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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에 한 번씩 인권현안에 대해 기고를 하는 전문가 칼럼입니다.

오월의 영령들이 오늘의 산 자들을 구했다!, 헌법 ‘전문’의 역사성

관리자
2026-05-20

글_ 좌세준(변호사)


086bcc49d9c22.png출처_국가기록원(헌법 전문)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전체가 1개의 문장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이 주어이고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로 끝난다. 그 중간에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ㆍ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대목이 나온다. 39년 만에 발의된 헌법 개정안은 바로 이 부분을 “4·19혁명, 부마민주항쟁 및 5·18민주화운동의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로 개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난 5월 7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헌법 개정안은 국민의힘 의원들의 불참으로 ‘투표 불성립’ 처리됐다. 8일 본회의 재표결도 무산됐다. 

 열흘 후 열린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오월의 영령들이 2024년 12월 3일 밤, 오늘의 산 자들을 구했다”는 말로 1980년 5·18 정신이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끊임없이 구해낼” 굳건한 토대임을 천명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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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한강 작가는 2024년 12월 7일 스웨덴 아카데미에서 열린 노벨상 수상 기념 강연에서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빛과 실’이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작가는 《소년이 온다》를 쓰는 동안 “실제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1980년 1월 가족과 함께 광주를 떠난 뒤 4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학살이 벌어졌을 때” 아홉 살이었던 작가는 “이후 몇 해가 흘러 서가에 거꾸로 꽂힌 ‘광주 사진첩’”을 본 열두 살의 기억을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어렸던 나는 그 사진들의 정치적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그 훼손된 얼굴들은 오직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으로 내 안에 새겨졌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나는 생각했다. 동시에 다른 의문도 있었다. 같은 책에 실려 있는, 총상자들에게 피를 나눠주기 위해 대학병원 앞에서 끝없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사진이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질문이 충돌해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되었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이면서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한강 작가가 《소년이 온다》를 쓰며 찾아낸 답은 “인간의 참혹과 존엄 사이에서, 두 벼랑 사이를 잇는 불가능한 허공의 길을 건너려면 죽은 자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죽은 동호가 그늘로 걷는 어머니의 손을 힘껏 끌고 햇빛이 있는 곳으로 걸었던 것처럼.

 2014년 5월 《소년이 온다》가 출간되었을 때 작가를 “놀라게 한 것은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으며 느꼈다고 고백해온 고통”이었다. 작가가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느낀 고통과,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이 느꼈다고 말하는 고통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죽은 자와 산 자를 잇는 것이 ‘빛’이라면 작가와 독자, 산 자와 산 자를 연결하는 것은 ‘실’과 같은 것이 아닐까? 인간성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고통에 ‘공감’할 수밖에 없고, 그와 같은 공감이야말로 ‘우리’가 인간을 사랑한다는 증거가 아닐까?

헌법 ‘전문’은 헌법 제정의 유래와 헌법의 근본이념, 기본원리를 밝히는 ‘역사성’을 갖는다. 나아가 헌법제정주체인 국민이 중심이 되는 정치공동체가 헌정질서에 임하는 자세와 각오를 밝힘으로써 헌법이 살아 숨 쉬는 생동감을 갖도록 한다. 39년 만에 발의된 헌법 개정안이 전문에 “4·19혁명, 부마민주항쟁 및 5·18민주화운동의 민주이념을 계승”함을 밝힌 것은 단순한 미사여구를 덧붙인 것이 아니다. 5·18민주화운동이 1987년 민주화 운동을 낳았고 그로 인하여 탄생한 대한민국 헌법이 12·3 계엄이라는 헌정질서의 위기를 극복하고 한 단계 더 도약했음을 선언하는 역사성을 갖는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5월 7일 국회 본회의에 불참하여 ‘투표 불성립’을 만든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반 헌법 행위’이다. 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스타벅스의 ‘탱크 데이’ 행사를 1회성 ‘논란’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는 제1야당에 속한다는 인사들이 공공연하게 내뱉고 다니는 ‘반 헌법적’ 언동과 묘하게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도 괜찮을 거라고, 저기 여의도에 ‘금배지’를 단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의원’들이 있는데, 이 정도가 무슨 문제가 되겠어, 라고. 이런 생각과 언동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12·3 내란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법과대학에 갓 들어가 펼친 헌법학 교과서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이 글을 쓰며 다시 그 대목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읽어본다.

 “헌법은 일정한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 성립되는, 말하자면 역사적인 산물이다. 헌법의 그 역사성이란 결코 퇴영적인 역사성일 수가 없고 진보적이고 발전적인 역사성을 뜻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왜냐하면 헌법은 한 국가의 백년대계를 설계하는 이른바 초시대적인 청사진을 의미하기 때문에 시대의 변천이나 역사의 발전을 포용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