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이상재(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책표지
이 책은 1945년 1월 독일 피란민 9,000여 명을 태우고 항해 중이던 구스톨로프호가 소련 잠수함이 발사한 어뢰 세 발을 맞고 침몰하면서 여성과 어린이 대부분이 사망하고 1,000여 명 만이 살아남은 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아무리 전쟁 중이지만 수천 명의 민간인이 죽은 사건이라면 한 번쯤 문학에서 다뤄졌어도 이상할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이른바 ‘구스톨로프호’ 사건을 다룬 이 소설을 출판사에서는 ‘독일 문단에서 금기시되었던 피란선 구스틀로프호 침몰 사건’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왜 금기였을까?
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은 유대인과 소수자, 반체제 인사들을 전쟁터가 아닌 수용소와 후방에서 1,000만 명 넘게 살해하는 반인도적 범죄를 저질렀다. 이로 인한 전후 독일 정부와 정치권의 공식적인 입장은 ‘사과와 참회’였다. 이를 반대하고 나치를 지지하는 소수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독일 정부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여전히 사과하는 중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노벨상 수상 작가인 세계적인 소설가 귄터 그라스가 독일 민간인 수천 명이 사망한 구스톨로프호 사건을 다룬 소설을 발표했으니, 당시의 충격과 논란은 이해되고 남음이 있다.
그러한 논란을 예견한 것인지 귄터 그라스는 책의 제목처럼 소설의 진행을 ‘게걸음’처럼 옆으로 가고, 느릿하게 가거나, 혹은 멈추면서 역사를 한쪽 면에서만 바라보지 말고 사건과 개인의 삶도 충분히 주시하도록 주문한다.
이를 위해서 소설은 현재와 과거를 수시로 넘나들고 등장인물도 각자의 처지에 맞추어 최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끌고 간다.
소설을 주로 이끄는 나’라는 화자는 귄터 그라스로 지칭되는 ‘그 노인’, ‘고용주’, ‘그’에게 구스틀로프호 침몰을 조사할 것을 주문받는다. ‘나’의 어머니는 구스틀로프호가 침몰할 때 만삭이었는데 구조되자마자 ‘나’를 낳는다. 당연히 어머니는 구스틀로프호를 침몰시킨 소련에 적대적이고 구스톨로프호 침몰의 진상규명에 대해 적극적이다.
또한 ‘나’의 아들 10대인 ‘콘라트’는 할머니의 영향으로 구스틀로프호 사건에 집착하고 홈페이지까지 운영하는 신나치즘 신봉주의자다.
소설에서는 구스틀로프호를 침몰시킨 잠수함의 선장까지 등장시키고 구스틀로프호가 히틀러의 교시에 따라 독일 노동자, 농민의 여행선으로 만들어졌다가 전쟁 중에는 병원선, 병영용 폐함, 마지막에는 군 수송선이었던 복잡한 이력도 복원해 낸다.
구스틀로프호 침몰 사건보다 훨씬 많은 사람을 학살한 독일이 구스틀로프호 사건을 역사의 수면 위로 다시 끌어올리는 것은 문학작품이라 해도 자칫 ‘우리도 피해자’ 란 프레임을 가져오려는 것이 아닐지 하는 의심을 살 수도 있다.
일본은 전후 내내 전범국가가 아닌 전쟁 피해국의 불쌍한 국민이라는 관점의 영화. 소설, 음악을 수도 없이 만들어 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민간인 수천 명이 죽은 구스틀로프호 침몰 사건은 자연스럽게 잊히는 것이 맞는 것일까?
2차 세계대전은 6년여 동안 벌어진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그 속에서 5,000만 명이 넘게 전쟁 때문에 죽어간 사건이다. 그 와중에 어떤 죽음은 의미 있고 어떤 죽음은 의미가 없는 죽음이 당연히 있을 리 없다. 비록 군선軍船인 수송선을 탔다고는 하지만 비무장 민간인 그중에서도 대부분 여성과 어린이가 사망한 사건의 문학적 성찰은 조금 늦은 감도 있어 보였다.
이 소설이 발표된 해인 2002년이면 독일에서도 네오나치즘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소설 속에서도 ‘나’의 아들인 10대 ‘콘라트’도 그러한 극우 청소년으로 그려지고 있다. 소설의 끝 무렵에 콘라트는 구스틀로프호 침몰 사건에 대해 자신과 의견이 다른 다비드를 권총으로 쏴 죽인다. 역사적 죽음의 추모를 위해서는 개인의 생명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아이러니를 상징처럼 보여 주는 것 같았다.
