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박은영(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

출처 : 단비뉴스(http://www.danbinews.com) ⓒ 유지인
얼마 전, 석탄화력발전소를 둘러싼 지역사회와 노동자, 환경의 이야기를 담은 <석탄의 일생> 상영회를 진행했다. 이야기 손님으로 이제 폐쇄를 1년 앞으로 남겨두고 있는 태안 석탄화력발전소 송상표님을 모셨다. 청중 한 분이 약간의 오해가 있긴 했으나 ‘일자리는 당신들의 문제인데 왜 당사자인 당신들이 노력하지 않고 국가에 해결해 달라고 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차분히 답을 하던 그는 울컥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탈석탄 해야겠으니 당신들의 직장을 없애겠다’는 국가의 일방적인 통보. 그를 마주한 노동자들의 마음과 그 투쟁을, 모든 이들이 다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가.
이런 질문이 친절하지 못하게 던져질 때마다 평범한 가족의 일원이었고, 자신의 일을 성실히 감당해 온 노동자로서 그가 얼마나 상처받게 될까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다. 그 질문은 국가정책으로 탈석탄을 한다면서 당사자인 노동자, 지역사회를 배제한 채 정의로운 전환을 그저 ‘지원책’ 마련으로 해소하려는 정부와 국회에 던졌어야 했다. 오랫동안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한 가족의 가장으로 일해온 노동자를 그저 ‘인력’, ‘숫자’로 보는 그 메마른 계산을 가열차게 비판하며 질문했어야 했다. 이런 현실에 놓인 송상표 노동자를 보면 지금의 국회와 국회의원 선거를 치루는 정당과 정치조직들의 모습들에서 분노가 느껴진다.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가 향하고 있는 그 ‘국민’은 도대체 누구인지, 기후위기는 앞으로 수많은 ‘송상표’들을 만들어 낼 텐데, 평범한 노동자들 하나 돌보지 못하는 정치가 무슨 소용인지.
2024년은 산업화 이전의 지구온도에 비해 연중 평균 온도가 1.5도씨를 넘어서는 첫 해가 될 것이 분명하다. 기후위기를 위한 우리의 노력이 사실상 실패하고 있다. 2015년 파리협정을 통해서 확인된 1.5도씨의 목표가 우리의 생존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음을 알면서도 이를 멈추기는 커녕 가혹화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그 실패를 너무나 선명하게 증명한다. 지금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는 기후위기의 문제다. 기후위기로 재난과 불평등에 처하게 될 사람들, 기후정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2024년 한국정치가 기후정치의 가능성을 가진 상태인가 묻는다면 그렇다 할 수 없다. 오로지 핵발전을 외치며 기후위기 문제를 경제발전의 걸림돌로 생각하는 윤석열 정부를 견제해야 할 지금의 국회와, 그 국회를 구성할 책임이 있는 정당과 정치집단이 보이는 정치상황은 혼돈 그 자체다. 더 절망적인 것은 양당체제와 꼼수정치에 지친 유권자들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주어진 상품에서만 합리적 소비를 할 수 있듯이, 대의제 하에 정당이 만들어 놓은 후보자 중에서만 선택할 일만 남은 지금의 상황이다. 유권자는 정치 소비자로서 ‘단지 투표할 권리가 있는 자’로만 한정되어 있는 듯 하다. 하지만 기후문제를 걱정하는 이들은 더 나은 상황, 더 많은 선택지를 원한다. 다양한 대안과 정책들을 고민하고 정치적 시민권을 제대로 행사하고 싶다.
하지만 양당에 유리하게 활용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양당 아니면 선택지가 없는 지금의 정치현실을 보면 차라리 백지표를 행사하며 저항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 이 심각한 기후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며, 선택지가 없으면 투표를 유보하는 정치행동을 말이다. 유권자들이 정치의 주체로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당들의 공약(정책)을 두고 판단하는 신나는 유권자가 되고 싶다. 정당과 후보자들이 기후 정치의 과제들을 스스로 최우선의 역할로 삼고, 우리가 바라는 기후 정치는 정치인의 역량 수준에 맞추는 정치가 아니라, 이미 기후위기 최전선에 있는 기후 시민들의 수준에 맞추는 정치를 보고 싶다.
