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사단법인 토닥토닥 이사장), 박은영(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 오임술(민주노총 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이채민(KOICA 해외봉사단 코디네이터), 임병안(중도일보 기자), 안선영(군포중학교 교장)님과 같은 
지역의 현장 활동가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인권현안에 대해 2주에 한 번씩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드라마‘노무사 노무진’임순례 감독의 노동조합에 대한 불편한 인식

관리자
2025-06-24

글_오임술(민주노총 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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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매일노동뉴스


드라마를 즐겨보지 않지만 ‘노무사 노무진’드라마는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각 직종 현실 노동자의 고통스런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판타지물 드라마의 한계인지는 모르지만, 노무사의 역할이 과대 포장되고 노동조합과 유족들의 능동적 역할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임순례 감독은 ‘동물권행동’ 카라 대표로 있으면서 직원들이 사측 모르게 비밀리에 노조를 결성 했다며 ‘가장 실망스럽다’라고 지적하고 ‘후원금이 줄어드는 상황에서의 노조결성과 임금인상 요구를 비판’하고 ‘임금인상이 필요하다면 영리기업이나 공무원을 하라‘는 둥 노조 간부 징계 등 노동조합에 대한 무지와 혐오를 드러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노동조합 결성 기준을 영리와 비영리로 정해야 하는지 나름의 진보적 목소리를 내오던 임순례 감독이기에 알려지지 않은 다른 속사정이 있을 것을 전제로 상황을 이해해보려 했다. 그렇지만 수많은 비영리 단체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제약할 때 나오는 대사가 임 감독의 말과 비슷했으며 인간적 실망과 관계를 들먹이는 것은 일반 업체 관리자들에게서도 듣던 이야기다. 우리 사회의 소위 진보층 고학력 출신이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분리해서 불쌍한 노동자, 불온한 노동자로 보고 있다는 심증이 굳어진다. 

드라마 초반 방영분에서 젊은 노동자가 끼임 사고에 사망한 사건은 2018년 태안화력에서 산재로 사망한 고 김용균을 연상케 한다. 원청과 하청,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후진적 관계에서 설비 개선은 원청의 권한이지만 위험 상황을 알려도 설비는 개선되지 않는다. 노동조합은 그래서 원청의 권한 있는 책임자를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고, 하청 노동조합이 원청에게 교섭할 수 있는 권리를 줄 것을 요구했다. 힘도 없는 하청 업체를 상대로 파업을 하면 이상하게도 원청이 노동자 개인에게 천문학적인 손해배상과 가압류 및 인신 구속이 잇따랐다. 원청이 책임져라! 일하다 죽지 않게 위험의 외주화 중단하고 직접 고용하라! 산재사망사고의 원인은 명백하게 안전을 책임질 권한이 있는 원청과 위험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하청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2019년 고김용균 사망사고 특별 노동안전조사위원회는 노동계, 발전회사, 전문가, 정부·여당 등이 2여 년 간의 논의 끝에 하청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할 것을 정부에 권고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과 윤석열 일당을 거쳤지만, 직접고용과 노조법 개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원청의 책임자들은 처벌받지 않았고 고액의 돈을 받고 김앤장의 변호사(노무사)들이 등장했다.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노무사가 아니라 사측을 대변하는 전문지식인과 사측은 노동자들이 너무 성실해서 하지 말라는 일을 했다거나,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는 한결같은 태도를 취한다.

그런데 우리의 정당한 요구가 받아들이지 않고 있던 그 공공기관 사업장에서 또 한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빼앗겼다.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며 손피켓을 들었던 김용균,‘이재명과 기본소득’책을 열심히 읽고 봉사활동에 진심이었던 고김충연 노동자는 같은 현장에서 죽임을 당했다. 산재사고 통계를 보면 사망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에서 또 발생하고 산재가 발생한 곳과 설비에서 다시 발생한 경우가 대다수다. 최근 SPC 삼립 산재 살인도 한 사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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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인권재단 사람


노동안전 활동을 담당하는 노동조합 간부들은 이야기한다. 노동조합이 있는 곳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노동조합은 임금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산재가 많이 발생하는 제조업 및 건설 현장에서 민주적 노동조합 있는 곳과 노동조합이 어용이거나 노동조합이 없는 곳과의 차이는 통계를 보지 않고도 현장에서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민주적인 노동조합이 있어도 소수노조 이거나 하청 노동조합일 경우에는 요구조차 어렵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국제적위상을 올리려면 UN산하 ILO (국제노동기구)가 협약한 내용만이라도 대한민국이 준수해야 할 것이다. 노조법 개정을 통한 원청과 교섭하고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소위 ‘노란봉투법’은 제정되어야 한다. 

다시 돌아와서 임순례 감독만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감독과 대표이사의 역할은 다를 수 있지만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이 진보적이라는 사람들도 진보적 정권도 노동조합과 노동자에 대한 이중적 인식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시민사회단체 활동하다 정권이 바뀌면서 신분이 사용자 위치로 올라선 활동가 출신들의 인식도 임순례 대표 사례와 흡사한 경우를 쉬이 듣게 된다. 드라마 속 수많은 노동자 사망사고 사례들이 노무사 개인이 해결하는 에피소드처럼 소비되는 것이 불편하다. 대부분은 유족과 노동조합의 힘겨운 투쟁 과정을 통해 어느 정도의 사회적 이슈를 만들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만 대부분 조용히 사라진다. 한해 사고 사망 노동자만 1,000여명이지만 뉴스 한 자락이라도 나오는 인원은 몇 명이 되지 않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오래전 소위 활동가들의 노동권과 노조에 대한 글을 인권연대에 쓴 적이 있었지만 여전히 시민사회단체나 각종 헌신과 봉사적 개념을 가진 단체의 활동가들이 겪는 노동자성 부정과 노조 필요성은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프랑스의 소방노조 파업과 영국 해군의 파업 역사를 우리 사회는 알고나 있는 것일까! 아직 우리 사회는 준비가 안 되었으니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이 더 필요하다고 할 것인가! 헌신과 희생이 필요한 분야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활동가, 봉사, 헌신을 앞세우며 불합리한 대우, 정당한 임금을 보장하지 않고 노동착취를 하는 것은 범죄일 뿐이다. 

노동자는 불쌍해야 하고 시혜의 대상일 때만 노동조합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권리를 제공받고 스스로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 배경과 토대를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고학력자들이 넘쳐나는 한국은 온통 은혜와 시혜라는 단어만 있을 뿐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스스로 세상을 바꾸고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 주인이 되지 못하고 있다. 전태일 열사가 대학생 친구를 원했던 것은 근로기준법이 한자투성이로 쓰여졌기 때문이었다. 노동자들을 불쌍하게 볼 대학생 친구가 아니라 스스로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도움을 준 친구가 필요했던 1970년과 현 2025년 친구는 누구여야 할까! 이 땅의 모든 시민사회단체를 비롯한 봉사와 헌신을 일삼고 있는 활동가들이여! 민주적 노동조합을 결성하라! 노동조합이 그대들을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변혁하는 당당한 노동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