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사단법인 토닥토닥 이사장), 박은영(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 오임술(민주노총 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이채민(KOICA 해외봉사단 코디네이터), 임병안(중도일보 기자), 안선영(군포중학교 교장)님과 같은 
지역의 현장 활동가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인권현안에 대해 2주에 한 번씩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노동자인 듯/ 노동자 아닌 / 노동자 같은

관리자
2023-02-08

글_이채민 (한국국제협력단(KOICA) 봉사단 코디네이터로 활동)

사진 제공_코이카 

사진제공_코이카


  내가 맡은 일은 한국에서 파견된 해외봉사단원을 관리하는 일이다. (이전 관리요원이라는 지칭이 투박하고 관료적이라는 지적이 있었던지 내가 지원할 땐 터미네이터도 아닌 '코디네이터'라는 이름이었다. 사실 '코디네이터'라는 지칭 역시 적합한 명칭은 아니다. 우선 '코디님'이라는 정체불명의 용어로 불리고, 무엇보다 코디네이터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 지 난감하다. 특히 ~님이라고 부르는 우리나라의 존칭문화와 해외사무소 운영 및 실무 전반을 사무소장과 함께 담당하는 코디네이터들의 업무를 본다면 코디님으로는 부족하다. 실제로 내 명함은 Manager 로 쓰여있다.)  

  그렇다면, 자원봉사자는 누구일까? 자원봉사활동기본법 제3조에 따르면 “자원봉사자”란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사람을 말하며, “자원봉사활동”이란 개인 또는 단체가 지역사회·국가 및 인류사회를 위하여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제공하는 행위를 말한다. 같은 법 제2조에 따르면 “자원봉사활동”은 무보수성, 자발성, 공익성, 비영리성 등의 원칙 아래 수행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이러한 자원봉사자는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와는 법적으로 달리 취급받는다(근로기준법 제2조 제1호). 예를 들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경우에는 최저임금 지급, 근로계약서 서면명시 및 교부의무 발생 등 각종 근로기준법상 보호를 받지만, 자원봉사자의 경우에는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자가 아니므로 근로기준법 제 14조 소정의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자’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것이다(대법원 1979. 4. 24 선고 78다828 판결).  

  그러나  2020년 대법원은 지방자치단체 자원봉사자라 하더라도 근무일지를 쓰고 전일제로 근무하며 지원금 명목으로 최저임금 수준의 돈을 매달 받았다면 노동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원심을 파기했다(대법원 2020. 07. 05. 선고 2018두38000 판결). 즉, 4대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자원봉사자라 하더라도 종속적인 관계가 있는지, 업무 내용을 사용자가 정하고 업무 수행 과정에서 사용자가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는지, 사용자가 근무시간과 근무장소를 지정하고 노동자가 이에 구속을 당하는지, 보수의 성격이 근로 자체의 대상적 성격인지 등의 경제적·사회적 여러 조건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런 맥락에서 살펴보자면, 코이카 봉사단원은 노동자성을 갖는다. 사용자는 아니나 사무소장의 관할 하에 봉사단 활동에 있어 상당한 지휘, 감독을 받는다. 또한 단원은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활동을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보수가 아니다. 생활비와 주거비가 정기적으로 지급된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생활하기 불편할 정도의 금액 역시 아니다. (2022년 현재 기준 매달 60만원의 적립과 생활비, 주거비 별도 지급)

  계산해보면 단원은 거의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활동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노동강도는 파견기관에 따라 천차만별이기도 해 사실상 파견기관과 단원의 의지에 따라 좌우된다. 여기에 급격한 저출생 고령화 현상은 코이카 봉사단원도 예외가 아니어서 지원자들의 연령대 역시 높아지고 있다. 이에 생계형 봉사 내지 제 2의 인생설계를 위한 일종의 사다리로 봉사 활동을 활용하고자 하는 단원들이 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아마도 황제봉사라는 민망한 별칭은 이 때문에 생긴 듯 하다. 그러나 길게는 2년을 단신으로 버텨야 하는 단원생활을 경험한다면 그러한 비판은 무색하다. 

  그뿐인가. 귀국 후 이들에 대한 대우는 타국의 봉사단원에 비하면 무척 아쉽다. 취업이나 장학금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모두가 봉사활동 이후 학업을 시작하는 것도 아니거니와 점점 연령대가 높아지고 있는 단원들의 입장에서는 일부에게만 해당될 뿐이다. 무엇보다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ODA 분야를 제외한 취업시장에서는 경력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취업지원은 물론 공무원 우대 등을 하고 있는 미국의 사례를 본다면 코이카 단원을 위한 귀국 후 지원에 대한 지원과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다. 

 1991년부터 시작된 해외봉사활동. 그들이 없었다면 누가 오지에 들어가 사람들에게 한국을 알렸겠는가. K-문화 성과 이면엔 말 한마디 안통하는 나라에서 손짓 발짓으로 어떻게든 한국을 전파하고자 했던 코이카 단원들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이 현지인들과 땀으로 엉켜 배운 언어와 문화는 현지 지역 전문가로 활동하기에 손색이 없다.(세계화 내지 국제화 인재를 위한 지원과 프로그램의 일부라도 단원 출신들에게 제공한다면 아마도 단원들은 날아다닐 것이다.) 단원 경험이 생계형 봉사활동이나 창업 사다리로만 폄훼되기엔 너무나 아깝다. 민간 외교의 씨앗이 이들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만일 단원 활동이 귀국 후 ODA 분야뿐 아니라 전 분야에서 인정된다면 누구라도 인생에서 의미있는 선택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물론 그렇게 된다고 해도 말 한마디 안통하는 나라에서의 2년간의 삶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코이카 봉사 활동이 자신의 삶에서 다시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봉사활동이라 쓰고 무급노동으로 읽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