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장원순(공주교육대학교)

출처_게티이미지뱅크
한국 사회에는 다양한 차별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는 나이에 의한 서열화, 차별이다. 일반적으로 한국 사회에서는 나이가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이 나이가 적은 사람을 차별한다. 즉 나이가 많은 이는 나이가 적은 이를 은근히 어리게 보고 하대한다. 그리고 나이가 적은 사람은 당연히 나이가 많은 사람을 우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가 학생을 대하는 자세에서 잘 나타난다. 물론 최근에는 이와는 상반된 현상들도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즉 나이가 적은 젊은 사람들이 노인들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딱틀, 연금충, 꼰대라는 표현들이 나타났다.
나이에 의한 이러한 서로의 차별을 우리는 어떻게 완화하고 궁극적으로 없앨 수 있을까? 직접적으로는 평등권, 즉 차별금지를 가르치고 이에 근거하여 어떠한 차별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여 이를 시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생각, 마인드가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법의 시행은 법이 의도한 효과를 얻기 어렵다, 법의 시행과 더불어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각의 변화가 요구된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생각, 마인드를 변화시키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필자는 사람들의 생각, 마인드의 변화를 위하여 하나의 개념을 제안하고자 한다. 에고, 개념 하나?. 대체 개념 하나가 무슨 힘이 있을까 하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래서 개념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려고 한다. 철학자 들뢰즈에 따르면 개념은 곧 하나의 세상이다. 그에 따르면 철학을 한다는 것은 하나의 개념을 만드는 것, 곧 하나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기존에 없던 새로운 개념 하나를 얻는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의 다른 세상을 얻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개념은 우리로 하여금 다르게 사유하고 다르게 삶을 살아가도록 한다. 즉 우리가 인권이라는 개념을 얻는다면, 우리는 인권이 꿈꾸는 세상을 얻게 되고 그곳에서 인권에 따른 사유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나이에 의한 차별 없는 평등한 삶을 위하여 필자가 제안하고자 하는 개념은 “동시대인(contemporary)”이라는 개념이다.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즉 우리는 동일한 시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이다. 하루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24시간으로 그 길이가 같고, 모두에게 동등하게 소중하다. 지금 이 시간은 나이든 사람이게도, 나이가 적은 사람에게도 그 길이가 같으며, 소중함의 정도가 같다. 그래서 시간의 길이와 소중함의 동일성에 근거를 가지고 우리는 범죄자를 처벌할 때 그의 돈이나 권력이 아닌 시간을 빼앗는다. 시간은 부유한 사람에게도,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도, 힘이 아주 센 사람에게도, 가난한 사람에게도 동일한 길이로, 동일한 소중함을 갖기 때문이다.
사실 나이에 의하여 누군가를 차별하는 행위, 즉 예를 들어, 나이 많은 이가 나이 어린 사람을 다소 낮게 취급하는 행위는 ‘지금’이라는 같은 시간이 흐르는 이 상황에서 누구는 우대받고 누구는 하대를 받는 결과를 낳는다. 동일한 길이의 동일하게 소중한 시간에서 왜 누구의 시간은 그 값이 낮고 가볍게 쓰여야 하는가? 시간의 길이가 동일하고 그 소중함이 같은 만큼, 우리 모두는 시간을 값있게 소중하게 쓸 수 있어야 한다. 누구는 말할지 모르겠다. 나이가 적은 사람은 나중에 성인이 되면 시간을 소중하게 쓸 수 있으니, 지금은 성인에게 양보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면 나는 묻고 싶다. 왜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서야 시간을 소중하게 써야 하는가? 태어나서 그리고 성인이 되고, 이후 노인이 되어서도, 모든 시간대를 소중하게 쓰면 더 좋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우리는 동시대인이다. 우리는 매일 24시간이라는 같은 시간을 살아가며, 그 시간은 모두에게 소중하다. 시간이 모두에게 소중한 만큼 우리 모두는 시간을 소중하게 보낼 수 있어야 한다. 회사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부장에게도, 학교를 다니는 어린 학생에게도, 많은 부를 가지고 여유롭게 사는 사람에게도,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나이든 노인에게도 시간은 모두에게 소중하며 소중하게 쓰여야 한다. 동시대인. “지금 그러한 시간이 우리의 눈앞에서 흐르고 있다”. 서로의 소중한 시간을 위해 우리는 서로를 소중하고 존엄하게 대해야 한다. 서로를 소중하고 존엄하게 대하는 그 시간들이 쌓여 우리의 존엄한 삶이 된다.
그래서 나는 학교 선생으로써 강의 준비를 최대한 열심히 한다. 그리고 강의 시간을 철저히 지키고, 내 앞에 있는 학생들을 어린 사람이 아닌, 내 말을 무조건 경청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와 같은 시간대를 살아가는 동등하게 존엄한 사람들, 동시대인이자 동료로 대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나의 강의실에 온 모든 사람들의 시간이 존엄하게 쓰이기를 희망한다. 모두에게 시간을 같으며 소중하다.
