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이채민(KOICA 봉사단 코디네이터)
태국에 온 지 3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한국에서 누렸던 너무나 당연한 모든 것들은 순간순간 도전이자 모험으로 다가왔다(물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태어나 처음 보는 태국 글자를 보고 ‘코쿤, 카(고맙습니다)’밖에 할 줄 모르는 나를 보고 있노라면 정녕 다른 세계에 와 있음을 실감한다.
태국은 형식적으로는 입헌군주제이나 강력한 왕이 존재하는 나라다. 쿠데타조차도 왕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왕위를 계승한 라마 10세는 그의 나이 64세에 왕위를 물려받았는데,1 왕으로서 말도 안되는 그의 행동에도 측은지심으로 그를 이해하려는 국민들이 많은 것을 보면 태국 국민들의 왕실에 대한 믿음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왕실에 대한 실망감은 태국의 근대적 전제군주제 개혁의 목소리를 만들어냈다. 2020년 태국의 민주화운동의 시작이다. 시위대는 수티다 왕비가 탄 롤스로이스 실버 스퍼 차량을 향해 독재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세 손가락 경례를 하기도 했다.2
시위를 주도한 사람들은 다름아닌 태국 각지의 고등학교와 대학교 학생들이었다. 이들이 시위에 사용한 노래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시위에 참여한 대부분의 학생들이 K-POP 팬들이기 때문이다. SONE 이라고 하는 태국 소녀시대 팬클럽은 불과 9시간만에 한국 기부금과 합산하여 78만바트(한화, 2천 9백만원 정도) 를 모금했고, 일주일도 안 되는 기간동안 모인 시위 모금액은 무려 400만 바트(한화 약 1억 4천 8백만원, 태국 노동자 초/대졸의 평균임금이 9천바트, 한화 35만원 정도)를 가뿐히 넘겼다.3
시위는 K-POP 을 만나 전혀 다른 모습으로 평화롭게 진행되었지만 그에 대한 정부 대답은 물대포였다. 한국산 물대포 (이 물대포는 한국 기업인 A사의 수출 장비로 밝혀졌다.4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당시 백남기 농민에게 쏘아댔던 바로 그 물대포로 태국 정부는 최루액, 페인트 등을 혼합해 시위 진압에 사용했다.)
이후 태국 시위는 지금까지 매주 2-3회씩 이어지고 있다. 시위대는 군주제 개혁과 함께 군부 출신인 총리의 퇴임 요구를 해 왔다. 최근 이 요구가 또 다시 탄력을 받고 있다.5 (쁘라윳 짠오차 총리는 라마 10세의 첫 총리로 군인 출신이다. 육군사령관 시절이던 2014년 쿠데타로 29대 총리로 집권해 군사 독재 정치로 비판받아왔다. 문제는 2019년 총선으로 집권 연장 이후 그 사이 군정이 2017년 헌법을 개정하면서 총리 임기를 최대 8년으로 규정한 것이다. 2022년 8월 24일 오늘, 헌법재판소의 임기 종료일 판단일까지 직무 정지 상태가 되었다.) 세계 어느 곳이든 권력의 모습이 놀랍도록 같은 것을 보면 언어와 생김새만 다를 뿐 역사는 반드시 댓가를 치뤄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듯 하다. 그리고 모든 소중한 것은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다.
민주주의는 항상 시끄럽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늘 옳은 선택만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여러 부침 속에서도 그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찾고자 노력해왔음을 우리는 또한 역사를 통해 확인한다. 소녀시대와 물대포…최근 소녀시대가 컴백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녀시대의 컴백처럼 태국의 소녀시대 팬들도 웃는 날이 오길 바란다.
----------------
1. 1946년부터 2016년까지 무려 70년동안 재위했다. 그는 ‘대왕’이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각종 정치적 위기의 순간마다 중재자 역할을 맡아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발휘했다. 그의 사망 이후 태국 정부가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1년간의 추모 기간을 선포하였으며 30일 동안은 오락활동을 자제하고 검은 옷을 입을 것을 국민에게 촉구했다. 태국 웨사이트, 언론사, 모든 방송사들이 흑백으로 처리되었고 한국에 있는 태국 대사관도 조기를 게양했다.같이 일하는 젊은 직원들 중 몇몇이 아직도 라마 9세 왕의 사진을 자기 책상에 붙여놓는 걸 보면 태국 국민들이 라마 9세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 알 수 있다.
2. ‘ 세 손가락 경례’ 하는 태국 민주화운동 시위대 , 2020년 10월 16일자 연합뉴스 기사, https://www.yna.co.kr/view/PYH20201016211300340?input=1196m
3. People’s Party 2020 : 한국 K-POP 팬들이 힘을 합쳐 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시위를 주도하다, BBC NEWS 2020년 11월 5일자 기사, https://www.bbc.com/thai/international-54794129
4. 태국 민주화 운동 탄압하는 ‘K-물대포’ , 노컷뉴스 2020년 10월 21일자 기사, https://www.nocutnews.co.kr/news/5432078
5. Anti-Prayut rallyist camp out at Govt House, August 24, 2022, The nation Thailand, https://www.nationthailand.com/in-focus/40019275
글_이채민(KOICA 봉사단 코디네이터)
태국에 온 지 3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한국에서 누렸던 너무나 당연한 모든 것들은 순간순간 도전이자 모험으로 다가왔다(물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태어나 처음 보는 태국 글자를 보고 ‘코쿤, 카(고맙습니다)’밖에 할 줄 모르는 나를 보고 있노라면 정녕 다른 세계에 와 있음을 실감한다.