지난 2월 녹색전환연구소 등으로 구성된 기후정치바람(준)에서 발표한 <2023 기후위기 국민인식조사 전국보고서-대전편>에 따르면 대전시민 10명 중 9명 가까이 ‘기후변화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총선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강조하는 후보에게 더 관심을 둘 것이라는 응답이 59.5%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심지어 대전시민 5명 중 3명 정도는 “정치적 견해와 다르더라도 투표를 고민하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지구적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답한 비율도 57%에 달한다. 대전시민들은 이미 기후문제와 그 해결을 투표의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 시민사회도, 정당도 이 지점을 잘 짚고 유권자들의 선택을 고민해야 한다. ‘기후위기 심각해’ 수준의 공감은 지났고 ‘뾰족한 무엇’인가로 시민들의 마음을 콕콕 찔러 움찔하게 해야 우리가 그토록 말하는 변화가 일어날 것 같다. 다만 그것은 기후문제를 개인의 투표와 선거시즌에만 국한되서는 안될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과 기후정의 실현은 개인이 아니라 조직화된 우리의 변화, 우리의 선택이 토대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유권자로서 필자도 정치가 재생에너지를 어떻게 확대할 수 있을까 고민이 담긴 공약, 정의로운 전환에 노동자의 마음과 편에 선 대안들을 제시하는지 살필 것이다. 또 시민단체 활동가 입장에서 우리는 그렇게 시민들에게 제시하고 있나, 얼마나 연대하고 마음을 쏟고 있나 반성하고 다음 운동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시민으로서 지킬 수 있는 기후 공약과 정책을 요구하고 선거가 끝나도 이행과정을 모니터하며 계속 기후문제에 대해 말해야 할 것이다. 투표일에 선거를 하는 것이 시민들의 의무라면 시민들의 욕구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것은 시민들의 의무에 앞서는 정치의 존재 의미다. 정치가 본인들의 존재 의미를 잊지 않기를 바란다.
** 참고자료
기후정치바람(준), <2023 기후위기 국민인식조사 전국보고서-대전편>
기후위기비상행동, <2024 기후정치선언>, https://voteclimate.kr/pages/536
글_박은영(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
출처 : 단비뉴스(http://www.danbinews.com) ⓒ 유지인
얼마 전, 석탄화력발전소를 둘러싼 지역사회와 노동자, 환경의 이야기를 담은 <석탄의 일생> 상영회를 진행했다. 이야기 손님으로 이제 폐쇄를 1년 앞으로 남겨두고 있는 태안 석탄화력발전소 송상표님을 모셨다. 청중 한 분이 약간의 오해가 있긴 했으나 ‘일자리는 당신들의 문제인데 왜 당사자인 당신들이 노력하지 않고 국가에 해결해 달라고 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차분히 답을 하던 그는 울컥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탈석탄 해야겠으니 당신들의 직장을 없애겠다’는 국가의 일방적인 통보. 그를 마주한 노동자들의 마음과 그 투쟁을, 모든 이들이 다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가.
이런 질문이 친절하지 못하게 던져질 때마다 평범한 가족의 일원이었고, 자신의 일을 성실히 감당해 온 노동자로서 그가 얼마나 상처받게 될까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다. 그 질문은 국가정책으로 탈석탄을 한다면서 당사자인 노동자, 지역사회를 배제한 채 정의로운 전환을 그저 ‘지원책’ 마련으로 해소하려는 정부와 국회에 던졌어야 했다. 오랫동안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한 가족의 가장으로 일해온 노동자를 그저 ‘인력’, ‘숫자’로 보는 그 메마른 계산을 가열차게 비판하며 질문했어야 했다. 이런 현실에 놓인 송상표 노동자를 보면 지금의 국회와 국회의원 선거를 치루는 정당과 정치조직들의 모습들에서 분노가 느껴진다.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가 향하고 있는 그 ‘국민’은 도대체 누구인지, 기후위기는 앞으로 수많은 ‘송상표’들을 만들어 낼 텐데, 평범한 노동자들 하나 돌보지 못하는 정치가 무슨 소용인지.
