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하는 힘! 세번째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두구두구두구~~~
통계 전문가로 일하셨고 은퇴 이후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계신 대전충남인권연대의 회원, 최봉호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 최봉호 선생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회원 최봉호입니다. ^^

최봉호 회원 제공
- 얼마 전에 대표를 맡으시게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통계청에서 40년을 일했죠. 2015년 6월 30일까지 근무하고 은퇴했어요. 통계교육원장도 해봤고, 통계가 제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요. 통계청에서 퇴사한 분들이 만든 단체가 있는데 ‘통계동우회’라고... 올해 거기 대표를 맡게 되었어요~ 저는 비상근 명예직이지만 회원도 많고, 할 일도 많아서 상근자가 있고 그분이 일을 도맡아서 하고 있어요. 이사회, 총회에 통계의 날 등 행사도 크게 하고요.
9월 1일이 통계의 날이예요~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의 날’에 인권의 의미를 되새기고, 인권문화를 확산해 가기 위해 행사하는 것처럼 통계의 날도 통계의 중요성을 알리고 공식 통계가 사회에 기여하는 바를 기리는 시간이지요.

젊은 시절 최봉호 회원(동북지방통계청장 시절)
출처_농민신문
- 통계 분야에서 일하시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시다면요?
2~3가지가 있는데요. 5년마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인구총조사를 하는데요 제가 몇 번 진두지휘를 했고요. 2001년에 세계통계대회라고 아주 큰 규모의 국제학술대회를 주관했던 것과 프랑스 파리에서 2년간 OECD에서 관련 분야에 근무를 했어요. 그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젊었을 때 일이죠^^
- 은퇴하신 이후에도 여전히 사회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시는 것 같아요. 9~10년 정도 되셨는데 가장 의미 있으셨던 활동이나 기억에 남는 거나 이런 건 있으세요?
태국, 스리랑카에서 통계청 자문관을 하기도 했구요. 코이카를 통해서 후진국에 통계 관련 교육이나 일 등을 많이 했어요. 지금은 마술도 배우고, 복지관에서 자원봉사도 하고요.
참고로 베트남어를 지금 한 5년째 배우고 있거든요.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태국어, 베트남어, 캄보디아어, 중국어, 일본어를 배웠고 계속 더 배우고 익히고 있어요. 제가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우는 것은 그 나라 말을 배우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는 거예요. 베트남어의 감사합니다. 깜언은 感恩(감은)에서 유래된 거랍니다.

최봉호 회원 제공
- 마술은 어떻게 배우시게 된 거예요?
제가 성격이 좀 serious 해요. 중고등학교 때 가정통신문에 보면 항상 책임감이 강하다고 적혀 있는데 저는 그게 좋게 여겨지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이걸 탈피하기 위해서, 내가 나를 좀 가볍게 하고 싶어서 마술이랑 웃음 치료를 배웠어요. 그중에 마술이 저한테 더 맞았던 것 같아요. 니체도 ‘몸을 가볍게 하라’ 했거든요. 나를 가볍게 하는 뭔가가 필요했어요. 생활마술이라고 있어요. 생활마술 한 두 개만 배워둬도 참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어요. 인권교육 갔을 때 마술을 한 적이 있는데 분위기 넘 좋았어요~
- 대전시인권센터에서 인권기자단도 하시고, 2022년에는 인권교육 강사를 수료하시고 위촉 되셨는데, 인권교육해 보시니 어떠신가요?
이론, 책, 강의로 배운 것을 풀어내는 현장은 사실 쉽지 않다는 느꼈어요. 학교에서 배운 것과 사회가 괴리감이 있듯이 이론과 실전이 다른거죠. 인권에 대해 이론적으로 많이 알아도 아이들이나 장애인이나 노인들, 대상에 따라 교육이 모두 달라져요. 교육대상의 생각이나 수준도 다 다르기도 하고요.
통계청에서 제가 교육 업무를 운영도 해봤는데 교육대상과의 상호작용이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일방적인 전달 교육보다는 활동과 질의 응답 중심으로요.
자기 방법에 매몰되지 않고 다양하게 접근하고 접목시켜서 교육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개인 맞춤형 시대이고, 교육도 개인맞춤형으로 진행되어야 더 실효성이 있다고 보여요. 그만큼 교육대상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겠죠.
교육대상자의 니즈, 수준을 잘 알고 접근해야 되는 것 같아요.
- 최봉호 회원님이 인권에 대해 배우고 생각하신 점이 있다면?
인권이 인간의 권리는 맞는데요. 그런데 인간이기 때문에 혜택을 받는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혜택이 아니고 인간이 인간 서로에게 상호 존중을 해야한다는 거죠. 지금처럼 개인이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는 특히, 상호 존중의 문화를 형성하는 해야해요. 장애인들의 지하철 시위, 낙태권 등 이슈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제가 복지관에 노인분들을 가르치는데 이런 이슈가 나오면 노인분들은 펄쩍 뛰어요. 인권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연습이 필요하고 그래서 교육이 필요한 거죠.
