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안선영(군포중학교)

출처_서울신문
<중학생 기초학력 향상을 위한 맞춤 지원 방안> 연구자들이 학교에 찾아왔다. 진짜 방안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지만, 우리 학교는 기초학력 미도달 비율이 30%를 넘으니 실태 분석하기엔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오시라 했다. 하지만 역시나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하~ 어쩌지?’ 라는 생각과 함께 수렁에 빠져드는 건 이미 예상한 일이었다. 국가는 오랫동안 기초학력 지원 정책과 예산을 세워왔지만, 점점 더 기초학력이 떨어진다며 뭇매를 맞고 있다. 그렇다면 기초학력에 대한 접근이 달라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국가기초학력지원포탈」에 기초학력이란 ‘학습을 지속해 나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능력’이고, 기초학력을 보장하는 것은 ‘모든 학생이 자신의 잠재된 역량과 소질을 계발하고, 궁극적으로 자아를 실현하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기초학력 보장법」에서 기초학력이란 ‘학교 교육과정을 통하여 갖추어야 하는 최소한의 성취 기준을 충족하는 학력’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기초학력에 대한 정의와 기초학력을 보장해야 하는 이유가 잘 설명되어 있다. 그런데 왜 기초학력 진단 과목은 국수영(필수) 사과역(선택)일까? 이 교과 영역만 학습에 해당하는 걸까? 아니면 이것이 그 이외의 학습(예술, 체육, 배려, 소통, 공감 등등)을 위해서도 최소한 필요하다는 의미일까? 핵심적인 의문은 왜 학습을 지속해 나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능력으로 국수영만 평가하는지가 궁금하다.(실은 불만이다.) 자아를 실현하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을 국수영으로 국한해서 진단하는 것에 대한 설명과 납득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경계선 지능 A는 “식사 하셨어요?” “맛있게 드세요.” 상황에 맞는 인사로 기분 좋게 한다. 개구쟁이 B는 시끄럽지만 항상 친구들이 모여들고 자리를 유쾌하게 만든다. 하루 종일 말이 없는 C는 그림을 잘 그린다. 노래와 춤이 출중한 D, 운동장에만 나가면 날아다니는 E 모두 국수영 평가에서는 기초학력 미도달자들이다. 기존의 기초학력 진단 방식을 고집하는 한 이 학생들이 기초학력 미도달을 벗어나긴 어려울 것이다. 특히 이중 삼중 언어를 쓰는 이주배경 학생들은 오히려 잠재된 역량이 더 풍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진단평가 방식으로는 대부분 기초학력 미도달 학생 신분을 벗어나기 힘들다.
학교는 향상도 평가를 통해 기초학력 미도달 비율을 낮추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한다. 왜? 교육청에 기초학력 향상도를 보고해야 하는데 예산을 지원받고도 기초학력 미도달 비율이 제자리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있으니 온갖 기술(?)을 동원한다. 향상도 평가 기출문제 반복해서 풀리기, 남겨서 1:1 지도하기, 도망가는 학생들과 실랑이 하기, 야단치고 달래기를 반복하며 어떻게든 향상도 시험을 통과시키기 위한 이런 노력들이 과연 학생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을 마련해 주는 일인지 잘 모르겠다.
바라는 것은 최소한 국가에서 정의한 기초학력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먼저 형성되고 그대로 실현되는 것이다. 국수영 문제집 펼쳐 놓고 책상에 앉아 있는 것만이 학습이라는 인식이 사라지는 것이다. 학습, 공부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지만 여전히 입시제도에 따라 사교육이 발 빠르게 움직이는 학력(學力 아닌 學歷)중심 사회에서 기초학력이라는 기준으로 공부 못하는 학생을 낙인찍고 그 외의 다른 방면으로 빛나는 것은 부차적이거나 쓸데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인식이 지속되는 한 기초학력 향상 방안은 끝내 마련되지 못할 것이다. 진짜 기초학력이 무엇인지 그것이 알고 싶다.