귄터그라스가 아닌 극우이념의 작가가 이 소설을 썼다면 작품의 완성도는 둘째치고 나치주의의 부활이라는 논쟁에 구스틀로프호 침몰 사건의 희생자에 대한 부각과 추모는 싶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말년의 자서전을 통해 10대 시절 나치 친위대 복무 사실을 밝히면서 엄청난 논란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오랜 사회민주당 당원 활동과 문단의 행동하는 양심으로 불렸던 귄터 그라스였기에 충분히 이해가 가는 주제의식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삶에 거대하고 결정적인 힘을 행사하는 정치에 대해 쓰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문학은 변화를 가져올 힘이 있다.” <귄터 그라스>
글_이상재(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책표지
이 책은 1945년 1월 독일 피란민 9,000여 명을 태우고 항해 중이던 구스톨로프호가 소련 잠수함이 발사한 어뢰 세 발을 맞고 침몰하면서 여성과 어린이 대부분이 사망하고 1,000여 명 만이 살아남은 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아무리 전쟁 중이지만 수천 명의 민간인이 죽은 사건이라면 한 번쯤 문학에서 다뤄졌어도 이상할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이른바 ‘구스톨로프호’ 사건을 다룬 이 소설을 출판사에서는 ‘독일 문단에서 금기시되었던 피란선 구스틀로프호 침몰 사건’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왜 금기였을까?
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은 유대인과 소수자, 반체제 인사들을 전쟁터가 아닌 수용소와 후방에서 1,000만 명 넘게 살해하는 반인도적 범죄를 저질렀다. 이로 인한 전후 독일 정부와 정치권의 공식적인 입장은 ‘사과와 참회’였다. 이를 반대하고 나치를 지지하는 소수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독일 정부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여전히 사과하는 중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노벨상 수상 작가인 세계적인 소설가 귄터 그라스가 독일 민간인 수천 명이 사망한 구스톨로프호 사건을 다룬 소설을 발표했으니, 당시의 충격과 논란은 이해되고 남음이 있다.
그러한 논란을 예견한 것인지 귄터 그라스는 책의 제목처럼 소설의 진행을 ‘게걸음’처럼 옆으로 가고, 느릿하게 가거나, 혹은 멈추면서 역사를 한쪽 면에서만 바라보지 말고 사건과 개인의 삶도 충분히 주시하도록 주문한다.
이를 위해서 소설은 현재와 과거를 수시로 넘나들고 등장인물도 각자의 처지에 맞추어 최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끌고 간다.
소설을 주로 이끄는 나’라는 화자는 귄터 그라스로 지칭되는 ‘그 노인’, ‘고용주’, ‘그’에게 구스틀로프호 침몰을 조사할 것을 주문받는다. ‘나’의 어머니는 구스틀로프호가 침몰할 때 만삭이었는데 구조되자마자 ‘나’를 낳는다. 당연히 어머니는 구스틀로프호를 침몰시킨 소련에 적대적이고 구스톨로프호 침몰의 진상규명에 대해 적극적이다.
또한 ‘나’의 아들 10대인 ‘콘라트’는 할머니의 영향으로 구스틀로프호 사건에 집착하고 홈페이지까지 운영하는 신나치즘 신봉주의자다.
소설에서는 구스틀로프호를 침몰시킨 잠수함의 선장까지 등장시키고 구스틀로프호가 히틀러의 교시에 따라 독일 노동자, 농민의 여행선으로 만들어졌다가 전쟁 중에는 병원선, 병영용 폐함, 마지막에는 군 수송선이었던 복잡한 이력도 복원해 낸다.
구스틀로프호 침몰 사건보다 훨씬 많은 사람을 학살한 독일이 구스틀로프호 사건을 역사의 수면 위로 다시 끌어올리는 것은 문학작품이라 해도 자칫 ‘우리도 피해자’ 란 프레임을 가져오려는 것이 아닐지 하는 의심을 살 수도 있다.
일본은 전후 내내 전범국가가 아닌 전쟁 피해국의 불쌍한 국민이라는 관점의 영화. 소설, 음악을 수도 없이 만들어 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민간인 수천 명이 죽은 구스틀로프호 침몰 사건은 자연스럽게 잊히는 것이 맞는 것일까?
2차 세계대전은 6년여 동안 벌어진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그 속에서 5,000만 명이 넘게 전쟁 때문에 죽어간 사건이다. 그 와중에 어떤 죽음은 의미 있고 어떤 죽음은 의미가 없는 죽음이 당연히 있을 리 없다. 비록 군선軍船인 수송선을 탔다고는 하지만 비무장 민간인 그중에서도 대부분 여성과 어린이가 사망한 사건의 문학적 성찰은 조금 늦은 감도 있어 보였다.
이 소설이 발표된 해인 2002년이면 독일에서도 네오나치즘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소설 속에서도 ‘나’의 아들인 10대 ‘콘라트’도 그러한 극우 청소년으로 그려지고 있다. 소설의 끝 무렵에 콘라트는 구스틀로프호 침몰 사건에 대해 자신과 의견이 다른 다비드를 권총으로 쏴 죽인다. 역사적 죽음의 추모를 위해서는 개인의 생명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아이러니를 상징처럼 보여 주는 것 같았다.
귄터그라스가 아닌 극우이념의 작가가 이 소설을 썼다면 작품의 완성도는 둘째치고 나치주의의 부활이라는 논쟁에 구스틀로프호 침몰 사건의 희생자에 대한 부각과 추모는 싶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말년의 자서전을 통해 10대 시절 나치 친위대 복무 사실을 밝히면서 엄청난 논란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오랜 사회민주당 당원 활동과 문단의 행동하는 양심으로 불렸던 귄터 그라스였기에 충분히 이해가 가는 주제의식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삶에 거대하고 결정적인 힘을 행사하는 정치에 대해 쓰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문학은 변화를 가져올 힘이 있다.” <귄터 그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