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사단법인 토닥토닥 이사장), 박은영(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 오임술(민주노총 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이채민(KOICA 해외봉사단 코디네이터), 임병안(중도일보 기자), 안선영(군포중학교 교장)님과 같은 
지역의 현장 활동가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인권현안에 대해 2주에 한 번씩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사법통제냐 일탈이냐

관리자
2023-01-12

글_임병안(중도일보 기자)


아침 숲길을 걸을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처럼 최근에 마주한 한 판결문이 내 마을을 정갈하게 했다. 경찰 내사보고서가 진실에 가깝지 않을 수 있는 부분을 낱낱히 기록해 피고인의 무죄를 밝혀주는 선고이었기 때문이다. 법원이 사법의 부당한 집행을 통제하는 본연의 기능을 발휘했구나 생각했다. 지금도 그러한 생각에는 변함은 없다. 다만, 일부는 그러한 판결은 위험할 수 있고 지나친 개인의 판단을 판결에 반영한 것일 수 있다는 시선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법원의 사법 통제인가 일탈인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고자 한다. 

대전지방법원 제4형사부는 11월 16일 1700만원 상당의 손목시계가 훔친 물건임을 알고도 판매한 혐의로 기소된 귀금속매장 대표 A(58)씨에게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보면, 서울 종로에서 귀금속점을 운영하는 A씨는 2021년 3월 12일 자신의 매장을 찾아온 B씨로부터 롤렉스 시계를 장물인줄 모르고 매수해 매장에 보관하게 된다. 그로부터 2주 후 B씨에 대해 수사하던 충남 모 경찰서 경찰관들이 A씨의 귀금속점을 찾아와 "해당 시계를 판매해서는 안 된다"라고 알렸다. 그러나 A씨는 5월 매장에 온 손님에게 1520만원을 받고 문제의 시계를 판매했고,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이 선고된 것이다.  

도난당한 시계를 A씨가 또다른 손님에게 판매해 마땅히 주인에게 돌아갔어야 할 피해품을 회수하지 못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A씨는 경제적 수익을 얻었기 때문에 어쩌면 형사처벌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의 진짜 모습은 항소심에서 드러난다. 항소심 재판부가 이 사건을 어떻게 풀어갔는지 설명하고자 펜을 들었으니 조금 더 따라와주기를 바란다. 

항소심 재판부는 양형부당 및 법리오해를 이유로 항소한 A씨 장물양도죄 사건에 사실오인의 점을 기본적 항소 이유로 먼저 검토했다. 그리고 검찰이 제출한 여러 증거 중에서 A씨에 대한 본건 장물양도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들을 추려냈다. 원심에서 증거로 채택되었던 경찰 진술조서와 현장사진과 112신고사건처리표 등은 피고인의 이 사건 공소사실에 대한 내용이 하나도 담기지 않은 것으로 판단됐다. 경찰관이 작성한 내사보고서 두 건만이 의미가 있는 증거라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먼저, A씨가 절도범을 사전에 알고 그가 가져온 시계가 장물임을 인지한 상태서 매입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매입 당시 절도범의 신분증을 확인해 사진을 찍고 나중에 다른 시계를 팔기위해 찾아온 그를 검거하기 위해 시도하고 경찰에 신고했다는 점에서다. 검찰도 공소장에 "장물인 점을 모르고 매수해 보관하게 되었다"고 기록해 인정하는 부분이다.

재판부가 다음으로 집중한 것은 당시 경찰관들이 피고인에게 제공한 정보가 어떠한 것이었느냐다. 경찰관이 작성해 법원에 증거로 제출된 '시계미압수 경위 내사보고서'에서는 경찰관들이 귀금속점을 방문해 "절대로 시계를 판매하지 말고, 보관 등에 대한 당부(후략)"하였다고 적시했다. 그러나 A씨가 피의자 신분으로 6월 25일 경찰서 수사과에서 조사 받은 조서에서는 "경찰관에게서 자세한 설명은 듣지 못하였고, 그저 문제가 있는 시계일 수 있으니 판매하지 말고 보관하고 있으라는 정도의 얘기를 들었을 뿐이다"고 진술했다. 반대로 경찰관은 검사로부터 질문을 받고 "이 시계가 당진에서 발생한 절도사건의 피해품이 맞다. 장물이니 판매하면 안 된다. 보관을 하고 계셔라"고 A씨에게 얘기했다고 진술했다. 

