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사단법인 토닥토닥 이사), 박은영(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 오임술(민주노총 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이채민(KOICA 해외봉사단 코디네이터), 임병안(중도일보 기자), 안선영(군포중학교 교장)님과 같은 
지역의 현장 활동가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인권현안에 대해 2주에 한 번씩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혐오의 안개를 걷고, ‘노동’이라는 인권의 얼굴을 마주하자

관리자
2026-05-20

글_ 오임술(민주노총 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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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삼성전자 노사가 20일 경기도 수원의 경기지방고용노동청에서 임금협상 교섭을 재개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현재 극단적인 분열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남북 대립, 외교적 선택의 강요, 지역주의와 진영 논리 속에서도 유독 ‘노동’에 대한 공격만큼은 공통된 결을 유지하는 기이한 모습을 보입니다. 최근, 화물연대나 삼성전자 노조 파업 등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드러나듯, 노동조합에 대한 무지와 혐오는 위험 수위에 도달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재벌과 대기업은 결코 홀로 성장하지 않았습니다. 노동자에게 저임금을 강요하고 헌법적 권리인 노동 3권을 무력화시킨 국가의 직접적 탄압, 그리고 정치적 지원과 물적 인프라라는 특혜 위에서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자본의 이익을 위한 신자유주의 정책은 비정규직 확산과 외주화를 낳았고 , 노동자 간의 경제적 편차를 심화시키며 연대의 힘을 약화시킨 이유중에 하나입니다. 대기업이 있으니 대기업노조가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최근 삼성전자 상황을 두고 언론과 보수 인사들은 어김없이 ‘노동시장 이중구조론’을 소환해 구태의연한 프레임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파업을 하고 성과급을 요구하는 것이 마치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차별하는 원인인 것처럼 몰아세우는 ‘내부자-외부자 이론’입니다.

하지만 이는 본질을 완전히 왜곡한 ‘자본의 분할관리 전략’일 뿐입니다. 정규직 노조가 투쟁을 포기하고 임금을 양보한다고 해서 자본이 그 돈을 자발적으로 하청 노동자에게 나누어주지 않습니다. 한국 노동시장의 극심한 이중구조와 양극화를 야기한 진짜 주범은 중소기업에 대한 불공정 거래와 납품단가 후려치기로 수익성을 독점해 온 원청 대기업과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입니다. 노동자에게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임금 요구를 자제하라고 비난하기 전에 , 원청 대기업의 구조적 독점 관행을 먼저 겨냥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대한민국에는 파업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999가지나 있을 것입니다. 기억에 보면 가뭄에 웬 파업이냐라고 하고, 경제가 어려워서, 경제가 잘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뿐만 아니라 노동자가 헌법적 권리를 행사하려 하면, 정부는 즉각 법과 제도의 이름을 빌려 탄압의 칼춤을 춥니다. 최근 삼성전자 파업에 대해 거론되는 정부의 ‘긴급조정권’ 카드는 과거 악명을 떨쳤던 ‘직권중재’나 지난 화물연대 파업 당시 발동되었던 ‘업무개시명령권’과 같은 노동탄압이 민주당정권에서도 내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반헌법적 대응은 노동자의 손발을 묶고 쟁의권을 무력화하려는 국가주의적 폭력입니다. 사측은 양보안을 낼 생각도 없이 치졸한 여론전만 펼치고, 방송사와 언론들은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앵무새처럼 노조 욕만 해대며 정부의 탄압에 부화뇌동하고 있습니다. 국가와 언론은 노동조합을 오직 사회적 ‘욕받이’로 취급할 뿐입니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가입하려 할 용기를 내는 순간 직장 내 괴롭힘과 고용 불안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 가혹한 현실입니다.

노동조합이 임금을 노동력 가치 이상으로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지극히 정당한 권리입니다. 대기업 노조의 이기주의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 오히려 이들의 교섭력을 지렛대 삼아 기업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초기업교섭(산별교섭 등)’을 확대해야 합니다. 산업·업종 수준에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 적용되도록 사회적 노동시장 체제를 구축하는 것만이 격차를 줄이는 올바른 해법입니다. 그러나 정치권은 아직도 산별교섭 법제화는 하지 않으면서 노동조합의 이기주의를 비난합니다. 그냥 닥치고 기득권세력에 들러붙어 살으라는 어용노조를 부추기지만 그 어용노조가 자신들을 지지하기를 바랍니다. 

이번 삼성전자 노조 파업이 하청 및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 흐름으로 이어지는 것도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실제로 반도체 소부장 중소 공장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 흐름이 이어지고 있으며 , 하청 노동자가 스스로 노조를 통해 단결할 때 비로소 노동조건의 상향 평준화가 가능해 질 것입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교육과 사회가 쉽게 변하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사회 저변에 뿌리 깊게 박힌 학벌 서열주의와 노동 경시 풍조에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 '공돌이, 공순이'라 부르며 노동을 비하하던 혐오의 시선을 여전히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을 바꾸어야 할 교육 현장이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마침 교육감 선거가 진행 중인 지금, 우리는 한국 교육의 해묵은 과제를 엄중히 물어야 합니다. 현재 우리 교육 과정에는 정당한 주권자이자 예비 노동자로서 살아가야 할 아이들을 위한 '노동권 교육'이 매우 부족합니다. 학교는 자본의 논리에 순응하는 법만 가르칠 뿐, 헌법이 보장한 노동 3권이 무엇인지, 노동조합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갈등을 평화적·민주적으로 해결하는 교섭 절차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가르치지 않습니다.

노동 교육의 강화는 단순히 노동법 몇 구절을 외우고 전태일열사를 위인전처럼 알게 하는 일이 아닙니다. 노동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기본 권리임을 깨닫게 하고, 사회에 나가 마주할 불평등과 부조리에 맞설 수 있는 시민 의식을 길러주는 인권 교육의 핵심입니다. 새로 선출될 교육감들과 교육 당국은 학교 현장에서부터 노동 3권과 교섭 절차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전면적인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합니다. 교육이 바뀌지 않는다면 노동 혐오의 악순환 또한 결코 끊어낼 수 없습니다.

얼마전 아리셀 참사 재판부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유족들의 민사 합의를 했다는 이유로 경영진의 형량을 대폭 감형해 준 사례는 , 이 나라가 여전히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자본의 논리에 충실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기득권은 계급사회의 본질을 은폐한 채 노동자를 갈라치고 분열에 포섭시켜 서로를 공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일부 요구를 수용하는 척하면서 본질은 비껴가며 암환자에게 소독약만 발라주는 식의 기만적인 정치는 이제 끝내야 합니다. 노동자가 직접 정치의 주체로 나서서 노동자를 위한 법과 헌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특정 직종의 이해를 넘어 보편적 노동자와 민중의 이해를 대변하는 ‘노동 중심의 인권의식’이 교실에서부터 일터, 그리고 국회까지 확립될 때까지 계급의식과 연대의식이 공고화 되는 것입니다. 무조건적인 노조 혐오와 비난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노동자들이 어느 조건에서 파업해야만 용인하겠습니까? 그냥 노조가 싫은 것은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