그리고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집에서, 일상생활 속에서도 실천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이런 사건, 이슈마다 좀 실망하게 되는 거는 정부 그리고 작게는 대전 등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상태가 지속된다는 거예요. 구조가 문제인데 구조를 바꾸기 위한 정책이 없어요. 이거 잘못 이야기하면 혼나는데... ㅎㅎ
그리고 우리는 방글라데시나, 캄보디아 사람들을 겉으로는 아닐지라도 자세히 보면 무시하거나 편견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는 진정한 선진국이 아니라 생각이 들어요. 아랍 사람들은 무조건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말도 황당하구요, 인권적으로도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선진국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걸 저는 경험했거든요. ‘뭐는 뭐 하다’ 그런 식의 생각들을 많이 탈피를 해야 되요.
작년에 인권센터가 종료된 것도 이해가 안됐어요. 하나의 조직을 순식간에 없애버리는 건 잘못하는 거예요. 그동안 쌓아온 것들을 다 무너뜨리는 일이거든요. 제가 속해 있던 주민참여예산위원회도 구성원을 다 바꿔 버리더라구요. 어떤 조직이든지 만들기가 어려운데 말이예요. 정책은 시민들의 필요를 확인하고 시행되는 것이지 정치적인 성향으로 판단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 봐요. 행정하는 분들은 진짜 더 성숙해야 되고 시민을 위한다는 마인드가 있어야 해요.
- 대전충남인권연대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전시인권센터가 종료되어 문을 닫았잖아요. 대전시인권센터의 역할이 사라져서 안타까운데 그래서 대전충남인권연대의 역할이 더 중요하고 필요한 것 같아요. 인권센터에서 인권에 대해 알리고 인권이슈들도 다룬 인권신문이 정말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역할을 해주셨으면 해요. 인권에 대해 시민들이 보고 들을 수 있는 통로의 역할이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세요?
75세까지만 하고 그만해야죠. 그때 이후에는 수습해야지(웃음)
그리고 저는 통계와 통계로 보는 숫자를 바탕으로 한 인간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어요. 사람들에게 편히 읽히는 재밌는 글을 쓰고 싶어요. ^^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최봉호 회원님의 긴 인생의 여정을 들으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인터뷰를 했습니다. 청년 못지 않은, 어쩌면 청년보다 더 많은 에너지로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아가시는 최봉호 회원님의 다양한 경험과 활동 속에 녹여진 삶의 지혜와 안목이 부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정리_ 김정미
함께 하는 힘! 세번째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두구두구두구~~~
통계 전문가로 일하셨고 은퇴 이후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계신 대전충남인권연대의 회원, 최봉호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 최봉호 선생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회원 최봉호입니다. ^^
최봉호 회원 제공
- 얼마 전에 대표를 맡으시게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통계청에서 40년을 일했죠. 2015년 6월 30일까지 근무하고 은퇴했어요. 통계교육원장도 해봤고, 통계가 제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요. 통계청에서 퇴사한 분들이 만든 단체가 있는데 ‘통계동우회’라고... 올해 거기 대표를 맡게 되었어요~ 저는 비상근 명예직이지만 회원도 많고, 할 일도 많아서 상근자가 있고 그분이 일을 도맡아서 하고 있어요. 이사회, 총회에 통계의 날 등 행사도 크게 하고요.
9월 1일이 통계의 날이예요~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의 날’에 인권의 의미를 되새기고, 인권문화를 확산해 가기 위해 행사하는 것처럼 통계의 날도 통계의 중요성을 알리고 공식 통계가 사회에 기여하는 바를 기리는 시간이지요.
젊은 시절 최봉호 회원(동북지방통계청장 시절)
출처_농민신문
- 통계 분야에서 일하시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시다면요?
2~3가지가 있는데요. 5년마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인구총조사를 하는데요 제가 몇 번 진두지휘를 했고요. 2001년에 세계통계대회라고 아주 큰 규모의 국제학술대회를 주관했던 것과 프랑스 파리에서 2년간 OECD에서 관련 분야에 근무를 했어요. 그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젊었을 때 일이죠^^
- 은퇴하신 이후에도 여전히 사회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시는 것 같아요. 9~10년 정도 되셨는데 가장 의미 있으셨던 활동이나 기억에 남는 거나 이런 건 있으세요?
태국, 스리랑카에서 통계청 자문관을 하기도 했구요. 코이카를 통해서 후진국에 통계 관련 교육이나 일 등을 많이 했어요. 지금은 마술도 배우고, 복지관에서 자원봉사도 하고요.
참고로 베트남어를 지금 한 5년째 배우고 있거든요.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태국어, 베트남어, 캄보디아어, 중국어, 일본어를 배웠고 계속 더 배우고 익히고 있어요. 제가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우는 것은 그 나라 말을 배우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는 거예요. 베트남어의 감사합니다. 깜언은 感恩(감은)에서 유래된 거랍니다.
최봉호 회원 제공
- 마술은 어떻게 배우시게 된 거예요?