글_안선영(군포중학교)
출처_서울신문
<중학생 기초학력 향상을 위한 맞춤 지원 방안> 연구자들이 학교에 찾아왔다. 진짜 방안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지만, 우리 학교는 기초학력 미도달 비율이 30%를 넘으니 실태 분석하기엔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오시라 했다. 하지만 역시나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하~ 어쩌지?’ 라는 생각과 함께 수렁에 빠져드는 건 이미 예상한 일이었다. 국가는 오랫동안 기초학력 지원 정책과 예산을 세워왔지만, 점점 더 기초학력이 떨어진다며 뭇매를 맞고 있다. 그렇다면 기초학력에 대한 접근이 달라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국가기초학력지원포탈」에 기초학력이란 ‘학습을 지속해 나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능력’이고, 기초학력을 보장하는 것은 ‘모든 학생이 자신의 잠재된 역량과 소질을 계발하고, 궁극적으로 자아를 실현하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기초학력 보장법」에서 기초학력이란 ‘학교 교육과정을 통하여 갖추어야 하는 최소한의 성취 기준을 충족하는 학력’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기초학력에 대한 정의와 기초학력을 보장해야 하는 이유가 잘 설명되어 있다. 그런데 왜 기초학력 진단 과목은 국수영(필수) 사과역(선택)일까? 이 교과 영역만 학습에 해당하는 걸까? 아니면 이것이 그 이외의 학습(예술, 체육, 배려, 소통, 공감 등등)을 위해서도 최소한 필요하다는 의미일까? 핵심적인 의문은 왜 학습을 지속해 나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능력으로 국수영만 평가하는지가 궁금하다.(실은 불만이다.) 자아를 실현하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을 국수영으로 국한해서 진단하는 것에 대한 설명과 납득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경계선 지능 A는 “식사 하셨어요?” “맛있게 드세요.” 상황에 맞는 인사로 기분 좋게 한다. 개구쟁이 B는 시끄럽지만 항상 친구들이 모여들고 자리를 유쾌하게 만든다. 하루 종일 말이 없는 C는 그림을 잘 그린다. 노래와 춤이 출중한 D, 운동장에만 나가면 날아다니는 E 모두 국수영 평가에서는 기초학력 미도달자들이다. 기존의 기초학력 진단 방식을 고집하는 한 이 학생들이 기초학력 미도달을 벗어나긴 어려울 것이다. 특히 이중 삼중 언어를 쓰는 이주배경 학생들은 오히려 잠재된 역량이 더 풍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진단평가 방식으로는 대부분 기초학력 미도달 학생 신분을 벗어나기 힘들다.
학교는 향상도 평가를 통해 기초학력 미도달 비율을 낮추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한다. 왜? 교육청에 기초학력 향상도를 보고해야 하는데 예산을 지원받고도 기초학력 미도달 비율이 제자리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있으니 온갖 기술(?)을 동원한다. 향상도 평가 기출문제 반복해서 풀리기, 남겨서 1:1 지도하기, 도망가는 학생들과 실랑이 하기, 야단치고 달래기를 반복하며 어떻게든 향상도 시험을 통과시키기 위한 이런 노력들이 과연 학생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을 마련해 주는 일인지 잘 모르겠다.
바라는 것은 최소한 국가에서 정의한 기초학력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먼저 형성되고 그대로 실현되는 것이다. 국수영 문제집 펼쳐 놓고 책상에 앉아 있는 것만이 학습이라는 인식이 사라지는 것이다. 학습, 공부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지만 여전히 입시제도에 따라 사교육이 발 빠르게 움직이는 학력(學力 아닌 學歷)중심 사회에서 기초학력이라는 기준으로 공부 못하는 학생을 낙인찍고 그 외의 다른 방면으로 빛나는 것은 부차적이거나 쓸데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인식이 지속되는 한 기초학력 향상 방안은 끝내 마련되지 못할 것이다. 진짜 기초학력이 무엇인지 그것이 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