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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1-24 09:13
인권과 민주주의: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기
 글쓴이 : 인권연대
조회 : 446  
인권과 민주주의: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기

강수돌(고려대 교수)

  사례1: 아파트 단지 등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단거주 지역에 적용되는 법으로 ‘공동주택관리법’이 있다. 벽이나 복도 등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집합 주택에 관한 법률이다. 아파트 입주자 등이 경비원을 상대로 이른바 ‘갑질’을 하지 못하게 한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이 시행(2017. 9. 22.)되었으나 별 효과가 없다고 한다. 그 핵심 내용은 입주자나 입주자대표회의, 관리사무소 등이 감시, 단속적 업무를 하는 경비원들에게 경비 업무 외에 부당한 지시를 하거나 명령을 내릴 수 없게 한 것이다. 그 이전에 입주자 등이 경비원에게 경비 외에 주차관리나 개인 심부름 등 허드렛일을 많이 시켜 이들의 인권을 침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비원 인권 내지 노동권 보호 차원에서 만들어진 법률은 그 실효성을 발휘하기는커녕 오히려 경비원의 고용을 불안하게 하는 역설이 발생한다. 대표적으로, 서울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원 94명이 입주자대표회의로부터 “1월 31일부 해고”라는 해고예고통지서를 받았다. 입주자 대표회의의 취지는 “경비 업무의 전문적 관리”와 “최저임금 인상 등”의 문제를 들며 용역회사를 통해 재고용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경비 업무의 전문적 관리”란 경비원들에게 더 이상 ‘갑질’을 할 수 없게 되자 용역 회사 직원으로 격하하겠다는 말이고, “최저임금 인상”이란 월 관리비 부담이 인상되는 것을 수용하지 못하겠다는 말이다. 결론은 해고다. 추운 날씨보다 더 냉정한 현실이다.

  사례2: 2018년 1월부터 시급 7530원의 최저임금이 시행되고 있다. 편의점 알바나 이주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아파트 경비원들도 최저임금을 받는다. 입법 취지로 보면 사회적으로 저임금 계층에 드는 이들의 월 소득을 올려줘야 이들의 생활이 개선되고 경제 전반적으로도 소비의 활성화와 더불어 ‘소득 주도 성장’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소득 주도 성장 논리의 문제점이나 한계는 논외로 하더라도, 지금까지 저임금, 장시간, 무권리 노동을 핵심으로 하는 개발독재 시절의 패러다임을 극복하려는 시도는 매우 소중하다. 이런 의미를 갖는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그 원래의 취지를 교묘히 피해나가는 ‘약삭빠른’ 시도들이 많이 나온다. 일례로, 서울의 여러 아파트 단지들에서는 경비원들의 ‘휴게 시간’을 억지로 늘려, 그 시간에는 노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급료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근로기준법 상의 허점을 악용한다. 실제로, 경비노동자 A씨는 2018년 1월 1일 갑작스럽게 “휴게시간이 늘어났다.”는 입주자대표회의의 통지문을 받았다. 형식상 휴게시간이 기존의 9시간에서 10시간 30분으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비원들은 휴게시간이 길든 짧든 사실상 편하게 쉴 수 없다는 게 현실이다. 입주민들의 주차 문제나 택배 배달 등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언제든 뛰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입주민들이 무거운 짐이나 시장바구니 등을 들고 들어올 때”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하는 경비원 자신도 마음이 좋지 않을 것이다. 또 그렇게 “도와주는” 경비원들에 대해 입주민이 한 가족처럼 아껴주고 감사해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 이렇게 상호 인간적으로 접근하면 큰 문제가 없지만, 월 관리비 인상이라는 돈 몇 푼 때문에 꼼수를 부리거나 해고하려는 시도는 모두를 슬프게 한다. 