이 대목에서 재판부는 피고인 A씨의 주장이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다. 경찰 내사보고서가 사실성 허위일 가능성을 주목한 것이다. 

앞서 피고인 A씨가 장물임을 충분히 인식한 상태에서 시계를 판매를 했다는 기소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경찰관이 작성한 내사보고서 두 건이었다. 그러나 이들 내사보고서가 작성 시점과 보고가 이뤄진 시행일자 사이에 최대 3개월까지 차이가 있는 사실성 허위문서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에서 귀금속점을 방문한 날 기안된 것으로 표기된 '시계처분처 및 장물범 특정에 대한 내사보고서'는 귀금속점을 방문했을 때부터 A씨를 장물범으로 특정하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안 날짜를 보아서는 서울출장을 마치고 충남의 경찰서로 복귀해 내사보고서 기안을 마친 뒤 수사과장을 비롯해 경찰서장에게 보고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기안 결재내역란에는 6월 21일 오후 4시께 작성해 2시간이 지나서 근무시간이 끝나기 직전인 5시 59분께 상급자인 경위가 결재해 내사보고서가 완성된 것으로 되어 있다. 6월 21일 작성한 내사보고서를 보고일자를 3개월 소급해 기안일자만 3월 26일로 기재한 것이다. 또다른 내사보고서에서도 시계 미압수 경위를 설명하면서 6월 21일 오후 4시 18분께 작성하고도 열흘 앞선 6월 11일로 보고일자를 소급해 기재했다. 이를 통해 재판부는 경찰관들이 3월 26일 당시 피고인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한 것이 사실인지 심하게 의문을 제기하게 만드는 사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매점을 방문한 경찰관들이 명함을 남기는 등의 조치를 취한 것은 없는 상태서 2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피고인에게 시계와 관련해 연락하는 등의 조치를 아무것도 취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목했다. 더욱이 며칠이면 지문감정을 마칠 수 있을 것처럼 말하면서 시계박스를 가져간 경찰관들이 여러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하지 않는 상황에서 물건이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르는 흠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오신(誤信)할 여지가 매우 많았다고 판단했다. 

대전지법 제4형사부는 "자신들이 해야 할 후속조치를 게을리 하다가 장물이 유통되어 회수불가능한 상황이 되자 아래와 같이 애꿎은 시민에게 책임을 전가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결문에 기록했다. 

법원의 경찰과 검찰에 대한 사법통제란 무엇인지 이번 판결문이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경찰 편의에 따라 내사보고서를 발생한 때로부터 3개월 지나 작성하고도 기안일자는 사건 당시로 기록해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 당시에 생생히 작성된 것처럼 오인하는 문제가 이번 판결을 통해 드러났다고 보는 것이다. 3개월이라면 순전히 경찰관의 기억에만 의존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에 대한 재판부의 설명에도 공감됐다. 이러한 내사보고서를 바탕으로 검찰은 공소장을 작성하고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구했다. 법원에서 방파제가 되지 않았다면 그대로 유죄가 나왔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내가 바라본 이번 판결문에 대한 시선이다. 피고인이 주장하지 않은 사안에 대해 판사가 파악해 판단할 수 있느냐 또는 경찰의 내사보고서가 왜 그렇게 작성되었는지 법정에서 논쟁이 있었느냐, 개인의 생각은 가슴에 눌러담고 판결은 다른 사안 아니겠느냐 등의 다른 시선도 접할 수 있었다. 대전지검은 상고장을 제출해 대법원의 결정을 구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