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사단법인 토닥토닥 이사), 박은영(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 오임술(민주노총 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이채민(KOICA 해외봉사단 코디네이터), 임병안(중도일보 기자), 안선영(군포중학교 교장)님과 같은 
지역의 현장 활동가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인권현안에 대해 2주에 한 번씩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황산이 지운 얼굴

관리자
2026-06-17

글_이채민

 (15년 전 코이카 봉사단원으로 인도네시아에 처음 왔다. 이후 여성 정책 일을 하다가 가족과 함께 태국으로 떠나 

한국국제협력단 봉사단 코디네이터로 일했다. 지금은 가족과 함께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다.)


eff2c38a7dc88.png


안드리 유누스 테러 사건과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 

인구가 1억이 넘는 인도네시아다. 매일이 뉴스로 가득찬 가운데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는 소식들. 지난 2026년 3월 12일 밤 11시 37분, 자카르타 살렘바 거리에서 한 오토바이가 27살 청년에게 황산을 끼얹고 달아났다. 그 청년의 이름은 안드리 유누스(Andrie Yunus). 인도네시아 실종자 및 폭력 피해자 위원회, 즉 콘트라스(KontraS)¹의 대외담당 부조정관이다.

그는 그날 밤 자카르타 한 사무실에서 '인도네시아의 재군사화와 사법 심사'에 관한 팟캐스트 녹음을 마치고 오토바이를 몰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CCTV 영상에는 가해자들이 그가 사무실에 있던 오후 8시 40분부터 이미 미행을 시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얼굴, 눈, 가슴, 양손. 신체의 20퍼센트에 황산 화상을 입었다. 특히 오른쪽 눈은 빛을 인식하는 수준에 그치며, 정상 기능 회복이 불가능한 영구 장애로 확정됐다.²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나 익숙함을 느꼈다. 많은 이들의 희생과 저항으로 힘들게 쌓아온 민주주의도 한순간에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확인했기 때문이다. 안드리가 비판해왔던 것은 명확하다. 2025년 3월, 인도네시아 의회는 현역 군인이 14개 민간 국가기관 직위를 겸직할 수 있도록 군법을 개정했다.³ 수하르토 독재 시절로의 회귀를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쏟아졌고, 안드리는 그 중심에 있었다. 그는 2025년 8월 전국 시위 당시 경찰과 군의 과잉 진압을 조사한 독립 진상조사위원회(KPF)의 일원이기도 했다. 범행 3일 전부터 정체불명의 전화가 반복됐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소지품은 아무것도 없어지지 않았다. 강도가 아닌 것이다. 이 사건으로 군 정보기관인 BAIS(전략정보국) 소속 대위 1명과 중위 2명, 하사관 1명이 체포됐다. 안드리의 법률팀이 CCTV 영상을 분석한 결과, 사건과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는 인물 16명이 추가로 추정됐다. 이 조직적 규모는 단순한 범행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기억해야 할 이름 — 문이르 (인도네시아 인권 탄압의 역사) 

안드리 유누스가 활동하는 콘트라스(KontraS). 이 조직의 공동 창립자는 바로 문이르 사이드 탈리브(Munir Said Thalib)다. 20여년 전인 2004년 9월 7일, 그는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교 국제인권법 석사 과정을 밟으러 가는 길이었다. 자카르타에서 암스테르담으로 향하는 가루다 인도네시아 항공기 안에서, 38세의 그는 조용히 숨을 거뒀다. 네덜란드 법의학연구소 부검 결과 사인은 비소 중독. 누군가 그의 음식에 독을 탄 것이다. 범인은 가루다 항공 부기장

폴리카르푸스(Pollycarpus Budihari Priyanto). 그는 재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각종 감형과 사면을 거쳐 실제로는 8년도 채 복역하지 않고 풀려났다. 그리고 배후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 국가정보원(BIN) 부원장이었던 무흐디 뿌르워쁘란조노(Muchdi Purwopranjono) 장군이 기소됐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석방됐다.⁵ 문이르가 죽은 지 20년이 지났지만, 배후는 여전히 공식적으로 '미상'이다. 그렇다면 문이르는 왜 죽었나. 그는 수하르토 독재 시절 동티모르, 아체, 파푸아에서 저질러진 인권 침해를 집요하게 기록했다. 군이 저지른 학살의 증거를 모았다. 그리고 그 콘트라스를 이어받은 안드리 유누스의 얼굴에 22년 뒤 황산이 뿌려진 것이다. 방법만 다를 뿐 목적은 같다. 입을 막는 것.