제가 성격이 좀 serious 해요. 중고등학교 때 가정통신문에 보면 항상 책임감이 강하다고 적혀 있는데 저는 그게 좋게 여겨지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이걸 탈피하기 위해서, 내가 나를 좀 가볍게 하고 싶어서 마술이랑 웃음 치료를 배웠어요. 그중에 마술이 저한테 더 맞았던 것 같아요. 니체도 ‘몸을 가볍게 하라’ 했거든요. 나를 가볍게 하는 뭔가가 필요했어요. 생활마술이라고 있어요. 생활마술 한 두 개만 배워둬도 참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어요. 인권교육 갔을 때 마술을 한 적이 있는데 분위기 넘 좋았어요~
- 대전시인권센터에서 인권기자단도 하시고, 2022년에는 인권교육 강사를 수료하시고 위촉 되셨는데, 인권교육해 보시니 어떠신가요?
이론, 책, 강의로 배운 것을 풀어내는 현장은 사실 쉽지 않다는 느꼈어요. 학교에서 배운 것과 사회가 괴리감이 있듯이 이론과 실전이 다른거죠. 인권에 대해 이론적으로 많이 알아도 아이들이나 장애인이나 노인들, 대상에 따라 교육이 모두 달라져요. 교육대상의 생각이나 수준도 다 다르기도 하고요.
통계청에서 제가 교육 업무를 운영도 해봤는데 교육대상과의 상호작용이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일방적인 전달 교육보다는 활동과 질의 응답 중심으로요.
자기 방법에 매몰되지 않고 다양하게 접근하고 접목시켜서 교육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개인 맞춤형 시대이고, 교육도 개인맞춤형으로 진행되어야 더 실효성이 있다고 보여요. 그만큼 교육대상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겠죠.
교육대상자의 니즈, 수준을 잘 알고 접근해야 되는 것 같아요.
- 최봉호 회원님이 인권에 대해 배우고 생각하신 점이 있다면?
인권이 인간의 권리는 맞는데요. 그런데 인간이기 때문에 혜택을 받는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혜택이 아니고 인간이 인간 서로에게 상호 존중을 해야한다는 거죠. 지금처럼 개인이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는 특히, 상호 존중의 문화를 형성하는 해야해요. 장애인들의 지하철 시위, 낙태권 등 이슈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제가 복지관에 노인분들을 가르치는데 이런 이슈가 나오면 노인분들은 펄쩍 뛰어요. 인권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연습이 필요하고 그래서 교육이 필요한 거죠.
그리고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집에서, 일상생활 속에서도 실천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이런 사건, 이슈마다 좀 실망하게 되는 거는 정부 그리고 작게는 대전 등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상태가 지속된다는 거예요. 구조가 문제인데 구조를 바꾸기 위한 정책이 없어요. 이거 잘못 이야기하면 혼나는데... ㅎㅎ
그리고 우리는 방글라데시나, 캄보디아 사람들을 겉으로는 아닐지라도 자세히 보면 무시하거나 편견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는 진정한 선진국이 아니라 생각이 들어요. 아랍 사람들은 무조건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말도 황당하구요, 인권적으로도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선진국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걸 저는 경험했거든요. ‘뭐는 뭐 하다’ 그런 식의 생각들을 많이 탈피를 해야 되요.
작년에 인권센터가 종료된 것도 이해가 안됐어요. 하나의 조직을 순식간에 없애버리는 건 잘못하는 거예요. 그동안 쌓아온 것들을 다 무너뜨리는 일이거든요. 제가 속해 있던 주민참여예산위원회도 구성원을 다 바꿔 버리더라구요. 어떤 조직이든지 만들기가 어려운데 말이예요. 정책은 시민들의 필요를 확인하고 시행되는 것이지 정치적인 성향으로 판단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 봐요. 행정하는 분들은 진짜 더 성숙해야 되고 시민을 위한다는 마인드가 있어야 해요.
- 대전충남인권연대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전시인권센터가 종료되어 문을 닫았잖아요. 대전시인권센터의 역할이 사라져서 안타까운데 그래서 대전충남인권연대의 역할이 더 중요하고 필요한 것 같아요. 인권센터에서 인권에 대해 알리고 인권이슈들도 다룬 인권신문이 정말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역할을 해주셨으면 해요. 인권에 대해 시민들이 보고 들을 수 있는 통로의 역할이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세요?
75세까지만 하고 그만해야죠. 그때 이후에는 수습해야지(웃음)
그리고 저는 통계와 통계로 보는 숫자를 바탕으로 한 인간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어요. 사람들에게 편히 읽히는 재밌는 글을 쓰고 싶어요. ^^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최봉호 회원님의 긴 인생의 여정을 들으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인터뷰를 했습니다. 청년 못지 않은, 어쩌면 청년보다 더 많은 에너지로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아가시는 최봉호 회원님의 다양한 경험과 활동 속에 녹여진 삶의 지혜와 안목이 부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정리_ 김정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