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대전충남인권연대로고
대전충남인권연대소개 인권피해신고접수 인권교육안내 미디어 자료실 후원자원봉사안내 참여마당
 

박현주(시민참여연구센터 사무국장) 손주영(북디자이너) 이광원(청소년인문강사) 이희옥(교사) 추명구(대전지속가능발전협의회 팀장) 오임술(민주노총대전본부) 임아연(당진시대기자)님과 같은 지역의 현장 활동가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인권현안에 대해 2주에 한 번씩 글을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작성일 : 17-08-09 16:32
8월 안부 인사
 글쓴이 : 인권연대
조회 : 151  
8월 안부 인사

손주영(북디자이너)

  올해, 두 달의 간격을 두고 친가 쪽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을 치르는 피로와 일가 친지들과 뒤섞이는 불편과 역할 놀이의 답답함을 제외하고 실상 내가 느낀 상실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 상실감이 크지 않다는 것, 그다지 마음이 아프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 가장 큰 슬픔이라면 슬픔이었다. 건조하고 냉정하게 말하면 사람은 태어난 이상 누구나 죽고 조부모는 그 때가 온 것이다. 나는 충분히 조부모 앞에서 건조하고도 냉정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7년 전 9월에 죽은 남동생을 생각할 때면 아직도 세상에 구멍이 난 것 같은데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한 집에서 함께 살던 조부모의 죽음에는 이렇게 무덤할 수 있을까. 슬프지 않다는 것을 슬퍼해야 하는 사실에 나는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나는 서울시 성북구 돈암동 한진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과 성신여대역 사이에 자리한 한성대입구역이 아파트 단지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이다. 작년 가을 쯤 아파트 근처 고기집의 뒷자리에 앉아있던 중년 남성들의 술자리에서 건너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돈암동 한신한진아파트는 1997년도 IMF 이전에 로비를 통해 불법으로 시공이 승인된 아파트이다. 언덕 위에 산을 깎아서 지어지는 대단지 아파트는 주변 미관을 심각하게 해치기 때문에 승인이 되지 말아야한다. 그러니 아파트가 지어진 사실의 수면 아래에는 비리와 로비가 개입되었을리 틀림없다는 얘기였다.

  남편과 내가 이 곳에 살기로 결정한 이유는 단순하다. 서로의 일터 중간 쯤에 위치하고 평수대비 월세가 많이 비싸지않았기때문이다. 역에서 걸어서 15분, 산행을 할 때처럼 숨을 몰아쉬어야 단지에 도착하는 핸디캡 때문일 것이다.
물론 우리가 전세 혹은 매매로 아파트에 살 수는 없다. 나와 남편이 숨만 쉬며, 밥을 먹지도 잠을 자거나 씻을 집이 없이 둘의 월급을 몽땅 합쳐 모아도 지금 사는 아파트를 사려면 5년은 족히 걸리는데 그러는 동안 아파트 가격은 오를 것이고, 무엇보다 숨만 쉬고 사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아파트다. 물론 오래된 아파트이지만 나도 한번쯤 아파트에 살아보고 싶었다. 살아보고 아파트에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뭔가 아파트 생활에 대해 얘기할 때, 나도 한마디 쯤 할 말을 가지고 싶었다고 할까. 나는 대다수의 대한민국 시민들과는 다르게 아파트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다. 경비실 앞에 호수를 매직마커로 표시한 택배 더미도, 비닐봉투와 스티로폼까지 분류된 분리 배출 시스템도, 불시에 거실 어딘가에 설치된 스피커로 들려오는 경비원의 안내방송도 처음 경험한다. 아파트에 사는 이웃들도 처음이다. 물론 월세로 사는 우리가 이곳에 산다고 떡을 돌린다든지 앞옆집을 돌며 인사를 하거나 하진 않았다. 인사는 적어도 전세 혹은 소유주나 할 수 있는 관례이다. 따로 인사를 하지 않아도 (복도형 아파트라는 구조의 문제인지) 나는 이웃들과 출퇴근 시간에 종종 마주친다. 복도에서 문을 마주봤을 때 왼쪽에는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오른쪽에는 80대 정도로 보이는 할머니가 산다. 아니 정정한다. 오른쪽 이웃인 할머니는 적어도 몇 달 전까지는 살고 있었다. 
 
  출근길에 나는 처음 이웃 할머니와 마주쳤다. 당시 그녀는 천천히 아파트 복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대낮에 그럴 일이 없을텐데 할머니와 마주친 순간 나는 그녀가 유령인 줄 알았다. 몹시 당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곧이어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이 아닌가 싶었다. 곱추 등에 걷는 모양이 어딘가 비현실적이었다. 아주 천천히 몸에 힘이 하나도 없이 기계적으로 보였다. 그건 그 생각대로 등골이 오싹한 일이었다.

