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임병안(중도일보)

책표지
제가 참여하는 몇 개의 공부 모임 중에 인천시 부평구에서 주로 모이는 일제전쟁유적네트워크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에 대비해 일제가 국내에 조성한 방공호와 무기공장, 자원수탈을 연구하고 현장을 조사해 기록하고자 지난해 2월 출범했지요. 인천시 부평에 일본 육군이 조성한 무기공장 '육군조병창'이 있었고, 무기공장을 동굴 안에 숨기려고 조성한 방공호가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대전은 일제강점기 대구에 이어 가장 큰 규모의 일본군 부대가 주둔한 곳이면서 근래에는 갑천습지 월평공원에서 조선제련의 금광 수탈현장이 발견되었죠. 보문산과 동구 신상동에서도 방공호로 여겨지는 동굴이 여럿 나왔고요. 이러한 전쟁유적은 일제가 한반도를 태평양전쟁에서 마지막 결전의 전쟁터로 활용할 목적으로 인천과 대전뿐만 아니라 군산, 광주, 경남 등 전국에 조성했는데 함께 조사해 기록으로 남기자는 취지입니다.
이 모임에서 만난 이혜민 작가는 저와 나이도 비슷하고 동아일보 기자로 지냈다는 직업 상의 공통된 경험때문에 서울의 일제 전쟁유적을 견학하는 자리에서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부모님이 돼지농장을 하였노라고 먼저 이야기 꺼내고 건강이 좋지 않아 신문사를 퇴사해 지금은 작가로 글을 쓰면서 두 아이를 돌보고 있다고도 하였습니다. 견학 모임을 마치고 그가 쓴 책을 구입해 서둘러 읽어습니다.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았다' 이혜민 작가의 책은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6·25전쟁에서 북한군에 포로로 생포되었다가 탈북의 방식으로 남한으로 귀환한 국군포로들을 이 작가가 만나 구술을 기록한 책입니다. 저도 기자생활을 하면서 나름 산전수전 겪어봤다고 생각하는데 '북에서 돌아오지 못한 우리 국군포로'가 있다는 것조차 저에게 낯선 주제이었고,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6.25전쟁이 휴전하고 북에 억류된 국군포로 중 현재 국내에 귀환한 생존자 11명을 만나 그중 9명 생애를 책에서 간접적으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전투 중에 총탄과 수류탄에 부상을 당한 채 강원도 횡성과 철원 등에서 포로가 되는 과정은 참혹하거니와 문제는 휴전으로 전쟁을 마쳤음에도 자신의 대한민국으로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가 지난 70여 년간 우리가 인지하지 못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책에서 소개한 북한인권백서에 따르면 6.25 전정 정전 당시 8만2000여 명의 한국군이 실종됐고, 그 중 5만~7만 명 정도가 국군포로로 북한이나 북한의 동맹국에 억류돼 있다고 추정합니다. 국군포로와 탈북자의 진술을 바탕으로 생존자 500여 명이 북한에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했고요. 정전협정이 체결됐지만 국군포로의 상당수는 본국으로 송환되지 못했습니다. 북한 정부는 국군포로들에게 정전협정이 체결되어 포로를 자국으로 귀환시킬 책임이 있음을 당사자들에게 알리지 않았고, 포로가 알게 되어 귀환을 요구했더라도 개인의 귀환을 보장하지 않았습니다.
책에서 알게 된 사실은, 국군포로는 북한 내무성 건설대, 교화소, 인민군에서 탄광·목공·공장·농업 노동자로 험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정전협정 이후 국군포로들은 내무성 건설대와 인민군 등에 편입되거나 교화소에 구금되었고, 국군포로를 아버지로 친인척으로 둔 사람들은 연좌제때문에 군 입대는 물론 노동당 가입이 어려워서 북한에서도 주류 사회에 편입될 가능성이 낮았다고 하고요.
국가의 부름을 받아 6.25전쟁에 참전해 원하지 않게 북에 끌려갔지만, 우리 정부의 귀환 없이 결국 스스로 '탈북'을 해 남으로 돌아온 이들의 육성을 읽으며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습니다. 이혜민 작가는 기자에게 대전에 생존한 귀환 국군포로가 한 분 계시다고 하였습니다. 마침 앞서 발행한 책의 속편 성격의 '이 말만은 남기고 싶었다오'라는 마찬가지로 증언 채록집을 이 작가가 발행했더군요. 구입해서 목차만 살펴봤는데 6.25참전유공자회 대전 서구지회에 소속한 원로 용사 한 분에 대한 글이 소개되어 있네요. 1994년 국군포로 조창호(예비역 중위)가 탈북하면서 미귀환 국군포로의 존재가 남한 사회에 공개됐습니다. 이후 국군포로의 귀환 사례가 꾸준히 늘어나다가 지금은 그러한 소식이 더는 없지요. 6.25전쟁 참전 군인들이 이제 90세 안팎으로 생존한 이도 많지 않고, 탈북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겠죠. 올 여름, 6.25전쟁에 대한 기억은 남한에서 그치지 않고 포로가 되어 북한에 남겨진 우리군의 삶에 대해서도 공부해야겠습니다.
