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이채민((KOICA 해외봉사단 코디네이터)

태국 민주기념탑(출처_연합뉴스)
(지난번 원고에 이어) 사회민주주의, 진보주의 등을 표방하며 군사독재, 왕실 개혁을 주장해왔던 행동전진당의 개혁의 열망은 미완으로 끝났다. 돌풍의 주인공이었던 피타 림짜른랏 대표는 대표직을 사퇴했다1). 전진당이 야권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얻었지만, 헌법재판소의 의원직 직무 정지 결정으로 자신이 의회에서 여러 야당을 이끄는 ‘야권 대표’ 로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한편, 정부 구성의 주도권을 넘겨받은 프아타이당은 군부 진영과 손잡고 연립정부를 구성했고, 전진당은 결국 야당으로 남게 됐다. 그렇다면 국민들의 개혁 열망은 실패한 것일까.
물론 피타로 대표되는 상징성에 힘이 빠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전진당은 야권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태국의 세타 총리 역시 전진당 피타대표가 국민들에게 어필했던 모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 일례가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디지털 월렛이다. 세타 총리는 16세 이상 전 국민에게 ‘현금성 보조금’으로 1인당 1만밧(37만 3천원)을 디지털 화폐로 지급할 것을 공약했다. 하지만 이 공약은 새 정부 출범 후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부자’에게도 이 디지털 화폐를 주어야 하는가라는 논쟁이 벌어졌고, 결국 보편 지급에서 한발짝 벗어난 보조금 선별 지급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또 다른 변화는 동성애 합법화다. 태국은 굳이 동성애에 ‘합법화’라는 말을 붙일 이유가 없을 정도로 성에 개방적인 나라로 유명하다. (실제로 ‘성 소수자’라고 부르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여러 ‘성적 지향’에 대해 쿨하게 인정하고, 이들에 대한 차별은 한국에 비한다면 없는 편이나 다름없다. 함께 일하는 태국 어느 학교의 부청장이 게이인 것은 더이상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 동성 간 결혼 허용을 담은 결혼평등법은 없었는데, 이를 제정하기 위해 준비중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남성과 여성만의 결혼만 허용해왔던 기존 법에서 일정 연령 이상이 되면 성별과 관계없이 혼인신고를 할 수 있게 된다. 법안은 심의를 거쳐 12월 의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이 밖에 성 전환자가 신분증에 표기되는 성별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법안 역시 검토중이다.
이처럼 발빠르게 그동안 미뤄왔던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새 총리2)가 대단히 진보적이어서가 아니라 피타로 대표되는 전진당이 국회 다수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피타는 갔지만, 다른 피타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실패한 것이 아니라 성공하고 있는 중이라고,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은 온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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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BS News 태국 총선 돌풍 주역 피타, 제1당 전진당 대표직 사퇴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7349202)
2) 실제 세타 타위신 총리는 태국 최대 부동산 기업인 산시리 공동 창업자로 태국 부동산 재벌 중 한명이다. 탁신계 태국인당이 군부정당과의 연정을 위해 탁신계 쪽에서 지명한 총리로 이로 인해 군부 정당과의 연정에 성공, 태국 총리로 선출되었다. 여론을 의식한 듯 재임 기간 중 급여 전액을 자선재단에 기부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2014년 쿠데타 및 라마 10세 즉위 이후 첫 민정총리다. (https://m.yna.co.kr/view/AKR20230928044400076?section=international/all)
글_이채민((KOICA 해외봉사단 코디네이터)
태국 민주기념탑(출처_연합뉴스)
(지난번 원고에 이어) 사회민주주의, 진보주의 등을 표방하며 군사독재, 왕실 개혁을 주장해왔던 행동전진당의 개혁의 열망은 미완으로 끝났다. 돌풍의 주인공이었던 피타 림짜른랏 대표는 대표직을 사퇴했다1). 전진당이 야권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얻었지만, 헌법재판소의 의원직 직무 정지 결정으로 자신이 의회에서 여러 야당을 이끄는 ‘야권 대표’ 로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한편, 정부 구성의 주도권을 넘겨받은 프아타이당은 군부 진영과 손잡고 연립정부를 구성했고, 전진당은 결국 야당으로 남게 됐다. 그렇다면 국민들의 개혁 열망은 실패한 것일까.
물론 피타로 대표되는 상징성에 힘이 빠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전진당은 야권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태국의 세타 총리 역시 전진당 피타대표가 국민들에게 어필했던 모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 일례가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디지털 월렛이다. 세타 총리는 16세 이상 전 국민에게 ‘현금성 보조금’으로 1인당 1만밧(37만 3천원)을 디지털 화폐로 지급할 것을 공약했다. 하지만 이 공약은 새 정부 출범 후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부자’에게도 이 디지털 화폐를 주어야 하는가라는 논쟁이 벌어졌고, 결국 보편 지급에서 한발짝 벗어난 보조금 선별 지급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또 다른 변화는 동성애 합법화다. 태국은 굳이 동성애에 ‘합법화’라는 말을 붙일 이유가 없을 정도로 성에 개방적인 나라로 유명하다. (실제로 ‘성 소수자’라고 부르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여러 ‘성적 지향’에 대해 쿨하게 인정하고, 이들에 대한 차별은 한국에 비한다면 없는 편이나 다름없다. 함께 일하는 태국 어느 학교의 부청장이 게이인 것은 더이상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 동성 간 결혼 허용을 담은 결혼평등법은 없었는데, 이를 제정하기 위해 준비중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남성과 여성만의 결혼만 허용해왔던 기존 법에서 일정 연령 이상이 되면 성별과 관계없이 혼인신고를 할 수 있게 된다. 법안은 심의를 거쳐 12월 의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이 밖에 성 전환자가 신분증에 표기되는 성별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법안 역시 검토중이다.
이처럼 발빠르게 그동안 미뤄왔던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새 총리2)가 대단히 진보적이어서가 아니라 피타로 대표되는 전진당이 국회 다수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피타는 갔지만, 다른 피타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실패한 것이 아니라 성공하고 있는 중이라고,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은 온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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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BS News 태국 총선 돌풍 주역 피타, 제1당 전진당 대표직 사퇴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7349202)
2) 실제 세타 타위신 총리는 태국 최대 부동산 기업인 산시리 공동 창업자로 태국 부동산 재벌 중 한명이다. 탁신계 태국인당이 군부정당과의 연정을 위해 탁신계 쪽에서 지명한 총리로 이로 인해 군부 정당과의 연정에 성공, 태국 총리로 선출되었다. 여론을 의식한 듯 재임 기간 중 급여 전액을 자선재단에 기부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2014년 쿠데타 및 라마 10세 즉위 이후 첫 민정총리다. (https://m.yna.co.kr/view/AKR20230928044400076?section=international/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