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이채민(회원)

한국만큼이나 뜨거웠던 2025년의 인도네시아
2025년 4월, 우리는 탄핵으로 대통령을 파면했다. 그해 8월, 인도네시아는 불타고 있었다. 같은 해, 서로 다른 땅에서 민주주의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시험받았다. 작년 이맘때 나는 인도네시아 친구들에게 '대한민국이 많이 아프다'라고 했었지만, 2025년의 인도네시아 역시 그만큼 아팠다.
대통령 윤석열이 파면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그 같은 해 인도네시아는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도 매해 노동권 확보와 여러 사회적 합의를 위한 움직임은 늘 있어왔다. 하지만 8월은 장갑차가 도로 한가운데에서 시위대 안에 있던 오젝1) 배달기사를 깔아 뭉갰다. 인도네시아판 백남기 농민같은 있어서는 안될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 시위는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580명의 국회의원들의 매월 약 50,000,000루피아(한화 약 430만원)의 주택 수당을 받아온 사실에서 촉발됐다.2) 여기에 각종 세금이 250%나 인상되면서 결국 폭발한 것이다. 시위는 인도네시아 전역으로 들불처럼 확산되었고 시위에 참여한 인도네시아 국민들을 ‘바보같다’라고 발언했던 국회의원 집은 초토화 됐다. 과거 여러 차례 화교 폭동을 겪었던 중국계 주민들은 출국을 준비했고, 하루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불안에 휩싸였다. 모든 학교는 휴교를 감행했고, 수업은 온라인으로 대체됐다. 평온한 일상이 너무나 그리웠던 날들이었다.
분노 이후
‘Brave Pink’ 로 대표되는 이번 시위는 이 비극적인 사건의 희생자들을 기리고 그들의 용기를 잇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Pink 히잡의 주인공은 이부3) ‘아나’로 이 시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부 ‘아나’는 전문 활동가나 정치인이 아닌 평범한 주부로 당시 비가 내리는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었다. 일각에서는 폭력 시위를 그대로 방치한 이유가 이를 근거로 정부의 진압을 정당화하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그보다 인도네시아라는 나라가 워낙 크다. 어지간해서 들어줄 리 만무하고, 어지간하면 인도네시아 사람들도 이처럼 거세게 항의하지 않는다. 때때로 한국 촛불시위 등을 모범적인 사례로 언급하는데 사실 한국의 시위 문화는 한국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구현된 것이지 어디서나 같은 사례로 대입시킬 수는 없다. 그리고 이렇게 큰 나라의 경우 비폭력 시위는 구현되기 쉽지 않다. 자식을 국가폭력으로 잃은 부모에게 촛불을 들고 마음을 다스리라면 할 수 있겠는가. 이 거센 시위 이후 인도네시아 시위대는 17+8 총 25개 요구조건을 내세웠다. 주요 요구는 책임자 처벌, 국회의원 특권 폐지, 세금 인상 철회, 경찰 개혁 등이다.
이후 문제가 되었던 일부 국회의원들의 특권 폐지 요구는 일부 수용되었다. 그러나 부패척결, 조세 정의, 경찰 개혁 등의 묵직한 사안들은 논의중이거나 사실상 답보 상태다. 이 이유 역시 지금 우리나라가 겪는 검찰 개혁과 그 궤가 같다. 눈치보는 척 하다가 하루하루 버티며 사는 사람들이 정신없어지면 그만이다.
결국 분노는 순간처럼 흩어졌고, 어찌됐든 언제 그랬냐는듯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권력은 공고하다. 2026년 1월부터 발효된 인도네시아 형법은 ‘대통령, 부통령 국가기관 모욕금지 법’으로 대통령, 부통령, 국가기관을 모욕하거나 국가 이념을 공격할 시 최대 징역 3년까지 가능하다. 인도네시아판 국가보안법인 셈이다. 앞으로 이 법이 어떻게 쓰여지고 해석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상은 어쩌면 이토록 끔찍하면서 찬란할까. 과학기술의 발달이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한 이 때 전쟁 소식이 끊이지 않고 힘센 자가 최고인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처럼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하지만 Pink 히잡을 쓴 이부 아나와 촛불을 든 우리는 같은 언어를 말한다. 권력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 보통 사람들의 언어 말이다. 2026년, 대전충남인권연대와 함께하는 모든 분들이 건강하시길, 그리고 우리의 연대가 국경을 넘어 더 넓게, 더 깊게 이어지기를 바란다.
이채민 회원은 15년 전 코이카 봉사단원으로 인도네시아에 처음 왔다. 이후 여성정책 관련 일을 하다가 가족과 함께 태국으로 떠나 한국국제협력단 봉사단 코디네이터로 일했다. 지금은 다시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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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도네시아 오토바이 택시 또는 배달 서비스
2) 2025년 인도네시아 최저임금은 약 4-5주따(45만원 정도)이다. 즉, 일반 서민들의 열배에 달하는 월급과 수당을 꼬박꼬박 챙겨온 것이 드러났다.