글_임병안(중도일보)
책표지
제가 참여하는 몇 개의 공부 모임 중에 인천시 부평구에서 주로 모이는 일제전쟁유적네트워크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에 대비해 일제가 국내에 조성한 방공호와 무기공장, 자원수탈을 연구하고 현장을 조사해 기록하고자 지난해 2월 출범했지요. 인천시 부평에 일본 육군이 조성한 무기공장 '육군조병창'이 있었고, 무기공장을 동굴 안에 숨기려고 조성한 방공호가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대전은 일제강점기 대구에 이어 가장 큰 규모의 일본군 부대가 주둔한 곳이면서 근래에는 갑천습지 월평공원에서 조선제련의 금광 수탈현장이 발견되었죠. 보문산과 동구 신상동에서도 방공호로 여겨지는 동굴이 여럿 나왔고요. 이러한 전쟁유적은 일제가 한반도를 태평양전쟁에서 마지막 결전의 전쟁터로 활용할 목적으로 인천과 대전뿐만 아니라 군산, 광주, 경남 등 전국에 조성했는데 함께 조사해 기록으로 남기자는 취지입니다.
이 모임에서 만난 이혜민 작가는 저와 나이도 비슷하고 동아일보 기자로 지냈다는 직업 상의 공통된 경험때문에 서울의 일제 전쟁유적을 견학하는 자리에서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부모님이 돼지농장을 하였노라고 먼저 이야기 꺼내고 건강이 좋지 않아 신문사를 퇴사해 지금은 작가로 글을 쓰면서 두 아이를 돌보고 있다고도 하였습니다. 견학 모임을 마치고 그가 쓴 책을 구입해 서둘러 읽어습니다.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았다' 이혜민 작가의 책은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6·25전쟁에서 북한군에 포로로 생포되었다가 탈북의 방식으로 남한으로 귀환한 국군포로들을 이 작가가 만나 구술을 기록한 책입니다. 저도 기자생활을 하면서 나름 산전수전 겪어봤다고 생각하는데 '북에서 돌아오지 못한 우리 국군포로'가 있다는 것조차 저에게 낯선 주제이었고,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6.25전쟁이 휴전하고 북에 억류된 국군포로 중 현재 국내에 귀환한 생존자 11명을 만나 그중 9명 생애를 책에서 간접적으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전투 중에 총탄과 수류탄에 부상을 당한 채 강원도 횡성과 철원 등에서 포로가 되는 과정은 참혹하거니와 문제는 휴전으로 전쟁을 마쳤음에도 자신의 대한민국으로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가 지난 70여 년간 우리가 인지하지 못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책에서 소개한 북한인권백서에 따르면 6.25 전정 정전 당시 8만2000여 명의 한국군이 실종됐고, 그 중 5만~7만 명 정도가 국군포로로 북한이나 북한의 동맹국에 억류돼 있다고 추정합니다. 국군포로와 탈북자의 진술을 바탕으로 생존자 500여 명이 북한에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했고요. 정전협정이 체결됐지만 국군포로의 상당수는 본국으로 송환되지 못했습니다. 북한 정부는 국군포로들에게 정전협정이 체결되어 포로를 자국으로 귀환시킬 책임이 있음을 당사자들에게 알리지 않았고, 포로가 알게 되어 귀환을 요구했더라도 개인의 귀환을 보장하지 않았습니다.
책에서 알게 된 사실은, 국군포로는 북한 내무성 건설대, 교화소, 인민군에서 탄광·목공·공장·농업 노동자로 험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정전협정 이후 국군포로들은 내무성 건설대와 인민군 등에 편입되거나 교화소에 구금되었고, 국군포로를 아버지로 친인척으로 둔 사람들은 연좌제때문에 군 입대는 물론 노동당 가입이 어려워서 북한에서도 주류 사회에 편입될 가능성이 낮았다고 하고요.
국가의 부름을 받아 6.25전쟁에 참전해 원하지 않게 북에 끌려갔지만, 우리 정부의 귀환 없이 결국 스스로 '탈북'을 해 남으로 돌아온 이들의 육성을 읽으며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습니다. 이혜민 작가는 기자에게 대전에 생존한 귀환 국군포로가 한 분 계시다고 하였습니다. 마침 앞서 발행한 책의 속편 성격의 '이 말만은 남기고 싶었다오'라는 마찬가지로 증언 채록집을 이 작가가 발행했더군요. 구입해서 목차만 살펴봤는데 6.25참전유공자회 대전 서구지회에 소속한 원로 용사 한 분에 대한 글이 소개되어 있네요. 1994년 국군포로 조창호(예비역 중위)가 탈북하면서 미귀환 국군포로의 존재가 남한 사회에 공개됐습니다. 이후 국군포로의 귀환 사례가 꾸준히 늘어나다가 지금은 그러한 소식이 더는 없지요. 6.25전쟁 참전 군인들이 이제 90세 안팎으로 생존한 이도 많지 않고, 탈북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겠죠. 올 여름, 6.25전쟁에 대한 기억은 남한에서 그치지 않고 포로가 되어 북한에 남겨진 우리군의 삶에 대해서도 공부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