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사단법인 토닥토닥 이사장), 박은영(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 오임술(민주노총 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이채민(KOICA 해외봉사단 코디네이터), 임병안(중도일보 기자), 안선영(군포중학교 교장)님과 같은 
지역의 현장 활동가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인권현안에 대해 2주에 한 번씩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인권의 보루 법원을 바라보며

관리자
2024-02-07

글_임병안(중도일보 차장)


저는 요즘 주로 법원에서 업무를 봅니다. 아침에 회사 편집국 사무실에 출근해 회의를 마치고 법원과 그 주변의 장소를 오가며 사람을 만나고 통화하고 때로는 수첩을 꺼내 무엇인가 기록합니다. 법원에 있는 여러 법정에서는 공개재판이 매일 공백 없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재판은 공개되어 사건 당사자이거나 변호인 아니면서 타인의 재판을 방청하는 이들은 매우 드뭅니다. 그래서 법원을 출입하며 제가 하는 일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주변 농경지를 적시는 일 같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검사가, 피고가, 변호인이, 판사가 한 사건에 관해 설명하고 해석해 법률적 판단을 내리는 동안 깊은 우물이 만들어져 그 안에 법률적 결정이라는 지혜가 웅덩이처럼 모이죠. 안타깝게도 그 우물은 당사자에게는 매우 깊고 중요한 결정이면서 이러한 사건에 대한 법률적 판단 결과가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있으나 주변으로 확산하지 못하는 특성이 있지요. 저희가 취재와 기사의 방식으로 사건을 소개하고 법률적 판단을 소개함으로써 한 개인의 일은 사회적 의미로 확산하고, 때로는 본보기를 삼기도 합니다. 

대전법원 전경
출처_연합뉴스

최근 저는 대전법원에서 화가 나 흥분한 일이 있습니다. 법원은 재판과 행정 두 물줄기로 이뤄진 기관인데 법원이 행정을 펼칠 때 시민을 자꾸 소외시킨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가장 근래에 흥분했던 일은 대전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이 함께 사용하는 둔산동 법원청사 1층 리모델링때문입니다. 법관 또는 덕망 있는 조정위원 중재로 의견을 교환하고 원만한 합의를 도모하는 조정실을 당초 법원 3~4층에서 1층으로 옮겼습니다. 신분증을 제출하고 출입증을 받은 후에 입장할 수 있던 조정실이 1층으로 옮겨지면서 민원인들은 출입에 편리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제가 흥분했던 것은 법원을 찾은 시민이 통행하는 통로가 변경되는데 지금 사용 중인 통로보다 복잡해져 불편을 겪게 됐다는 점입니다. 실은 제가 기대하는 수준보다 형편 없이 좁아 법원을 찾는 이를 위한 배려를 느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법원을 방문한 경험이 있다면 아실 테지만, 법정에 찾아가려면 1층 현관으로 입장해 오른쪽으로 난 학교 복도보다 좁은 통로를 걸어가야 합니다. 법원 1층 공간을 곰곰이 살펴보면, 현관으로 입장한 시민들은 원래는 오른쪽 통로가 아니라 직선으로 곧장 걸어가 법정에 가는 2층 오르는 계단까지 쉽게 닿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앙에 있는 엘리베이터에 민원인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방호펜스가 만들어지면서 시민들은 직선으로 관통할 수 없어 오른쪽 통로로 우회했던 셈이죠. 

이번에 청사 리모델링 때 조정실이 1층에 마련되면서 법관과 직원들 전용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지금 사용 중인 통로마저 통행을 통제할 예정입니다. 대신 엘리베이터 왼쪽 방향의 통로를 개방해 시민들은 이곳을 통행해 법정에 가도록 조치할 예정인데, 제가 통로를 미리 가보니 더 불편했습니다. 직선이 아니어서 오른쪽으로 꺾고 다시 오른쪽으로 꺾은 후 왼쪽으로 돌아서야 법정에 가는 계단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휠체어에 몸을 맡긴 시민이 과연 서로 부딪치는 불안감 없이 교행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좁게 느껴졌습니다. 청사를 개선한다며 예산을 들여 리모델링할 때 시민을 위한 통로는 고려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편리하게 해주지 못할망정 오히려 불편하게 하는 법원 행정이 이래도 되는 것인가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법관과 법원 직원들은 현관에서 엘리베이터까지 막힘 없이 이용하고, 시민들은 한쪽 구석으로 놓인 통로로 다닌다는 점에서, 저는 법원이 시민을 소외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러한 생각을 털어놓았을 때 몇몇 변호사들이 이러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법원 청사에 입장했을 때 법정에 올라가는 계단이나 몸이 불편한 분들이 이용할 엘리베이터가 한눈에 들어와야 하는데 지금 대전 법원청사는 미로같다고요. 중앙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법관과 직원들의 전용 공간으로 사용하면서 출입통제 펜스를 설치하고 가벽을 세우는 바람에 원래는 한 공간으로 열려 있던 공간이 정문과 후문으로 분할되고 시민들은 돌아서 가게 되었다고요. 심지어는 엘리베이터 위치 표시도 충분하지 않아 몸 불편한 노인들이 경사 심한 계단을 꾸역꾸역 걸어서 올라가게 만든다고요. 

저는 2002년 9월에도 법원이 시민들이 겪는 불편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대덕구 오정동과 중구 부사동에 있는 등기소를 폐쇄하고 유성구 원신흥동 한적한 곳에 등기국을 개설할 때 경험한 일입니다. 제가 그동안 취재 때 경험한 바로는 민원인들이 자주 찾는 시설을 폐쇄하고 이전할 때는 시민들께 미리 충분히 알려 문은 닫은 뒤 헛걸음하는 불편을 덜어주는 게 당연한 조치입니다. 등기소 폐쇄 30일 앞두고 오정동과 부사동 등기소를 각각 찾아갔으나 폐쇄와 이전을 알리는 현수막 한 장 붙어있지 않더라구요. 당시 등기소를 이용하는 시민 몇 분께 여쭈어도 시설이 폐쇄될 예정이라는 것을 아는 이는 드물었습니다. 법원은 재판이 이뤄지는 곳이면서 시민을 위한 서비스가 제공되는 곳입니다. 시민들의 편의가 증진되도록 노력하고 청사 내에서 안전하고 쾌적하게 통행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