2024년은 산업화 이전의 지구온도에 비해 연중 평균 온도가 1.5도씨를 넘어서는 첫 해가 될 것이 분명하다. 기후위기를 위한 우리의 노력이 사실상 실패하고 있다. 2015년 파리협정을 통해서 확인된 1.5도씨의 목표가 우리의 생존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음을 알면서도 이를 멈추기는 커녕 가혹화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그 실패를 너무나 선명하게 증명한다. 지금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는 기후위기의 문제다. 기후위기로 재난과 불평등에 처하게 될 사람들, 기후정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2024년 한국정치가 기후정치의 가능성을 가진 상태인가 묻는다면 그렇다 할 수 없다. 오로지 핵발전을 외치며 기후위기 문제를 경제발전의 걸림돌로 생각하는 윤석열 정부를 견제해야 할 지금의 국회와, 그 국회를 구성할 책임이 있는 정당과 정치집단이 보이는 정치상황은 혼돈 그 자체다. 더 절망적인 것은 양당체제와 꼼수정치에 지친 유권자들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주어진 상품에서만 합리적 소비를 할 수 있듯이, 대의제 하에 정당이 만들어 놓은 후보자 중에서만 선택할 일만 남은 지금의 상황이다. 유권자는 정치 소비자로서 ‘단지 투표할 권리가 있는 자’로만 한정되어 있는 듯 하다. 하지만 기후문제를 걱정하는 이들은 더 나은 상황, 더 많은 선택지를 원한다. 다양한 대안과 정책들을 고민하고 정치적 시민권을 제대로 행사하고 싶다.
하지만 양당에 유리하게 활용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양당 아니면 선택지가 없는 지금의 정치현실을 보면 차라리 백지표를 행사하며 저항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 이 심각한 기후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며, 선택지가 없으면 투표를 유보하는 정치행동을 말이다. 유권자들이 정치의 주체로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당들의 공약(정책)을 두고 판단하는 신나는 유권자가 되고 싶다. 정당과 후보자들이 기후 정치의 과제들을 스스로 최우선의 역할로 삼고, 우리가 바라는 기후 정치는 정치인의 역량 수준에 맞추는 정치가 아니라, 이미 기후위기 최전선에 있는 기후 시민들의 수준에 맞추는 정치를 보고 싶다.
지난 2월 녹색전환연구소 등으로 구성된 기후정치바람(준)에서 발표한 <2023 기후위기 국민인식조사 전국보고서-대전편>에 따르면 대전시민 10명 중 9명 가까이 ‘기후변화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총선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강조하는 후보에게 더 관심을 둘 것이라는 응답이 59.5%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심지어 대전시민 5명 중 3명 정도는 “정치적 견해와 다르더라도 투표를 고민하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지구적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답한 비율도 57%에 달한다. 대전시민들은 이미 기후문제와 그 해결을 투표의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 시민사회도, 정당도 이 지점을 잘 짚고 유권자들의 선택을 고민해야 한다. ‘기후위기 심각해’ 수준의 공감은 지났고 ‘뾰족한 무엇’인가로 시민들의 마음을 콕콕 찔러 움찔하게 해야 우리가 그토록 말하는 변화가 일어날 것 같다. 다만 그것은 기후문제를 개인의 투표와 선거시즌에만 국한되서는 안될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과 기후정의 실현은 개인이 아니라 조직화된 우리의 변화, 우리의 선택이 토대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유권자로서 필자도 정치가 재생에너지를 어떻게 확대할 수 있을까 고민이 담긴 공약, 정의로운 전환에 노동자의 마음과 편에 선 대안들을 제시하는지 살필 것이다. 또 시민단체 활동가 입장에서 우리는 그렇게 시민들에게 제시하고 있나, 얼마나 연대하고 마음을 쏟고 있나 반성하고 다음 운동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시민으로서 지킬 수 있는 기후 공약과 정책을 요구하고 선거가 끝나도 이행과정을 모니터하며 계속 기후문제에 대해 말해야 할 것이다. 투표일에 선거를 하는 것이 시민들의 의무라면 시민들의 욕구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것은 시민들의 의무에 앞서는 정치의 존재 의미다. 정치가 본인들의 존재 의미를 잊지 않기를 바란다.
** 참고자료
기후정치바람(준), <2023 기후위기 국민인식조사 전국보고서-대전편>
기후위기비상행동, <2024 기후정치선언>, https://voteclimate.kr/pages/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