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사단법인 토닥토닥 이사장), 박은영(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 오임술(민주노총 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이채민(KOICA 해외봉사단 코디네이터), 임병안(중도일보 기자), 안선영(군포중학교 교장)님과 같은 
지역의 현장 활동가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인권현안에 대해 2주에 한 번씩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예산삭감이라는 지방정부의 해고 통보

관리자
2023-11-16

글_임병안(중도일보 기자)

대전인권비상행동이 지난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대전시인권센터 폐쇄 결정을 규탄하고 있는 모습.
사진_대전인권비상행동

 최근 가까운 지인에게서 고민을 상담하는 전화를 받았다. 기자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교류해왔고 지역사회에 중요한 환경 문제가 불거졌을 때 보호활동에 앞장서 행동하는 분이다. 중요한 용건이 없더라도 수시로 전화를 주고받거나 소모임에서 만나 대화하며 소통을 이어온 관계이니 가볍게 수화기 넘어 인사를 나눴다. 이날 전화 대화 내용은 평소보다 무거운 주제였다. 그가 몸담은 기관이 내년부터 사라질 수 있다는 소식을 전했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의견을 물어왔다. 대전시가 내년도 예산안에서 전액 삭감한 정책 중에 그가 2021년부터 진행한 교육 분야도 포함돼 내년도 교육과 기관 활동이 모두 중단될 것으로 보여 걱정된다는 설명이었다. 환경교육과 시민을 연결하는 환경교육통합플랫폼으로 역할을 해왔으나, 다음 달을 끝으로 사라질 위기감이 수화기 너머 목소리를 통해서 전해졌다.

전화를 받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무기력함을 느끼며 뚜렷한 묘책을 답해주지 못했다. 대전시가 내년도 재정이 부족해 일부 사업에 예산을 삭감한 것일 테니 어쩔 수 없지 않겠냐는 것을 전제로 대화를 나눴던 것 같다. 오히려, 전화를 받기 전에 지인이 일하는 기관에 관련된 예산이 삭감될 거라는 이야기를 이미 들었다는 대화까지 나눴다. 이정도까지 대화를 나누고 나니 사실 나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지자체가 예산을 삭감해 특정 기관의 운영을 폐지하는 것을 이미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생각하게 되었다.  당시 통화를 돌이켜보건대, 오히려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였던 것을 기억해보면 분명 최근 대전시의 일방적 예산 삭감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전화를 마치고 사실은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불필요한 도로 건설 예산을 긴축재정 일환으로 삭감하고, 축제 예산을 줄이는 것과 지금의 예산 삭감은 다른 부분이 있음에도 '예산 삭감'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에 국한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돌아보면, 지난 2년 가까이 대전인권센터에서 인권신문을 제작하는 편집위원을 지냈는데, 대전인권센터는 올해 말 운영 종료될 예정이지 않은가. 지금의 수탁자가 인권활동과 관계없다는 지적과 별개로 그 안에서 일하는 활동가는 올해 수탁자가 오기 전부터 시민과 기관에 인권인식을 높이는 교육활동을 벌여왔다. 직원들은 인권센터 제 역할을 잃지 않기 위해 그 안에서 올해 감내했던 어려움을 알기 때문에 운영 종료를 더욱 남다르게 여기고 있다. 가정을 이뤄 아이를 키우기 위해 잠시 휴직한 직원을 되돌아올 직장이 사라지게 되었고, 초등생 아이를 키우는 또다른 직원도 인권과 가정을 지키던 일상을 더이상 이어갈 수 없게 되었다. 대전사회적자본센터는 2013년 출범해 10년을 마을단위 공동체활동을 지원했는데 민간위탁 종료라는 공문 한 장으로 문을 닫는다.

생각해보면, 예산 삭감이라는 행정적 결정이지만 이는 다분히 해고 통보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해당 기관이 수행하는 역할이 더이상 지역사회에 필요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단순이 돈이 없어서 인권과, 환경교육, 시민활동을 돕던 기능을 폐지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 직장이자 생활의 공간이자 고유한 가치관을 실현하던 이들은 일자리를 잃고 자아 실현의 기회를 빼앗기고 있다.

최근 대전대 행정학과 곽현근 교수는 중도일보 기고를 통해 예산 완전 삭감 정책을 증오경쟁 후 승자의 보복정치라고 설명한 바 있다. 곽 교수는 기고문에서 "증오 경쟁은 승자의 보복 정치로 이어진다. 보복은 사람뿐만 아니라 정책과 제도를 향한다. 객관적 타당성과 필요성과 무관하게 패자의 정책과 제도는 설 자리를 잃는다. 선거 승자의 편협하고 권위주의적인 개인적 특성까지 더해지면 보복 정치는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좋은 정책과 제도 파기로 인한 기회비용과 매몰비용은 증폭된다."고 설명했다.

예산 삭감을 앞세워 실제로는 해고를 통보하는 일련의 일들이 정상적인 일인지 낯설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대량해고 사태를 보면서 아무런 고민하지 않았던 나의 자세부터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