안드리 테러 사건 재판은 4월 29일, 시작됐다. 군복을 입은 피고인 4명이 군사재판을 받았다. 6월 3일, 군 검사의 구형은 각각 징역 2년 6개월. 황산으로 한쪽 눈을 잃은 사람에게, 국가 정보기관 요원들이 저지른 테러에 대한 구형이다. 군 검사는 이 사건을 ‘개인적 앙심에 의한 초법적 복수’로 규정했다. 이에 유엔 인권 전문가들은 즉각 반박했다. “‘개인적 앙심'이라는 프레임은 이 사전 계획된 공격의 배후를 규명하는 것을 흐리고, 기관의 책임을 희석시킨다."라는 것이 이유다. 배후는 또 희석되고 있다. 문이르 때처럼 말이다. 인도네시아 인권 침해의 오래된 패턴이 여전히 반복중이다. 6월 3일, 자카르타 남부 법원은 경찰에 수사 재개를 명령했다. 군사 재판과 별개로 민간 수사를 다시 시작하라는 것이다. 작은 균열이긴 하지만, 균열은 균열이다. 


잊을 수 없다. 멈출 수 없다. 

안드리의 동료 나디네 셰라니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안전하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전혀 안전하지 않다. 우리는 감시당하고 있지만, 멈출 수 없다. 압박이 강해질수록 우리는 더 강해진다."

문이르의 아내 수치와티(Suciwati)는 남편이 죽은 뒤 20년 동안 진실을 요구해왔다. '잊기를 거부한다(Menolak Lupa)'는 이름의 캠페인도 만들었다. 2013년에는 문이르를 기리는 박물관 '오마 문이르(Omah Munir)'를 세웠다. (하지만 운영 예산 문제로 현재 잠정 중단된 상태다) 자카르타 시내 어딘가에는 안드리의 얼굴이 담긴 벽화가 있다. '시민이 안드리에게'라는 이름으로 그를 기리는 시민들이 있다. 황산이 지운 얼굴도, 비소가 죽인 목소리도, 여전히 어딘가에서 외치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26년 6월, 막대한 예산 투입으로 비리의 온상이 된 MBG(무상급식 정책)가 아닌 아닌 국민들의 실질적인 생계와 민생 경제부터 먼저 구제하라는 요구로 인도네시아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6월을 보내고 있다.)


¹ 콘트라스(KontraS, Komisi untuk Orang Hilang dan Korban Tindak Kekerasan): 1998년 문이르 사이드 탈리브 등이 공동 창립한 인도네시아 대표 인권단체. 국가폭력 피해자 및 강제실종 문제를 전문으로 다룬다.

² OMCT·FIDH 긴급호소문, "Indonesia: Hold perpetrators of acid attacks against human rights defender Andrie Yunus accountable" (2026.04.07). 5월 20일 법정 안과 전문의 파라비 마르타 박사 증언 기준.

³ 2025년 3월 인도네시아 의회 통과. 현역 군인이 14개 민간 국가기관 직위 겸직 허용. 수하르토 시절 군의 민간 침투(dwifungsi) 관행으로의 회귀로 평가됨.

⁴ Pollycarpus Budihari Priyanto: 2005년 1심 징역 14년 선고, 2008년 대법원 징역 20년 확정. 그러나 각종 감형·사면으로 실제 복역 기간은 8년 미만. 2014년 가석방 출소. (Tempo, "Reopening Munir's Murder Case", 2024.09.)

https://magz.tempo.co/read/letter-from-the-editor/43790/reopening-munirs-murder-case

⁵ BIN 부원장 무흐디 뿌르워쁘란조노는 2008년 1심 무죄 선고. 배후는 사건 발생 20주년인 2024년 현재도 공식적으로 미상. (Human Rights Watch, "Sixteen Years On, Still No Justice for Munir's Death", 2020.09.)

https://www.hrw.org/news/2020/09/07/sixteen-years-still-no-justice-munirs-dea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