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안선영(군포중학교장)

출처_인천투데이 ⓒ
그녀는 젊은 나이에 사고로 남편과 사별했다. 어린 두 아들을 키워야 했기에 친정엄마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돈을 벌러 다녔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살림은 늘 빠듯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둘째 아들의 방황은 심해져만 갔다. 결국 둘째 아들은 중학생 때 딸을 낳아 데리고 왔다. 딸의 엄마도 중학생이었다. 이후 두 딸을 더 낳아 맡기고 아들은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딸들의 엄마도 사라졌는데 그녀는 모든 원망을 딸들의 엄마에게 퍼부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 때문에 아들이 인생을 망쳤고 자신이 손녀 셋을 떠안게 되었다고 울부짖는다. 망상인지 실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는 날로 새로운 이야기가 덧붙는다. 도박, 술담배, 남자 등 할 수 있는 온갖 일탈을 저지른 사람이 되었고 세 딸은 할머니에게 자신들의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나쁜*이라는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듣고 자랐다.
그녀의 두 아들 중 큰아들도 살림을 차렸고 남매를 낳았다. 그 남매도 그녀에게 맡겨졌다. 그래서 지금은 다섯의 손주를 키우고 있다. 새벽에 청소일을 다니며 나라에서 주는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을 수 있을 만큼만 번다. 세 딸은 우리 학교를 거쳐 갔거나 거쳐 가는 중이라 생리대 지원, 방과 후 바우처, 저녁 도시락(지역 시민단체에서 도시락을 만들어 일주일에 두 번 학교에 가져다 준다.) 등 할머니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을 복지사 선생님이 열심히 챙겨주고 있다.
그녀의 사연을 알기 전에는 그녀를 원망했었다.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만 나와도 돌변하며 손주에게 험하게 굴고, 친구나 귀가 시간 등 강박에 가까울 만큼 아이의 일상을 통제하는 것이 이해 가지 않았다. 그런 할머니에게 반항하며 둘째 딸은 통제 불능 상태로 점점 더 빠져드는데, 할머니의 집착과 고집을 꺾을 방법이 없었다. 손녀가 제 엄마의 전철을 밟을까 봐 두려워 귀가 시간이 조금만 늦어지면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고 지구대에서는 할머니 전화로 다른 일을 못 볼 지경이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급기야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까지 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교육지원청에 교육복지안전망 회의를 요청했다. 노인 보호, 아동보호, 정신건강 등 지역 전문기관과 동사무소, 상담센터 등 관계기관이 모여 대책 회의를 했고, 할머니의 상담과 치료가 시급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 번도, 누구에게도 자신의 힘듦을 이야기하지 못했던 할머니는 봇물이 터졌고 그녀의 고단하고 외로웠던 삶이 위로받자, 문제가 하나씩 풀려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고 가야 할 길은 멀지만, 아니! 어쩌면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함께 노력하면 뭔가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서로에게 생겼다는 것이 큰 한 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언급한 교육복지안전망이 ‘학생맞춤형통합지원’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법률이 제정되어 강제성을 띠게 되니 한동안 시끌시끌했다. 선거가 다가와 시끄러운 일들을 교육청에서 무마하는 경향이 있어서인지 그나마 학교가 조용해지긴 했지만 곧 다시 도마 위에 오를 것이다. 이 법률에 대해서는 “취지에는 공감하나!” 이렇게 시작되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그 뒤의 이야기를 굳이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발견하고도 해결할 수 없어 안타까워하고 어쩌지? 어쩌지? 발만 동동 구르는 것이 아니라, 지역 기관들이 힘을 모으니 뭐라도 해볼 수 있었다는 것! 무작정 학부모를 원망했는데 그들에게도 감당하기 어려운 사연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 적극적이고 의지가 있는 복지사와 교육지원청 간 협력의 중요성! 등 교육복지안전망 회의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취지에는 공감한다고 하니 제대로 작동되도록 교육 당국과 학교의 의견이 잘 조율되었으면 좋겠다. 그늘진 곳에 따뜻한 햇볕 한 줌 될 수 있다면 제발~
글_안선영(군포중학교장)
출처_인천투데이 ⓒ
그녀는 젊은 나이에 사고로 남편과 사별했다. 어린 두 아들을 키워야 했기에 친정엄마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돈을 벌러 다녔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살림은 늘 빠듯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둘째 아들의 방황은 심해져만 갔다. 결국 둘째 아들은 중학생 때 딸을 낳아 데리고 왔다. 딸의 엄마도 중학생이었다. 이후 두 딸을 더 낳아 맡기고 아들은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딸들의 엄마도 사라졌는데 그녀는 모든 원망을 딸들의 엄마에게 퍼부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 때문에 아들이 인생을 망쳤고 자신이 손녀 셋을 떠안게 되었다고 울부짖는다. 망상인지 실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는 날로 새로운 이야기가 덧붙는다. 도박, 술담배, 남자 등 할 수 있는 온갖 일탈을 저지른 사람이 되었고 세 딸은 할머니에게 자신들의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나쁜*이라는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듣고 자랐다.
