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사단법인 토닥토닥 이사장), 박은영(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 오임술(민주노총 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이채민(KOICA 해외봉사단 코디네이터), 임병안(중도일보 기자), 안선영(군포중학교 교장)님과 같은 
지역의 현장 활동가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인권현안에 대해 2주에 한 번씩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극히 일부, 만에 하나!

관리자
2023-08-30

글_안선영(장곡중학교 교감)



  달리기를 거의 끝낼 무렵 비가 쏟아졌다. 어차피 땀 범벅이라 비를 맞아도 젖은 상태는 매한가지니 오히려 빗줄기가 시원해 고마웠다. 쿨다운(정리운동)으로 속도를 줄여 산책 중인 어느 모녀를 지나치는데 꼬마의 소리가 들린다. “엄마 어떡해 아줌마 비 맞아. 우산이 없나 봐” 건널목 신호 앞에서 멈춰 서니 아이가 달려와 우산을 씌워준다. 비가 제법 내려 손바닥만 한 우산에 나까지 들어가면 아이가 젖을 게 뻔하고 그렇다고 호의를 무시하기도 그렇고…. 고개만 우산 속으로 넣고 아이와 함께 건널목을 건넜다. 굳이 아파트 입구까지 우산을 씌워주려는 아이와 그 모습을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는 엄마의 선의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저녁이었다. 이게 대부분이다. 약한 것을 보면 도와주고 싶고,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퍼하는 정서. 상식선에서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 대부분이라 특별히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뉴스거리가 되는 것이다.

최근 수능 킬러 문항, 4세대 나이스 혼란, 사교육 시장에 발 담근 교사들... 등 전에 없이 교육 관련 이슈가 뜨겁다. 특히 젊은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 할 말이 많고 관련 뉴스도 수없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마당에 나까지 말을 보탤 생각은 없다. 이미 나와 있는 대책보다 딱히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하고 싶은 말 하나는 매주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교사들이 눈물 훔치며 분노하게 만드는 이들은 ‘극히 일부’라는 것이다. 분위기상 말을 못 꺼내고 있지만 학부모 또한 극히 일부의 교사들로 인해 속상하고 억울한 일을 겪는 거 알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만난 학생의 대부분은 열심히 배우고 싶어 하고, 선생님께 공손하고, 친구들과 잘 지낸다. 학부모들도 학교에 감사하고, 교사를 어려워하며, 자녀에게 학교 가서 선생님 말씀 잘 들으라고 가르쳤을 것이다.(9.4 추모제를 앞두고 교육부 처사를 보면 오히려 행정 당국은 ‘대부분’이 교사들의 분노 게이지를 높이고 있지만) 작년 9월, 학교에 발령받자마자 1년 가까이 한 학부모로부터 시달렸다. 그런데 이 학부모는 자녀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교사들을 병가 또는 학교를 떠나게 만든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같은 지역에서 오래 근무하다 보니 초등교사들과도 꽤 교류가 있는데 그 당시 힘들어하던 선생님을 보며 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자랐고 그는 고등학교 학부모가 되어 이젠 내 일이 되어버렸다. 12년 동안 지치지 않고 부당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극히 일부 학부모에 의해 교사와 학생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데 어떤 제재 방법도 없다. 그저 운 좋게 나만은 비껴가길 바랄 뿐. 가는 곳마다 분란을 만드는 교사 잘못 만나 힘든 학생과 학부모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본인들이 누군가에게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며 상처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본인들은 정상인데 상대방이 늘 이상하다. 그나마 학생들은 본인이 잘못하고 있는 건 안다. 교사에게 불손하거나 엎드려 자는 일, 수업을 방해하는 행동이 잘못인지는 알지만, 제어가 안 되니 에라 모르겠다 하는 경우가 많지 뭘 잘못하고 있는지조차 모르지는 않는다. 밖에서 고쳐야 할 것은 싸우든 타협하든 고쳐가되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극히 일부의 사람들 때문에 안에서 상처받고 좌절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극히 일부 때문에 생기는 또 하나의 문제는 만에 하나를 우려하며 이것도 안 돼, 저것도 안 돼, 민원이 들어오면 어떡해, 움츠리게 만드는 것이다. ‘열정은 민원을 부르고 정성은 고소를 부른다.’는 자조는 경험이 쌓일수록 내 이야기가 된다. 비단 교사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적당히 몸 사리고 회피하며 책임지지 않는 담당자들이 많아지면 피해는 고스란히 서비스를 받아야 할 대부분에게 돌아간다.

우스갯소리로 주변에 폭탄이 없으면 내가 폭탄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 있다. 나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정당한 요구라 우기며 누군가에게 상처 주고 있지는 않은지, 그러면서 본인이 고구마 100개 먹었다고 적반하장을 부리지는 않는지 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