3) 이부(Ibu)는 인도네시아어로 '어머니' 또는 기혼 여성에 대한 존칭
글_이채민(회원)
한국만큼이나 뜨거웠던 2025년의 인도네시아
2025년 4월, 우리는 탄핵으로 대통령을 파면했다. 그해 8월, 인도네시아는 불타고 있었다. 같은 해, 서로 다른 땅에서 민주주의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시험받았다. 작년 이맘때 나는 인도네시아 친구들에게 '대한민국이 많이 아프다'라고 했었지만, 2025년의 인도네시아 역시 그만큼 아팠다.
대통령 윤석열이 파면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그 같은 해 인도네시아는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도 매해 노동권 확보와 여러 사회적 합의를 위한 움직임은 늘 있어왔다. 하지만 8월은 장갑차가 도로 한가운데에서 시위대 안에 있던 오젝1) 배달기사를 깔아 뭉갰다. 인도네시아판 백남기 농민같은 있어서는 안될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 시위는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580명의 국회의원들의 매월 약 50,000,000루피아(한화 약 430만원)의 주택 수당을 받아온 사실에서 촉발됐다.2) 여기에 각종 세금이 250%나 인상되면서 결국 폭발한 것이다. 시위는 인도네시아 전역으로 들불처럼 확산되었고 시위에 참여한 인도네시아 국민들을 ‘바보같다’라고 발언했던 국회의원 집은 초토화 됐다. 과거 여러 차례 화교 폭동을 겪었던 중국계 주민들은 출국을 준비했고, 하루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불안에 휩싸였다. 모든 학교는 휴교를 감행했고, 수업은 온라인으로 대체됐다. 평온한 일상이 너무나 그리웠던 날들이었다.
분노 이후
‘Brave Pink’ 로 대표되는 이번 시위는 이 비극적인 사건의 희생자들을 기리고 그들의 용기를 잇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Pink 히잡의 주인공은 이부3) ‘아나’로 이 시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부 ‘아나’는 전문 활동가나 정치인이 아닌 평범한 주부로 당시 비가 내리는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었다. 일각에서는 폭력 시위를 그대로 방치한 이유가 이를 근거로 정부의 진압을 정당화하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그보다 인도네시아라는 나라가 워낙 크다. 어지간해서 들어줄 리 만무하고, 어지간하면 인도네시아 사람들도 이처럼 거세게 항의하지 않는다. 때때로 한국 촛불시위 등을 모범적인 사례로 언급하는데 사실 한국의 시위 문화는 한국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구현된 것이지 어디서나 같은 사례로 대입시킬 수는 없다. 그리고 이렇게 큰 나라의 경우 비폭력 시위는 구현되기 쉽지 않다. 자식을 국가폭력으로 잃은 부모에게 촛불을 들고 마음을 다스리라면 할 수 있겠는가. 이 거센 시위 이후 인도네시아 시위대는 17+8 총 25개 요구조건을 내세웠다. 주요 요구는 책임자 처벌, 국회의원 특권 폐지, 세금 인상 철회, 경찰 개혁 등이다.
이후 문제가 되었던 일부 국회의원들의 특권 폐지 요구는 일부 수용되었다. 그러나 부패척결, 조세 정의, 경찰 개혁 등의 묵직한 사안들은 논의중이거나 사실상 답보 상태다. 이 이유 역시 지금 우리나라가 겪는 검찰 개혁과 그 궤가 같다. 눈치보는 척 하다가 하루하루 버티며 사는 사람들이 정신없어지면 그만이다.
결국 분노는 순간처럼 흩어졌고, 어찌됐든 언제 그랬냐는듯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권력은 공고하다. 2026년 1월부터 발효된 인도네시아 형법은 ‘대통령, 부통령 국가기관 모욕금지 법’으로 대통령, 부통령, 국가기관을 모욕하거나 국가 이념을 공격할 시 최대 징역 3년까지 가능하다. 인도네시아판 국가보안법인 셈이다. 앞으로 이 법이 어떻게 쓰여지고 해석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상은 어쩌면 이토록 끔찍하면서 찬란할까. 과학기술의 발달이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한 이 때 전쟁 소식이 끊이지 않고 힘센 자가 최고인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처럼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하지만 Pink 히잡을 쓴 이부 아나와 촛불을 든 우리는 같은 언어를 말한다. 권력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 보통 사람들의 언어 말이다. 2026년, 대전충남인권연대와 함께하는 모든 분들이 건강하시길, 그리고 우리의 연대가 국경을 넘어 더 넓게, 더 깊게 이어지기를 바란다.
이채민 회원은 15년 전 코이카 봉사단원으로 인도네시아에 처음 왔다. 이후 여성정책 관련 일을 하다가 가족과 함께 태국으로 떠나 한국국제협력단 봉사단 코디네이터로 일했다. 지금은 다시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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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도네시아 오토바이 택시 또는 배달 서비스
2) 2025년 인도네시아 최저임금은 약 4-5주따(45만원 정도)이다. 즉, 일반 서민들의 열배에 달하는 월급과 수당을 꼬박꼬박 챙겨온 것이 드러났다.
3) 이부(Ibu)는 인도네시아어로 '어머니' 또는 기혼 여성에 대한 존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