도 응우옌티탄씨는 한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이어가고 있고, 얼마 전 1심에서 “탕 러이(이겼다)”를 외쳤다. 그녀는 자신이 겪은 일을 덤덤히 말하면서도 총상자국을 보여주면서는 울먹였고, 한국의 많은 분들과 연대하는 것이 힘이 된다고 하였다.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손을 잡고 나눈 이야기 속에 느낀 것은 진실한 마음은 통하게 되어 있고, ‘모든 사람이 소중한 세상’의 실현은 가까이 있다는 희망이 느껴졌다.


사진_하미마을 위령비 @김정미

퐁니퐁넛 마을 위령비에서 참배하고, 우리나라에도 ‘연꽃 문양 속 가려진 진실’로 알려진 하미마을 위령비를 찾았다. 위령비 정면에는 135명의 희생당한 분들의 이름과 나이가 적혀 있고, 뒷면에는 들은바 대로 연꽃문양 대리석이 덮여 있었다. 2001년 월남참전전우복지회가 2만5천 달러를 지원해 준공한 위령비에는 원래 그날의 참상을 적은 시가 있었는데 한국군을 학살자로 표현한다는 이유로 갈등을 빚다가 연꽃무늬 그림으로 시를 덮어버린 것이다. 이곳에서도 위령비를 관리하고 있는 분을 만날 수 있었는데 이 분도 피해자의 유족으로 그날의 아픔을 겪고 있었다.

 

사진_하미마을 위령비 뒷면 연꽃무늬 @김정미

 


우리는 다낭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여러 곳에서 피해자와 유족을 만나고 위령비를 찾을 수 있었다.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국과 한국의 제대로 된 인정과 사과가 없는 현실을 학살현장을 찾고서야 직시하게 되었다. 일본 식민지 시절 한국이 당한 피해에 대해서는 격렬했던 반면 대한민국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서는 무지하거나 회피했던 현실도 돌아보게 되었다.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지로 떠나는 길에 적어간 베트남어 “신 로이(미안합니다)”를 연신 되새기며 돌아오는 발걸음에 힘이 실리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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