글_장원순(공주교육대학교)
출처_게티이미지뱅크
한국 사회에는 다양한 차별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는 나이에 의한 서열화, 차별이다. 일반적으로 한국 사회에서는 나이가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이 나이가 적은 사람을 차별한다. 즉 나이가 많은 이는 나이가 적은 이를 은근히 어리게 보고 하대한다. 그리고 나이가 적은 사람은 당연히 나이가 많은 사람을 우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가 학생을 대하는 자세에서 잘 나타난다. 물론 최근에는 이와는 상반된 현상들도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즉 나이가 적은 젊은 사람들이 노인들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딱틀, 연금충, 꼰대라는 표현들이 나타났다.
나이에 의한 이러한 서로의 차별을 우리는 어떻게 완화하고 궁극적으로 없앨 수 있을까? 직접적으로는 평등권, 즉 차별금지를 가르치고 이에 근거하여 어떠한 차별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여 이를 시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생각, 마인드가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법의 시행은 법이 의도한 효과를 얻기 어렵다, 법의 시행과 더불어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각의 변화가 요구된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생각, 마인드를 변화시키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필자는 사람들의 생각, 마인드의 변화를 위하여 하나의 개념을 제안하고자 한다. 에고, 개념 하나?. 대체 개념 하나가 무슨 힘이 있을까 하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래서 개념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려고 한다. 철학자 들뢰즈에 따르면 개념은 곧 하나의 세상이다. 그에 따르면 철학을 한다는 것은 하나의 개념을 만드는 것, 곧 하나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기존에 없던 새로운 개념 하나를 얻는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의 다른 세상을 얻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개념은 우리로 하여금 다르게 사유하고 다르게 삶을 살아가도록 한다. 즉 우리가 인권이라는 개념을 얻는다면, 우리는 인권이 꿈꾸는 세상을 얻게 되고 그곳에서 인권에 따른 사유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나이에 의한 차별 없는 평등한 삶을 위하여 필자가 제안하고자 하는 개념은 “동시대인(contemporary)”이라는 개념이다.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즉 우리는 동일한 시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이다. 하루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24시간으로 그 길이가 같고, 모두에게 동등하게 소중하다. 지금 이 시간은 나이든 사람이게도, 나이가 적은 사람에게도 그 길이가 같으며, 소중함의 정도가 같다. 그래서 시간의 길이와 소중함의 동일성에 근거를 가지고 우리는 범죄자를 처벌할 때 그의 돈이나 권력이 아닌 시간을 빼앗는다. 시간은 부유한 사람에게도,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도, 힘이 아주 센 사람에게도, 가난한 사람에게도 동일한 길이로, 동일한 소중함을 갖기 때문이다.
사실 나이에 의하여 누군가를 차별하는 행위, 즉 예를 들어, 나이 많은 이가 나이 어린 사람을 다소 낮게 취급하는 행위는 ‘지금’이라는 같은 시간이 흐르는 이 상황에서 누구는 우대받고 누구는 하대를 받는 결과를 낳는다. 동일한 길이의 동일하게 소중한 시간에서 왜 누구의 시간은 그 값이 낮고 가볍게 쓰여야 하는가? 시간의 길이가 동일하고 그 소중함이 같은 만큼, 우리 모두는 시간을 값있게 소중하게 쓸 수 있어야 한다. 누구는 말할지 모르겠다. 나이가 적은 사람은 나중에 성인이 되면 시간을 소중하게 쓸 수 있으니, 지금은 성인에게 양보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면 나는 묻고 싶다. 왜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서야 시간을 소중하게 써야 하는가? 태어나서 그리고 성인이 되고, 이후 노인이 되어서도, 모든 시간대를 소중하게 쓰면 더 좋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우리는 동시대인이다. 우리는 매일 24시간이라는 같은 시간을 살아가며, 그 시간은 모두에게 소중하다. 시간이 모두에게 소중한 만큼 우리 모두는 시간을 소중하게 보낼 수 있어야 한다. 회사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부장에게도, 학교를 다니는 어린 학생에게도, 많은 부를 가지고 여유롭게 사는 사람에게도,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나이든 노인에게도 시간은 모두에게 소중하며 소중하게 쓰여야 한다. 동시대인. “지금 그러한 시간이 우리의 눈앞에서 흐르고 있다”. 서로의 소중한 시간을 위해 우리는 서로를 소중하고 존엄하게 대해야 한다. 서로를 소중하고 존엄하게 대하는 그 시간들이 쌓여 우리의 존엄한 삶이 된다.
그래서 나는 학교 선생으로써 강의 준비를 최대한 열심히 한다. 그리고 강의 시간을 철저히 지키고, 내 앞에 있는 학생들을 어린 사람이 아닌, 내 말을 무조건 경청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와 같은 시간대를 살아가는 동등하게 존엄한 사람들, 동시대인이자 동료로 대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나의 강의실에 온 모든 사람들의 시간이 존엄하게 쓰이기를 희망한다. 모두에게 시간을 같으며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