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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7-04 10:37
독재자 이승만의 동상을 철거하라!!
 글쓴이 : 인권연대
조회 : 654  
독재자 이승만의 동상을 철거하라!!

김종서(양심과인권-나무 공동대표, 배재대 공무원법학과 교수)

대전의 배재대학교에는 대학 교정 중 전국에서 유일하게, 대한민국의 초대대통령이었지만 국민에 의해 권좌에서 끌어내려진 독재자 이승만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1987년부터 두 차례의 철거가 진행됐지만 지난 2008년 다시 교정에 세워졌는데, 10년 만에 철거 운동이 재점화되고 있다. 언제 어떤 이유로 이승만의 동상이 배재대에 세워지게 된 걸까?
1차 건립은 1987년에 이루어졌다. 즉 1987년 2월 28일 오후 2시 지금의 대학의 자리에 학교 측이 3회 졸업생 명의로 동상을 세운 것이다. 그러나 1987년이 어떤 때인가? 6월항쟁 과정에서 학생들은, 학교에 독재자의 동상을 세워놓고 거리에서 독재타도를 외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며 동상 철거를 시도했다. 학생들은 동상을 철거하고 밧줄로 묶은 채 대전역까지 끌고갈 계획이었으나, 철거과정에서 교직원이 부상을 입으면서 이 계획은 무산되고 동상은 학교 지하 창고에 보관되었다. 
2차 건립은 1990년 초에 이루어졌다. 학교 측이 창고에 보관 중이던 동상을 다시 세운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이 계란과 페인트를 끼얹는 등 철거시위를 계속하자 1997년에 학교측이 자진철거하였다. 이로써 다시는 이승만의 동상이 세워지는 일은 없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웬 걸, 2008년 6월 5일, 배재대와 배재학당 총동창회가 ‘건국’ 60년을 기념한다며 개교기념식(배재대학교의 개교기념일은 6월 8일이다)을 겸해 일체의 의견 수렴과정을 생략한 채 기습적으로 다시 이승만 동상을 세웠다. 전국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로 끓어오르고 있을 때 배재대에서는 참으로 놀라운 반역사적 퇴행이 벌어졌던 것이다. 나는 일부 재학생 및 졸업생들과 함께 피켓팅을 하면서 반대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그 동상이 다시 세워진 지 벌써 10년이다.
그러면 구성원들이 계속해서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배재대 측에서 이승만 동상을 계속 다시 세우곤 했던 이유가 뭘까? 
1987년 동상을 세울 당시 학교 측은 ‘배재학당 출신으로 학교를 빛낸 인물’이라는 점을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을 맞은 2008년 3차 건립 때에는 '대한민국 건립을 주도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새롭게 조명하자'는 이유가 보태졌다. 아마도 이것이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승만 동상을 세 번이나 세웠던 의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사실 2008년 막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나섰으므로, 대학으로서는 이러한 정부 정책에 발맞춤으로써 정부로부터의 혜택이나 좋은 평가를 기대하고 동상 재건립을 시도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는 훨씬 더 심각한 의도가 이면에 숨겨져 있었던 것 같다. 2008년 세 번째 동상 건립을 추진할 당시 총장이었던 정순훈은 배재고등학교 출신으로 2003년 총장 취임 직후 ‘우남이승만연구회’를 조직하고 그 회장을 맡았으며, 그로부터 불과 1주일 후에는 ‘사단법인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의 이사가 된다. 그런 그가 5년 후에 배재대학교 총장이자 기념사업회 이사로서 이승만 동상 재건립을 추진했음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학교법인 배재학당의 현 이사장 역시 위 기념사업회의 현직 이사이다. 왜 배재대학교, 아니 학교법인 배재학당이 그토록 이 동상 건립에 집착하는지 이유를 알만하다. 사실 배재학당에서 운영하는 배재고등학교에는 이미 1984년부터 이승만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배재고등학교 출신이 주축이 된 학교법인 배재학당이, 엄청난 허물에도 불구하고 자교 출신으로 초대대통령이 되었던 이승만의 동상을 세우고자 했던 이기적 욕구와는 별개로, 이승만의 재평가와 우상화는 보수 정부가 들어서면서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던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왜 계속 독재자에 대한 재평가 목소리가 나오는 것일까?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제기되었던 이승만의 우상화, 그리고 이를 위한 재평가 주장에는 매우 위험한, 그리고 반헌법적인 배경이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백년전쟁>이란 다큐멘터리가 그 핵심을 보여주고 있다. ‘친일파들이 친일 흔적을 영원히 지워버리기 위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 이승만 우상화와 재평가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즉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 전문의 규정을 부정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건국은 오로지 해방 후의 일, 즉 1948년 대한민국 단독정부의 수립이 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 중심에 이승만이 있는 것이다.
