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사단법인 토닥토닥 이사장), 박은영(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 오임술(민주노총 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이채민(KOICA 해외봉사단 코디네이터), 임병안(중도일보 기자), 안선영(군포중학교 교장)님과 같은 
지역의 현장 활동가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인권현안에 대해 2주에 한 번씩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관리자
2025-10-01

글_이채민(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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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 ⓒ 뉴시스


인도네시아 인연 

인도네시아에 와서 많은 분들께 신세를 지고 있지만, 유독 잘 챙겨주시는 가족이 있다. 지금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정치인들의 선배셨고, 나를 보며 과거 생각이 어렴풋 난다시면서 평소에도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곤 한다. 그러다가 한 모임에서 이번 조국혁신당의 성폭력 관련 문제가 나와 얘기나누던 중 나는 ‘왜 여전히 그 모양이냐’며 ‘어떻게 수십 년이 지나도 바뀌는 게 없는지 너무 너무 속상하다’며 울컥했다. 

가만히 내 모든 얘기를 듣고 계시던 그 분께서 내 눈을 지긋이 보시며 말씀하셨다. “정말, 정말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터지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앉아있을 수가 없어 모임에서 나와 한참을 울었다. 저 말을 먼 나라 인도네시아에서까지 와서 듣는구나. 지금까지 누구에게서도 들을 수 없었던 저 말을, ‘미안하다’는 그 말을…  


너무나 아픈 기억 

시간이 약이라고 하는데, 때로 그 말은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 잔인하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또렷해지는 기억들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반은 굳이 겪지 않았을 일들을 다른 세상의 반은 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일상생활에서, 직장생활에서, 정치적 공간에서 겪는다. 

한번만으로도 너무나 힘든 일들이 동료들에 의해 친구들에 의해 두번, 세번 아니 수십번 곱씹고 되뇌어야 한다. 끝임없이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혹은 모종의 세력으로부터 조종받은 것은 아닌지 의심당하고 증명해야 한다. 25년 전 ‘100인 위원회’가 그랬다. 이유없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여성 활동가들.. 운동권 내 만연해있던 성폭력을 뿌리뽑자고 만들었다. 더 이상 피해자가 쉬쉬하며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지 않게 하자 했다. 그리고 우리는 절.대.로 지치지 말고 끝까지 싸워서 남자고 했다.  

3년을 그렇게 싸우다 만신창이가 됐고, 모두들 흩어졌으며 지쳤다. 나에겐 너무나 크고 대단한 선배가 너에겐 성폭력범이었다는 사실을 우리 눈으로도 보고 들으면서도 믿지 못했고,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두둔한 조직의 벽을 결국 넘지 못했다. 언론의 좌파 때려잡기에 보기좋게 이용당했다며 조직이 이 꼴이 돼 좋냐는 비아냥까지..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렇게 그 벽은 너무나 공고했고, 강했다. 그에 비해 우리는 한없이 처절했고, 고통스러웠으며, 괴로웠다. 

 

트라우마 

 25년 전 같이 싸웠던 동지들 중에 아직 남아 있는 사람도 있고, 떠난 사람도 있다.  끝까지 남아서 끈질기게 겪었던 일들에 대해 증언하겠노라며 피투성이가 된 지도 모르고 남아 있던 나같은 이도 있다.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보낸다. 밥도 잘 먹고 똥도 잘 싼다. 그러다가 이렇게 또 한번 뒤통수를 맞으면 아무렇지 않게 보냈던 일상에 태풍이 휘몰아친다. 25년 전 모습으로 되돌아 가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내가 이럴진데, 현장에서, 곳곳에서 몸으로 부딪치고 있는 사람들은 어떨까 싶어 감히 어떠냐는 말조차 꺼낼 수가 없다. 

 내가 존경하고 평생 함께 같이 가고 싶었던 그 선배들은 누구였던걸까. 싸이코인가. 아니면 또라이인가. 그도 아니면 성 도착증 환자였나.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진짜 내 친구에게 그런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아뿔싸...그걸 이용해서 너를 또 한번 죽였구나. 그는 여전히 글을 쓰고, 진보를 참칭하며 존경을 받고 있구나. 도대체 그런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리고 그를 비호하는 당신들은 누구입니까. 

몰랐다면 무능이고, 알았다면 공범이다. 



이채민 회원은 15년 전 코이카 봉사단원으로 인도네시아에 처음 왔다. 

이후 여성정책 관련 일을 하다가 가족과 함께 태국으로 떠나 한국국제협력단 봉사단 코디네이터로 일했다. 지금은 다시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