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사단법인 토닥토닥 이사장), 박은영(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 오임술(민주노총 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이채민(KOICA 해외봉사단 코디네이터), 임병안(중도일보 기자), 안선영(군포중학교 교장)님과 같은 
지역의 현장 활동가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인권현안에 대해 2주에 한 번씩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어찌 합니까?

관리자
2024-11-06

글_안선영(군포중학교 교장)


어느 교육청의 슬로건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좋아! 그런데 어떻게?

인권 단체에서 하는 말 “소수의 인권도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래야지! 하지만 현실은?


출처_ⓒ진안군 마령초등학교(2024.06.24)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10월 어느 금요일에 학교 체육행사를 했다. 격려사와 개회 선언을 해 달래서 평소에 민원 때문에 운동장에서조차 조용히 해야 했던 학생들에게 오늘만큼은 마음껏 소리치며 응원하고, 뛰고 구르라고 했다. 혹시 민원이 들어오면 선생님들이 다 막아주겠다는 호언장담과 함께. 학생들이 환호한다. 날씨가 끄물끄물하고 빗방울도 한두 방울씩 떨어진다. 비 예보가 있었는데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운동장에서 한껏 들뜬 학생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여러분~ 비가 와도 멈추지 말까요?”라고 했더니 발을 동동 구르며 좋아한다. 교실에서는 눈도 못 뜨던 학생들이 정말 최선을 다해 달리고 부둥켜안고 구르는 모습에 보기만 해도 절로 웃음이 났다. 결국 비가 너무 많이 쏟아져 오전 경기만 하고 모두 실내로 들어가게 되었다. 학생들이 교장실로 찾아와 왜 약속을 안 지키냐며 항의하는데, 추워서 감기 걸릴까 봐 그런다는 답변은 옹색하기만 했다. 입이 퉁퉁 부어 돌아가는 학생들한테 미안하다고 말하게 만든 하늘을 원망할 수밖에….

  학생들을 돌려보내고 나니 행정실장님이 교장실 문을 두드린다. 민원 전화가 왔는데 말을 너무 심하게 해서 속이 상하다 한다. 민원 내용인즉슨 밤에 일하고 낮에 잠을 자야 하는데 학생들이 너무 시끄러워서 잘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민원을 한두 번 들어본 것이 아닌지라 속상하시겠지만 죄송하다 하고 그냥 신경 쓰지 마시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 낮에 자야 하는 사람들의 민원 사례


사례 1. (그래도 좀 참아주는 유형) 학생들이 시끄러운 건 어찌어찌 참겠는데 주말에 조기축구회 시끄러운 건 도저히 못 참겠다. 왜 학교 운동장을 빌려줘서 주말까지 시끄럽게 하냐!! 

☞ 민원을, 국민신문고를 통해 접수해서 상습 민원 답변 처리. 민원인의 고충은 전혀 해결 못함.


사례 2. (작은 소리에도 매우 예민한 유형) 체육 시간에 사용하는 스피드 훈련용 기계음 때문에 미치겠다(이 기계는 30초 간격으로 소리를 내는데 이렇게 작은 소리까지 듣다니 대단함). 그리고 잠들만하면 학교 종이 울려서 깬다. 제발 좀 살려달라.

☞ 민원인이 학교에 찾아와 호소함. 체육 선생님들께 측정기 소리 줄일 것을 부탁하고 운동장에는 수업 시작과 끝을 알리는 타종이 울리지 않도록 방송실에서 조정. 운동장에서 놀던 학생들이 종소리를 듣지 못해 수업에 늦게 들어오기 일쑤. 특히 점심시간에는 심한데 종이 울리지 않는 것은 학생들에게 아주 좋은 핑곗거리가 됨.


사례 3. (민원 사례는 파도파도 나옴) 그 밖에도 나무 전지하는 소리, 스탠드 낙엽과 먼지를 날리는 기계 소리 등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소리를, 민원을 통해 인지하는 경우가 많음.


  체육행사를 마치고 선생님들과 평가회를 하는데 학생들이 오후 행사 못 한 것을 너무 아쉬워하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한다. 다른 것은 체육 시간에 하면 되는데 계주는 별도의 시간을 마련해야 한단다. 일 년에 한 번, 달리기로 존재감을 나타내는 학생들에게 그 기회를 안 주면 너무 상심이 클 것 같다고 하길래 "그럼 월요일 방과 후에 합시다." 라고 제안했다. 미리 수업 시간표를 조정하고 한 시간을 마련해 계주를 하기로 하고 평가회를 마쳤다. 행정실장님이 받았다는 민원이 마음에 걸리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오후니, 그분도 얼추 주무시고 일어날 시간이겠지 라고 생각했다.

  계주라고 해서 각 반에서 많아야 8명일(남4, 여4) 것으로 생각했는데 계주 선수가 너무 많길래 옆에 계신 선생님께 여쭸더니 학년별로 인원만 맞추면 선수 인원은 제한이 없단다. 1학년은 학급당 16명이 선수로 나와 줄을 섰다. 출발 신호가 떨어지고 학생들이 달리기 시작하는데 16명이 이어 달리니 달리는 시간도 길고 역전의 다이나믹한 순간도 많고, 그만큼 응원의 함성도 드높았다. 같이 소리를 지르며 아슬아슬한 이어달리기에 빠져있는데 행정실장이 얼굴이 사색이 되어 찾는다. 금요일에 그렇게 얘기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말을 무시하고 오히려 더 시끄럽게 떠들고 있다며 교장 바꿔 달라고 했단다. 교장 안 바꾸면 당장 학교로 찾아오겠다는 것이다. 죄송하다는 말씀은 드려야겠다 싶어 민원인에게 전화를 해서 00중학교 교장입니다. 라고 했더니 사과할 틈을 주지 않는다. 고성과 욕설과 본인이 그동안 얼마나 참았는지와 학교에 불 질러서 싹 태워버리겠다는 협박까지... 

  밤새워 일하고 낮에 자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학교 주변에 이분 말고도 매일 매일 견디고 계신 분이 있을 것이다. 우리 학교뿐 아니라 전국의 학교 주변에서 오늘도 아이들의 생명력 넘치는 소리가 누군가에겐 생명을 갉아먹는 고통일 수도 있겠다. 이것은 일례일 뿐 이런저런 이유로 말 못 하고 참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일 텐데 소수의 인권을 존중하려면 이런 경우 학교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누가 현명한 조언을 해 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