이승만의 우상화에서 빠지지 않는 부분이 바로 ‘건국’ 대통령인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기념사업회의 명칭에도 ‘건국대통령’이 들어가 있는 것이 이를 웅변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승만 자신은 수차례에 걸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이 건국시점임을 밝힌 바 있지만(이건 아마도 자기가 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냈기 때문일 거라고 추측된다), 이승만을 우상화하려는 세력은 1948년 대한민국정부 수립을 바로 ‘건국’으로 기정사실화함으로써 1948년 이전의 역사를 지우고자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이승만보다 훨씬 더 위험하며, 배재대의 2008년 세 번째 동상 건립과 이명박 정부의 ‘건국 60년’ 사업이 맞아떨어진 것은 참으로 우려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내년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되는 해인만큼, 이제 더 이상 동상 철거를 미룰 수 없음은 너무나도 명백하다. 그것이 대전의 50개 시민사회단체들이 10년만에 철거운동에 나선 이유이다. 
독재자 이승만의 동상을 철거하기 위해 대전의 5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나서면서 <이승만 동상 철거 공동행동>이 결성되었다. 이들의 첫 기자회견은 이승만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4.19혁명 68주년이 되는 날 열렸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일이 도도한 시대정신이 되고 있는 이 때, 친일파 청산을 무력화하고 100만의 민간인 학살을 지시했으며 자신의 야욕을 위하여 헌법파괴를 서슴지 않은 독재자의 동상이, 4.19의 도화선이 된 ‘3.8 의거’가 일어난 대전의 대학에 버젓이 서 있도록 방치할 수는 없다는 데 대전의 시민사회단체들이 뜻을 모았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내년이면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이 되는 이 때 말이다. 특히 동상이 다시 세워졌던 2008년과는 달리 이번에는 배재대학교의 교수, 학생과 동문은 물론 50개 시민사회단체까지 나서게 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재대학교는 한마디로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첫 기자회견 직후 동상 철거를 요구하는 총장 면담 요청 공문을 보냈으나 면담은 거절되었고 두달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 연락이 없다. 대학 측은 철거 여부에 대한 의견을 밝히기보다 애써 못 본 척 못 들은 척하며 여론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학생을 먼저 생각하는 대학”을 표방하는 배재대학교가(이런 표지석이 대학 구내에 있다), 헌정유린의 독재자이자 민간인 학살자이면서 민족적 과제인 친일파 청산을 무산시킨 장본인의 동상을 무슨 자랑이라도 되는 양 세워놓고 학생들로 하여금 매일 그 앞을 지나가게 하는 것이, 과연 ‘학생을 먼저 생각하는 대학’이 할 짓일까? 매일 저 동상을 바라봐야 하는 학생들이 배재대학교를 자랑스러워할까, 수치스러워할까? 진리탐구의 장인 대학에서는 모든 우상은 파괴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상의 존재 자체는 진리를 찾는데 결정적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배재대가 스스로를 대학이라고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그리고 학생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대학이라면, 배재대는 독재자의 저 동상을 당장 철거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독재자 이승만의 과오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생각해 보자. 나는 이승만이 최소한 세 가지의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범했다고 생각한다. 과오라기보다는 차라리 범죄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첫째, 자신의 정권 유지와 연장을 위하여, 식민지에서 해방된 민족의 염원을 안고 출범했던 반민특위를, 청산대상이었던 친일경찰을 중용하여 와해시킴으로써 친일파 청산이라는 민족적 과제를 무산시킨 장본인이 이승만이다. 이것은 민족반역자의 행위에 버금가는 죄악이다. 결국 이승만의 이 죄악으로 인하여 해방 후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친일청산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친일파와 그 후손들은 여전히 각계의 요직을 대물림해 오고 있다.
둘째, 한국전쟁기를 전후하여 100만명에 달하는 민간인에게 부역자,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어 자국의 군대와 경찰 등에게 이들을 학살하도록 지시한 장본인이 이승만이다. 이는 말 그대로 집단학살, 제노사이드에 해당하는 것이다. 국제법상으로는 공소시효도 적용되지 않는 반인권적 범죄인 것이다. 더구나 이 범죄는 자국민을 상대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보다도 더 극악무도한 학살자가 이승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셋째, 오로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집권 연장 더 나아가 영구집권을 위해 발췌개헌, 사사오입개헌 등으로 헌법을 누더기로 만들어버린 것 역시 이승만이었다. 특히 헌법을 전공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이러한 헌법파괴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최악의 범죄가 아닐 수 없다. 특히 한국전쟁 중 임시수도로 피난 가 있던 1952년에도 재선을 위한 발췌개헌을 시도할 만큼, 권력욕을 위해서는 헌법조차 가차없이 유린해 버릴 수 있는 독재자요 반민주주의자가 바로 이승만이다. 불행하게도 이승만의 이런 작태는 헌정사에서 더욱 참혹한 비극이 되었던 박정희 유신독재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즉 독재자 이승만은 또 다른 독재자 박정희의 롤 모델이었다. 한국 헌정사의 너무나 큰 비극이 바로 이승만에 의해 잉태되고 자행되었던 것이다.
혹자는 이승만의 공과를 이야기하지만, 앞서 말한 세 가지 범죄를 포함하여 그가 저지른 과오들은 어떤 공으로도 덮을 수 없는 것이다. 국정을 농단하고 헌정을 유린한 독재자를 파면하고 감옥에 보냈던 우리 촛불시민들이 더 이상 이런 범죄자, 학살자, 독재자의 동상을 두고 볼 수는 없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