태국은 형식적으로는 입헌군주제이나 강력한 왕이 존재하는 나라다. 쿠데타조차도 왕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왕위를 계승한 라마 10세는 그의 나이 64세에 왕위를 물려받았는데,1 왕으로서 말도 안되는 그의 행동에도 측은지심으로 그를 이해하려는 국민들이 많은 것을 보면 태국 국민들의 왕실에 대한 믿음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왕실에 대한 실망감은 태국의 근대적 전제군주제 개혁의 목소리를 만들어냈다. 2020년 태국의 민주화운동의 시작이다. 시위대는 수티다 왕비가 탄 롤스로이스 실버 스퍼 차량을 향해 독재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세 손가락 경례를 하기도 했다.2
시위를 주도한 사람들은 다름아닌 태국 각지의 고등학교와 대학교 학생들이었다. 이들이 시위에 사용한 노래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시위에 참여한 대부분의 학생들이 K-POP 팬들이기 때문이다. SONE 이라고 하는 태국 소녀시대 팬클럽은 불과 9시간만에 한국 기부금과 합산하여 78만바트(한화, 2천 9백만원 정도) 를 모금했고, 일주일도 안 되는 기간동안 모인 시위 모금액은 무려 400만 바트(한화 약 1억 4천 8백만원, 태국 노동자 초/대졸의 평균임금이 9천바트, 한화 35만원 정도)를 가뿐히 넘겼다.3
시위는 K-POP 을 만나 전혀 다른 모습으로 평화롭게 진행되었지만 그에 대한 정부 대답은 물대포였다. 한국산 물대포 (이 물대포는 한국 기업인 A사의 수출 장비로 밝혀졌다.4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당시 백남기 농민에게 쏘아댔던 바로 그 물대포로 태국 정부는 최루액, 페인트 등을 혼합해 시위 진압에 사용했다.)
이후 태국 시위는 지금까지 매주 2-3회씩 이어지고 있다. 시위대는 군주제 개혁과 함께 군부 출신인 총리의 퇴임 요구를 해 왔다. 최근 이 요구가 또 다시 탄력을 받고 있다.5 (쁘라윳 짠오차 총리는 라마 10세의 첫 총리로 군인 출신이다. 육군사령관 시절이던 2014년 쿠데타로 29대 총리로 집권해 군사 독재 정치로 비판받아왔다. 문제는 2019년 총선으로 집권 연장 이후 그 사이 군정이 2017년 헌법을 개정하면서 총리 임기를 최대 8년으로 규정한 것이다. 2022년 8월 24일 오늘, 헌법재판소의 임기 종료일 판단일까지 직무 정지 상태가 되었다.) 세계 어느 곳이든 권력의 모습이 놀랍도록 같은 것을 보면 언어와 생김새만 다를 뿐 역사는 반드시 댓가를 치뤄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듯 하다. 그리고 모든 소중한 것은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다.
민주주의는 항상 시끄럽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늘 옳은 선택만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여러 부침 속에서도 그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찾고자 노력해왔음을 우리는 또한 역사를 통해 확인한다. 소녀시대와 물대포…최근 소녀시대가 컴백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녀시대의 컴백처럼 태국의 소녀시대 팬들도 웃는 날이 오길 바란다.
----------------
1. 1946년부터 2016년까지 무려 70년동안 재위했다. 그는 ‘대왕’이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각종 정치적 위기의 순간마다 중재자 역할을 맡아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발휘했다. 그의 사망 이후 태국 정부가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1년간의 추모 기간을 선포하였으며 30일 동안은 오락활동을 자제하고 검은 옷을 입을 것을 국민에게 촉구했다. 태국 웨사이트, 언론사, 모든 방송사들이 흑백으로 처리되었고 한국에 있는 태국 대사관도 조기를 게양했다.같이 일하는 젊은 직원들 중 몇몇이 아직도 라마 9세 왕의 사진을 자기 책상에 붙여놓는 걸 보면 태국 국민들이 라마 9세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 알 수 있다.
2. ‘ 세 손가락 경례’ 하는 태국 민주화운동 시위대 , 2020년 10월 16일자 연합뉴스 기사, https://www.yna.co.kr/view/PYH20201016211300340?input=1196m
3. People’s Party 2020 : 한국 K-POP 팬들이 힘을 합쳐 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시위를 주도하다, BBC NEWS 2020년 11월 5일자 기사, https://www.bbc.com/thai/international-54794129
4. 태국 민주화 운동 탄압하는 ‘K-물대포’ , 노컷뉴스 2020년 10월 21일자 기사, https://www.nocutnews.co.kr/news/5432078
5. Anti-Prayut rallyist camp out at Govt House, August 24, 2022, The nation Thailand, https://www.nationthailand.com/in-focus/40019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