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왈리의 시선>> 분노로 얻은 자유

2026-05-09

글_고춘희(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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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나는 언제 분노를 느낄까? 이 책 <제임스>의 주인공 짐은 자유를 향해 분노를 가꾸는 한 인물이다. 짐은 노예로 태어나 가족을 이루고 살지만, 백인 사회의 틀에 맞춰 살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숨긴다. 글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글을 쓸 줄 알아도 쓰지 못하는 척한다. 아이에게 글을 가르치면서도, 자신처럼 무지한 척 행동하도록 가르치고, 백인 앞에서는 일부러 어눌하게 말하고 가끔은 일부러 더듬는 말투까지 흉내 내라고 한다. 백인들의 기분을 맞추는 것이 노예에게 항상 도움이 되고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이 자신을 팔려고 하자 짐은 자유를 위해 도망을 선택한다. 집 근처의 무인도로 몸을 숨긴 짐은, 아버지의 학대로 가출한 헉을 만나 동행하게 된다. 헉은 바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주인공이며, 헉은 ‘톰 소여의 모험’의 주인공 톰의 친구다. 다른 점이 있다면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1800년대 후반 마크 트웨인이 쓴 고전이라면, <제임스>는 2024년 퍼시벌 에버렛의 최근 작품이다. 또한 두 전작은 주인공이 스스로 선택한 모험이라면, 짐의 여정은 목숨을 건 도망이다.

 

짐이 도망자로 목숨을 부지하는 동안, 도망 노예로 현상금이 붙고 사라진 헉의 살인자가 되고, 죽은 백인 여자를 만졌다는 죄, 수첩을 훔친 절도죄 등 죄목이 늘어난다. 그 속에서 짐은 분노를 느끼는데 ‘분노에 대해 흥미롭게 여기고 분노가 새로운 감정은 아니지만 감정의 크기, 범위, 방향을 새롭고 낯설게 느끼며’ 분노에 대해 성찰한다. 우여곡절 끝에 가족을 만나러 옛 짐에 오지만 아내와 딸은 이미 팔려 갔고 그 집에 살고 있는 다른 여성이 백인 감시인에게 끔찍한 일을 당하는 것을 보고 분노가 극에 달한다.

 

나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분노를 느끼고 싶었다. 내 분노와 친해지고 있었고, 분노를 느끼는 방법뿐만 아니라 어쩌면 사용하는 방법까지 배우고 있었다. p.361

 

그 남자가 싫었다. 그 상황에 개입하지 못한 나 자신도 싫었다. 정의를 실현하려고 하면 반드시 부당한 보복이 뒤따라서 정의를 실현할 수 없게 하는 세상이 싫었다. p.365


짐은 자신의 내면 깊숙이 잠재되어 있던 분노를 발견하고, 그것을 억누르기보다 점점 타오르게 한다. 처음에는 생존을 위해 감춰야 했던 감정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분노는 점점 또렷한 의식과 방향을 갖게 된다. 그렇게 쌓이고 다져진 분노는 더이상 단순한 감정에 머물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질 힘을 갖는다. 결국 짐의 분노는 자신을 억압하던 존재를 향해 분명하게 겨눠지며, 마침내 감시인을 심판하는 데까지 이르게된다.

 

그 후 아내와 딸을 찾기 위해 대처 판사 집에 들어가 단서를 찾던 그는, 판사와 대면하게 된다. 이때 짐은 노예 특유의 어눌하고 웅얼거리는 말이 아닌 또렷한 백인의 말을 사용한다. 흥미로운 건 판사가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도 짐의 말투에 가장 혼란과 충격을 받는 장면이다. 이는 사람이 틀을 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틀이 얼마나 강하게 작용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도망자 생활하는 동안 자신과 가족의 자유만을 갈망하던 짐은, 판사를 통해 딸과 아내가 있는 곳을 알아내어 마침내 구출해낸다.

 

짐이 마지막 수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장면은 세계인권선언문 전문을 떠올리게 한다. 세계인권선언문 전문은 ‘인간이 폭정과 억압에 대항하는 마지막 수단으로서 반란을 일으키도록 강요받지 않으려면’이라는 문구로, 억압은 분노를 낳고, 그것이 끝내 저항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노예 중에도 주인에게 환심을 사고 싶은 노예, 좋은 주인과 잔혹한 주인으로 구분하여 운이 좋기를 바라는 노예, 자신의 상황에 만족하는 노예 등이 있다. 자유를 속박당하고 있음에도 당연하게 여기는 이런 사람들은 분노를 느끼지도, 변화를 꿈꾸지도 못한다.

 

<제임스>를 읽고 하필왈리 모임에서 누구나 제임스가 될 수 있고 동시에 제임스를 대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제임스이든, 제임스를 대하는 사람이든, 누구든 존엄한 대우 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다면 마땅히 분노해야 한다. 분노는 변화로 나아갈 잠재력이자 자신이 깨어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내가 말하는 분노는 단지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화내는 감정이 아니라, 분명한 근거를 지닌 정당한 분노를 의미한다. 나는 그 근거를 인간존엄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원칙에서 찾겠다. 이를 지키기 위한 틀을 세우기 위해 분노의 크기, 범위, 방향 등을 잘 파악하고 가꾸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