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사단법인 토닥토닥 이사장), 박은영(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 오임술(민주노총 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이채민(KOICA 해외봉사단 코디네이터), 임병안(중도일보 기자), 안선영(군포중학교 교장)님과 같은 
지역의 현장 활동가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인권현안에 대해 2주에 한 번씩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맛탱이가 간 겨울’은 누구의 책임인가

관리자
2023-12-27

글_박은영(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

출처_한겨레(최예린 기자)


밥을 먹고 식당을 나서는데 누군가가 ‘날씨가 맛탱이가 갔어’ 하는 말을 들었다. 바로 지난 주, 한낮의 온도가 20도까지 오른 겨울 기온을 두고 한 말이었다. 12월 중순에 반팔을 꺼내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이들을 보며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생각하면 다들 ‘맛탱이가 간 겨울’에 ‘기후위기’라는 말을 누구나 떠올렸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례적인 이상기온은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양서류 전문가 한 분이 한 대화방에 걱정하며 사진과 글을 올려주셨다. 갑천국가습지 옆 갑천 4블록에는 12월인데도 맹꽁이가 울고 배수로에서 발견되고 있다고, 예년 같으면 모두 겨울잠을 잘 시기인데 걱정이라는 이야기 였다. 또 겨울잠에 들어갔어야 할 이끼도롱뇽도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대청호에 다녀온 활동가는 5월에 노랗게 핀다는 죽단화를 마주했고, 4월~10월에 발견된다는 남생이 무당벌레를 발견했다. 갑자기 추워져버린 지금 이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 ‘맛탱이가 간 겨울’은 누구의 책임일까?

얼마 전 제28차 유엔기후변화 당사국 총회(COP28)이 폐막했다.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는 1992년 유엔 환경개발회의에서 체결한 기후변화협약의 구체적인 이행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매년 개최하는 당사국들의 회의다. 기후위기의 심각함을 전 세계가 체감하고 있음에도 이번 회의는 공허한 수식어만 가득했다. 지구온도 상승 1.5도 제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phase-out)’이 합의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이번 COP 28의 “극적 합의”에 다다른 결론은 “화석연료로부터의 멀어지는 전환(transitioning away)” 뿐이었다. 선언적인 목표만 있고 내용은 없다. ‘재생에너지 3배 증가, 에너지 효율 2배 증가’에 대한 서약에 118개국이 참여했고, 이것이 합의문에도 명문화되었지만 각 국가 별로 실질적인 이행 기준도 없는 상황이라 사실상 각국에서 알아서 하라는 내용이다. 또한 합의문에는 핵발전과 탄소포집 활용 및 저장(CCUS) 등 저탄소 기술 가속화, 저감장치 없는 석탄발전의 단계적 감축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수 많은 사고 위험성과 처리방안이 불확실한 핵폐기물을 안아야 하는 핵발전이, 아직 검증되지 않은 기술에 의존하는 것이 기후위기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윤석열 정부는 더욱 희망이 없다. 기후환경단체 연대체인 ‘기후행동네트워크’는 지난 12월 6일  ‘오늘의 화석상’을 한국정부에게 주었다. 호주 가스전 사업 등 화석연료 확대, 손실과 피해 기금 불참 등이 선정이유였다. 한국 정부는 전세계 핵발전 용량을 3배 확대하는 ‘넷제로 뉴클리어 이니셔티브’에 동참하고, 여러 나라에 한국식 CF(무탄소) 연합을 비롯해 핵발전 확대 제안을 하는 등 기후위기 대응에 역행하는 행태를 보였다. 한술 더 떠 한국 정부는 핵발전 확대에 대한 내용을 합의문에 반영하는 것에 기여했다며 자화자찬을 하고 있다.

절망적인 윤석열 정부의 시대, 기후문제를 고민하며 923 기후정의행진도 열고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활동해나가는 차에 지역의 상황은 암담하다. 대전시는 현재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2030년에는 2018년 대비 온실가스 40%를 감축한다는 중장기 목표를 가지고 세부계획들을 세워가고 있지만, 지금 나와있는 민선 8기의 개발계획들을 보면 과연 이 목표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보문산에 케이블카를 만들고, 산업단지를 위해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골프장을 위해 녹지를 내주는 계획들이 큰 예산을 차지하는데 이제 수립될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에는 얼마만큼의 예산이 주어질까 의문이다. 그나마 있던 환경교육 예산을 깎는 행태를 보면 희망을 보기는 쉽지 않다. 대안과 사례를 만들기에도 너무 없는 이 시간을 개발사업에 대응하며 투쟁할 수 밖에 없다. 최악은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파국의 확실성이 오히려 행동을 마비시키는 것 같다. (중략) 이 마비상태를 진단하고 불안, 집단행동, 이상과 역사의 방향 사이에 새로운 동조관계를 찾아내는 것이 녹색계급의 의무이다  

브뤼노 라투르, <녹색계급의 출현>, 30쪽


생태주의가 그저 운동에 그치지 않고 정치를 조직하는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이냐는 물음으로 시작하는 <녹색계급의 출현>에서는 현 시대의 파국을 이와 같이 설명한다. 희망을 찾는 어떤 말보다 더 와닿는 이유는 무엇일까? 파국으로 가는 길이 너무나 확실히 보여 이미 틀렸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이미 끝장난지라, 지구는 맛탱이가 가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자조적 표현에 동의할 수 없는 것은, 포기조차 무책임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상황을 진단하고 새로운 실마리를 찾으려 애쓰는 것이 남은 자들의 책임있는 자세가 아닐까. 기후위기의 해법에 대해 ‘어떤 완성된 답을 찾는 게 아니라, 그 길을 같이 걸어갈 수 있는 힘을 만드는 과정을 조직해내는 게 굉장히 중요한 때’ 라고 이후연구소 하승우 소장의 말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이 맛탱이간 겨울을 만든 자들의 책임을 기어이 어떻게든 물어야 하고, 최악을 막기위해 계속 싸워나가야 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