  사례3: 이와 같이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활 안정은 물론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의 구현을 위한 최저임금 인상이 전국 대학의 청소노동자들까지 해고로 내몰고 있다. 2017년 12월 29일 홍익대학교 청소노동자 4명은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받았다. 기존에 5년 동안 홍대 청소업무를 담당하던 용역 업체가 새해 들어 바뀌었는데, 홍대 측이 새 업체와 계약을 맺으면서 인문사회관 D동과 사회교육관 건물은 입찰에서 제외했다. 두 건물에서 일하던 4명의 노동자는 고용 승계가 되지 않아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울산대도 마찬가지다. 청소노동자 노조 이미자 분회장은 “울산대는 올해 정년퇴직한 청소노동자 2명의 자리를 시간제 알바로 대체하기로 했다.”고 하며 “울산대는 단체협약에 명시된 하루 8시간 노동을 일방적으로 7시간으로 단축하고, 휴일근무도 대폭 줄이려 한다.”고 했다. 그 결과 “청소노동자들 노동 강도는 세어지면서도 월급은 20만 원가량 줄어든다.”고 한다. 서울의 연세대나 고려대에서도 마찬가지다. 연세대에선 32명의 정년퇴직 노동자 중 1명만 동일한 조건으로 고용됐을 뿐, 나머지 31명의 자리는 채워지지 않거나 파트타임 노동자가 대신한다. 고려대에서도 10명의 정년퇴직 노동자 자리가 전부 파트타임 노동자로 대체됐다. 이 모두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편법”이라는 지적이 많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우선은 법의 시행을 엄격히 하고 각종 편법, 불법, 탈법을 확실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 일벌백계의 정신으로 법 집행을 확실히 하면서도 일관성을 유지하면 확실히 ‘꼼수’ 해법들이 줄어들 것이다. 구미 각국의 선진국에서 비교적 준법 의식이 높은 것은 그 결과라 본다. 따라서 최저임금 인상을 회피하기 위해 유급 노동시간을 줄이거나 부당해고 압력을 가하는 것은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 정부가 노력할 일로, 특히 노동부 산하 근로감독관들을 보다 많이 확충하여, 일차적으로는 자율적 준법을 선도하되, 이차적으로 엄정한 법 집행을 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법, 제도 자체를 개선할 필요도 있다. 경비원이나 운전기사 등은 근로기준법상 ‘감시·단속적 근로자’ 범주에 속하는데, 공장 노동자처럼 생산직도 아니고 하루 종일 일하는 연속적 노동자도 아니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휴일·휴게·연장근로 등에 관한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 그런데 특히 아파트 경비원들의 경우, 불충분한 취침과 휴식, 장시간 근로 및 운동 부족으로 건강 침해가 심한 편이다. 입주민이나 입주자 대표들로부터의 ‘갑질’은 물론 인격 침해를 당하기도 한다. 이런 현실을 반영한 법, 제도적 개선이 절실하다. 지방의회 및 국회가 앞장서야 하는 부분이다. 지자체도 나설 수 있다. 일례로, 광주 북구 구청은 일곡동 대림1차 아파트와 운암동 현대아파트 등 6곳과 ‘아름다운 이웃 행복한 아파트 공동체 조성 아파트 경비노동자 처우개선 협약식’을 맺었다. 일자리를 잃을 뻔 했던 아파트 경비원을 해고하지 않으려고 가구당 관리비 부담을 감수하거나 경비원 휴게 공간을 개선해 주었다. 

  끝으로, 삶의 현실을 돈이나 권리의 잣대로 보는 시각을 넘어 인간적 도리의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특히,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이를 같은 인간의 입장에서 함께 풀어내는 전향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타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 민주주의의 기초를 이룬다. 일례로, 서울 성북구청은 민주적인 구청장의 리더십 아래 아파트 주민의 경비원 고용 보장을 위한 ‘동행(同幸) 프로젝트’를 실시 중이다. 현재 성북구는 124개 단지 공동주택에서 880여명의 경비원이 근무하고 있는데, 연령대는 60~70대가 93%로 대부분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동행 프로젝트’를 통해 사실상 고용을 보장받았다. 2017년 10월 당시, 성북구 내 116개 아파트 단지 중 57곳이 동행 계약서를 체결했다. 여태껏 경비원에 대한 부당 해고는 한 건도 없다. 성북구 석관동의 어느 입주자 대표 S씨는 입주민들이 힘을 모아 최대한 전기를 절약하고 전기세 계약 체계까지 전환함으로써 관리비 1억 원을 절약하는 대신 경비원 고용 안정 및 임금 보장을 이뤄냈다. 구로구에서도 한 아파트 주민들도 2017년 8월 18일 안내문을 통해 “(우리는) 뉴스에 나오는 파렴치한 아파트는 되지 말자.”며 “2018년 1월(에도) 현재와 같이 휴게시간을 동결하고 고용을 보장하며 최저임금을 적용하도록 의결하겠다.”고 밝힘으로써 감동을 주었다.  갈수록 우리는 정신에서부터 돈과 권력을 중시하는 속물주의에 물드는 한편, 소비세계에서는 내 돈을 낸 이상의 가치를 획득해야 한다는 ‘가성비 의식’을 강하게 내면화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이것은 일본의 우치다 다츠루 선생이 <하류지향>에서 말한 ‘등가법칙’이다. 내가 내는 돈과 동등한 (아니, 실은 그 이상의) 가치를 얻고자 하는 강렬한 심리가 작동한다. 어쩌면 이는 자본이 노동을 고용한 대가로 주는 임금 이상의 노동을 실제로 강요하는 ‘착취법칙’과 동전의 양면인지 모른다. 자본이 돈을 매개로 노동과 자연을 착취하듯, 소비자는 돈을 매개로 노동자를 착취한다. “내가 돈 주고 샀는데, 네가 뭔 소리냐?” “내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지 마라.” 이런 식이다. 이른바 ‘갑질’의 심리적 메커니즘이다. 온 사회가 이런 심리로 뒤덮일수록 ‘강자-약자 관계’ 또는 ‘우-열관계’가 사회적으로 강화한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서로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트라우마 사회’가 된다. 가난하던 시절보다 풍요의 시절이 될수록 속물주의의 확산으로 더 그렇게 된다. 상처받은 개인들은 그런 트라우마 사회 자체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갖기 보나는 오히려 ‘강자 동일시’를 하면서 스스로 강자가 되고자 한다. 약자조차 강자 편에 붙어 살아남으려 하고, 동시에 자기보다 약자로 보이는 자에게 군림하려 든다. 이 모든 사태는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방향이다. 오히려 자본주의적 착취와 권위주의적 억압의 온상일 뿐이다. 따라서, 새로운 출발점은 타자의 고통에 보다 민감해지는 것, 그를 넘어 그들과 적극 공감하고 연대하는 것이다. 무수한 타자들, 그들의 노동(고통)이 없다면 나 자신의 삶도 결국은 위태로워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