그녀의 두 아들 중 큰아들도 살림을 차렸고 남매를 낳았다. 그 남매도 그녀에게 맡겨졌다. 그래서 지금은 다섯의 손주를 키우고 있다. 새벽에 청소일을 다니며 나라에서 주는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을 수 있을 만큼만 번다. 세 딸은 우리 학교를 거쳐 갔거나 거쳐 가는 중이라 생리대 지원, 방과 후 바우처, 저녁 도시락(지역 시민단체에서 도시락을 만들어 일주일에 두 번 학교에 가져다 준다.) 등 할머니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을 복지사 선생님이 열심히 챙겨주고 있다.
그녀의 사연을 알기 전에는 그녀를 원망했었다.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만 나와도 돌변하며 손주에게 험하게 굴고, 친구나 귀가 시간 등 강박에 가까울 만큼 아이의 일상을 통제하는 것이 이해 가지 않았다. 그런 할머니에게 반항하며 둘째 딸은 통제 불능 상태로 점점 더 빠져드는데, 할머니의 집착과 고집을 꺾을 방법이 없었다. 손녀가 제 엄마의 전철을 밟을까 봐 두려워 귀가 시간이 조금만 늦어지면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고 지구대에서는 할머니 전화로 다른 일을 못 볼 지경이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급기야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까지 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교육지원청에 교육복지안전망 회의를 요청했다. 노인 보호, 아동보호, 정신건강 등 지역 전문기관과 동사무소, 상담센터 등 관계기관이 모여 대책 회의를 했고, 할머니의 상담과 치료가 시급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 번도, 누구에게도 자신의 힘듦을 이야기하지 못했던 할머니는 봇물이 터졌고 그녀의 고단하고 외로웠던 삶이 위로받자, 문제가 하나씩 풀려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고 가야 할 길은 멀지만, 아니! 어쩌면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함께 노력하면 뭔가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서로에게 생겼다는 것이 큰 한 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언급한 교육복지안전망이 ‘학생맞춤형통합지원’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법률이 제정되어 강제성을 띠게 되니 한동안 시끌시끌했다. 선거가 다가와 시끄러운 일들을 교육청에서 무마하는 경향이 있어서인지 그나마 학교가 조용해지긴 했지만 곧 다시 도마 위에 오를 것이다. 이 법률에 대해서는 “취지에는 공감하나!” 이렇게 시작되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그 뒤의 이야기를 굳이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발견하고도 해결할 수 없어 안타까워하고 어쩌지? 어쩌지? 발만 동동 구르는 것이 아니라, 지역 기관들이 힘을 모으니 뭐라도 해볼 수 있었다는 것! 무작정 학부모를 원망했는데 그들에게도 감당하기 어려운 사연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 적극적이고 의지가 있는 복지사와 교육지원청 간 협력의 중요성! 등 교육복지안전망 회의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취지에는 공감한다고 하니 제대로 작동되도록 교육 당국과 학교의 의견이 잘 조율되었으면 좋겠다. 그늘진 곳에 따뜻한 햇볕 한 줌 될 수 있다면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