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에어컨 실외기 줄이 늘어져서 아래층 창문을 가리니 해결해 달라는 민원이 들어왔단다. 확인해 보니 실외기 줄에 비둘기 배설물이 가득하고 비둘기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줄이 늘어져 있었다. 어찌어찌 임시방편으로 아래층 창문에서 보이지 않게 해 놓았지만, 비둘기들이 매일 떼로 앉아있는 한 며칠 못 갈 게 뻔하다. 우리 동네엔 비둘기가 유난히 많다. 특히 인근에 있는 초중학교는 창문에 앉기 좋은 건물 구조 탓에 한쪽 벽면과 바닥이 비둘기 배설물로 정기적으로 전문 업체에 청소를 맡겨야 할 지경이다. 아파트 단지 안에 비둘기는 유해 동물이니 먹이를 주지 말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지만 이른 아침 꼬박꼬박 비둘기 밥을 챙겨주는 어르신이 계신다. 한 번은 “비둘기에게 밥 주지 말라고 쓰여 있잖아요.”라고 했다가 “당신 할 일이나 하세요.”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분은 여전히 지극정성으로 비둘기 밥을 주고 있고 출근길에 비둘기들이 아침밥을 먹느라 모여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내가 싫다고 저 생명들을 굶기는 게 타당한 일일까? 아니, 저렇게 밥을 챙겨주면 저들이 있어야 할 야생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마음이 늘 갈팡질팡이다. 캣맘을 자처하며 곳곳에 들고양이 밥을 주는 사람들. 고양이 울음소리가 싫어서(또는 그냥 싫어서) 뉴스에 동물 학대로 종종 등장하는 사람들. 비둘기가 얄밉고 비둘기에게 밥을 주는 어르신은 더 얄밉다는 생각 끝에 어쩔 수 없이 인간의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 입장에서도 억울한 일들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코로나 이후 학교교육과정에 무엇을 담아야 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강의 들었다. 우리나라 교육기본법 제2조(교육이념)에 ‘교육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에서 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향후 교육은 인간만을 이롭게 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고 범물로 확장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공감은 가지만 참 어려운 일이다. 모두를 이롭게 하는 방법이 있을까? 생태, 평화, 정의…. 강사는 다분히 선언적 표현들이지만 꼭 필요한 것들을 교육과정에 담아 실천하자며 결국 서로 조금씩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 최선이지 않을까로 강의를 마쳤다.
인간중심의 세상이 인간을 위협하고 있다는 말은 지겹게 들었지만 인간 이외의 것들과 공존하며 살아갈 방법들에 대해서는 별로 듣지 못했다. 환경부가 비둘기를 유해 동물로 지정을 해서 먹이를 주지 못하게 했으면 굶어 죽어가는 비둘기들에 대한 대책도 함께 얘기해줬어야 ‘인정 넘치는 사람’과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 서로 불필요한 대결을 하지 않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아무튼 弘益人間의 시대에서 弘益凡物의 시대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과 방법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아야겠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인권연대의 ‘인권’도 사람의 권리를 넘어서는 확장된 개념의 권리를 담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더 많이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겠지만....
글_안선영(장곡중 교감)
아파트 관리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우리 집 에어컨 실외기 줄이 늘어져서 아래층 창문을 가리니 해결해 달라는 민원이 들어왔단다. 확인해 보니 실외기 줄에 비둘기 배설물이 가득하고 비둘기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줄이 늘어져 있었다. 어찌어찌 임시방편으로 아래층 창문에서 보이지 않게 해 놓았지만, 비둘기들이 매일 떼로 앉아있는 한 며칠 못 갈 게 뻔하다. 우리 동네엔 비둘기가 유난히 많다. 특히 인근에 있는 초중학교는 창문에 앉기 좋은 건물 구조 탓에 한쪽 벽면과 바닥이 비둘기 배설물로 정기적으로 전문 업체에 청소를 맡겨야 할 지경이다. 아파트 단지 안에 비둘기는 유해 동물이니 먹이를 주지 말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지만 이른 아침 꼬박꼬박 비둘기 밥을 챙겨주는 어르신이 계신다. 한 번은 “비둘기에게 밥 주지 말라고 쓰여 있잖아요.”라고 했다가 “당신 할 일이나 하세요.”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분은 여전히 지극정성으로 비둘기 밥을 주고 있고 출근길에 비둘기들이 아침밥을 먹느라 모여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내가 싫다고 저 생명들을 굶기는 게 타당한 일일까? 아니, 저렇게 밥을 챙겨주면 저들이 있어야 할 야생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마음이 늘 갈팡질팡이다. 캣맘을 자처하며 곳곳에 들고양이 밥을 주는 사람들. 고양이 울음소리가 싫어서(또는 그냥 싫어서) 뉴스에 동물 학대로 종종 등장하는 사람들. 비둘기가 얄밉고 비둘기에게 밥을 주는 어르신은 더 얄밉다는 생각 끝에 어쩔 수 없이 인간의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 입장에서도 억울한 일들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코로나 이후 학교교육과정에 무엇을 담아야 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강의 들었다. 우리나라 교육기본법 제2조(교육이념)에 ‘교육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에서 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향후 교육은 인간만을 이롭게 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고 범물로 확장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공감은 가지만 참 어려운 일이다. 모두를 이롭게 하는 방법이 있을까? 생태, 평화, 정의…. 강사는 다분히 선언적 표현들이지만 꼭 필요한 것들을 교육과정에 담아 실천하자며 결국 서로 조금씩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 최선이지 않을까로 강의를 마쳤다.
인간중심의 세상이 인간을 위협하고 있다는 말은 지겹게 들었지만 인간 이외의 것들과 공존하며 살아갈 방법들에 대해서는 별로 듣지 못했다. 환경부가 비둘기를 유해 동물로 지정을 해서 먹이를 주지 못하게 했으면 굶어 죽어가는 비둘기들에 대한 대책도 함께 얘기해줬어야 ‘인정 넘치는 사람’과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 서로 불필요한 대결을 하지 않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아무튼 弘益人間의 시대에서 弘益凡物의 시대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과 방법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아야겠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인권연대의 ‘인권’도 사람의 권리를 넘어서는 확장된 개념의 권리를 담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더 많이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