  나는 눈이 마주칠까 무서워 이쪽으로 걸어오는 할머니를 마주치지 않도록 빨리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경비원에게 정신이 이상한 할머니가 돌아다닌다고 말이라도 해야 하나, 집이라도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별다른 조치는 취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나의 출근이 가장 걱정이었기 때문이다. 

  1년이 지나고 나는 할머니에 대한 이러저러한 사정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바로 옆집에 산다는 것, 주말에는 그 집이 평소와 다르게 사람들의 소리로 시끄러워진다는 것, 평일에 종종 그 집에서 찬송가가 흘러나온다는 것, 그녀가 특정한 아침시간에 그 복도를 걷는다는 등등이다. 

  그제야 나는 겨우 이런 추정을 할 수 있었다. 그녀는 혼자산다. 그녀는 주말에 그녀를 보러 오는 자식들(과 손자 손녀)이 있다. 그녀는 집에서 기독교 방송을 즐겨 듣는다. 그녀는 아침마다 아침 운동으로 복도를 걷는다. 또 그런 추정을 거치고 나서야 나는 그녀를 처음 마주친지 1년여 만에 눈인사를 할 수 있었다. 그 다음 마주쳤을 때는 소리를 내어 인사를 했다. 내가 한 처음이자 마지막 인사였다. 그게 몇 달전의 일이었다. 이후 나는 가끔 아침에 마주치던 그녀를 전혀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대신 그녀의 집 앞에 교회의 이름이 새겨진 깨진 시계를 봤다. 그러다 한 달 전쯤 토요일 새벽 세시에 그녀의 집에서 중년의 남녀가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 소란은 몇 시간동안 몇 차례씩 크고 작게 발작처럼 일어났다. 잠에서 깬 나는 그 소리에 뒤척이다 마지막 네시 삼십분이 넘어갈 때 여자의 우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잠이 들기 직전 아마 옆집 할머니가 더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중년 남녀는 분명 남매일테고, 재산배분 문제와 묻어뒀던 그동안의 원한과  원망을 차분히 청산하는 중일 것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지 않으셨다 해도 그녀의 상태는 어쨌든 나빠졌을 것이다. 며칠 뒤 출근 길에 문득 들여다 본 옆집은 텅 비어있었고 젊은 남자 두 명이 벽에 페인트를 칠하고 있었다.

  왜 스물한살의 내 동생의 죽음은 서글프고 조부모의 죽음은 그렇지 않을까. 상식적으로 말한다면 나이든 사람들은 그 나이만큼 삶은 누렸기 때문이다. 살만큼 살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게 답이 될 수 있을까.살만큼 살았다는 시간의 정의는 누가 내릴 수 있을까.
 우리는 나이가 든다고 우리 삶의 가치와 가능성, 혹은 존엄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다른 식으로 생각해본다. 아마 나는 조부모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운이 좋다면 인간은 누구나 늙어서 죽으니까 그 과정은 나중에 내가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단서가 많이 남아 있는 것이다. 혹은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단서는 소용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어쨌든 그렇기에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죽음이 덜 당혹스러웠던 것이 아닐까. 

  8월은 내가 태어난 달이다. 7년 전 내가 동생과 그의 마지막 한 달을 보낸 달이다. 나는 7년 전 동생과 함께하던 무덥던 정오를 떠올려본다. 분명 같이 있었는데 나는 어떤 단서도 찾을 수 없다. 그가 무슨 생각으로 하루 하루를 보냈는지, 다가오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밤마다 무슨 꿈을 꿨는지 찾을 수가 없다. 내가 하는 생각은 그저 하릴없는 생각들이다. 

  모든 인생은 비극으로 끝나는데 대체 그 비극은 왜 있는 걸까. 비극에는 가치가 있나, 의미가 있나, 아름다움이 있나, 아니면 이를 뛰어 넘는 다른 것이 있을까. 나는 알 수 없다.

  알 수가 없어서 매년 이맘때마다 나는 묻게 된다. 나이들어간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건 어느새 살아간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와 같은 얘기가 되어 간다. 

  어쨌든 나는 이 계절을 견뎌보기로 한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니 거실에 둔 나무의 키가 훌쩍 자라있었다. 나는 나무에 물을 주고 두 팔로 옆에 있는 남편을 몇 번씩 안아본다. 넷플렉스에서 보다가 만 드라마를 본다. 쇼미더머니 시즌 6의 놓친 클립을 찾아보기도 한다. 에어컨을 취침모드로 켜놓고 잠을 청한다. 그리고 당분간만이라도 모두가 안녕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