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사단법인 토닥토닥 이사장), 박은영(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 오임술(민주노총 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이채민(KOICA 해외봉사단 코디네이터), 임병안(중도일보 기자), 안선영(군포중학교 교장)님과 같은 
지역의 현장 활동가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인권현안에 대해 2주에 한 번씩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광복절 경축사에 담긴 인권운동가, 진심이십니까?

관리자
2023-08-16

글_임병안(중도일보 기자)

출처_임병안(1999년 3월23일주 중도일보(보트 시위))


올해 갑천습지와 월평공원에서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꽤 무거운 카메라를 지고 삼각대까지 연결해 어깨에 걸치듯 들어 올려 습지길을 또는 등산로를 걸으며 무엇인가 발견할 때마다 촬영하는 일을 3주째 이어가는 것이다. 대전시청자미디어센터 수강 과정의 일환으로 갑천습지와 월평공원에서 자연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겠노라고 나름 야심 차게 시작한 프로젝트다.

그동안 촬영에서 이들의 아름다운 풍경을 영상으로 많이 담았거니와 검은댕기해오라기, 파랑새, 꾀꼬리, 중대백로, 왜가리, 붉은머리오목눈이, 아물쇠딱따구리, 어치, 솔딱새 등을 카메라에 포착했다. 또 고라니가 태풍에 쓰러진 나무에서 새순을 뜯어먹는 장면을 가까이에서 지켜봤고, 길이 10㎝쯤 되는 민달팽이가 자신의 몸을 밀면서 어딘가로 가는 모습도 한참을 관찰했다. 이번 폭우 때 범람하여 산책로까지 밀고 들어온 강물을 따라 다슬기가 산책로의 주인이 되는 풍경도 머리를 바닥에 처박고 한참을 바라봤다.

이렇게 요즘 갑천습지와 월평공원에서 탐사하는 재미에 빠진 것은 1999년 갑천고속화도로가 건설될 때 지금은 국가습지로 지정된 갑천습지에 도로가 놓일뻔한 운명을 시민들의 환경 저항운동으로 막아낸 역사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신탄진을 오갈 때 이용하는 갑천고속화도로가 실은 가수원까지 연결할 계획으로 월평공원과 갑천이 만나는 지금의 습지대에 도로를 놓을 계획이었다. 이때 지역 환경단체와 시민들이 반대운동을 전개했고, 갑천에 보트를 띄워 반대 현수막을 나부끼며 저항한 일도 있었다니 무척 재미있지 아니한가. 2006년 월평공원 관통도로 계획할 때는 시민들이 손에 손을 잡고 인간 띠를 이루어 중장비의 접근을 막고 월평공원을 지키는 운동도 전개되었으며, 최근에는 월평공원 아파트 건설은 결국 무산되지 않았던가. 갑천습지와 월평공원은 도시 생활권과 가까워 개발의 그림자가 자주 드리우지만, 범시민 운동으로서 지금의 환경을 지켜내었고, 그 안에 이러한 생물이 서식한다고 생각하면 자연보호가 더욱 와닿는 느낌이다.

광복절을 맞아 대통령께서 경축사를 통해 인권을 언급하셨다.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 공작을 일삼아 왔다"는 말로써 말이다. 대통령의 축사를 조금 더 인용해보면, "단순히 빼앗긴 주권을 되찾거나 과거의 왕정국가로 되돌아가려는 것이 아니었고, 자유와 인권이 무시되는 공산전체주의 국가가 되려는 것은 더욱 아니었다"며 독립운동을 설명하면서 느닷없이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인권 운동가를 결부 지었다.

내가 아는 광복절은, 일본제국주의로부터 강제로 지배를 받아 국가의 보호 없이 국민이 핍박을 받았던 때를 극복한 것으로 이해한다. 우리민족이 경험한 아픈 역사를 회상하고 다시는 그러한 역사를 반복하지 말자며 공동체성을 다지는 그런 기념일로 여겨왔다. 그런데 이번 경축사를 놓고 보면, 광복절마저도 생각을 분열시키고 편을 나눠 내부의 싸움을 격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더욱이 공산전체주의 세력이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해 야비하고 더 나아가 폐륜적 공작을 일삼았다는 대통령의 주장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더욱이 한국전쟁 중 발생한 무수한 국가범죄 현장을 간직한 대전의 시민으로서 섬뜩함마저 느꼈다.

그러한 발언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더 나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국민은 대통령에게 물어볼 수 조차 없다는 현실이 더욱 갑갑하게 다가온다. 물어보고 답하는 소통이 이뤄진 지 오래됐고, 국무회의 등에서 발언이 일방적으로 국민께 전달되는 관계가 고착되고 있다.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일을 반복하는 데서 오는 피로함을 아마도 습지와 공원에서 새와 식물, 곤충을 관찰하는 데서 풀어가는 것 같다. 갑천습지와 월평공원에 서식하는 자연을 보면서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아니하고 그저 감사하게 여기게 되는 환경에 요즘 더욱 매료되는 것 같다. 시민운동으로 월평공원 갑천을 지켜내 지금의 생태계를 간직할 수 있었던 것처럼 다양한 생각과 목소리가 보호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