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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9-19 21:32
잘 나가던 지점장의 자살, 무엇이 문제인가?
 글쓴이 : 인권연대
조회 : 95  
잘 나가던 지점장의 자살, 무엇이 문제인가?

강수돌(고려대 교수)

  “오늘이 회사가 지정한 해촉(계약 해지) 마지막 날이네요. (…) 37세의 나이에 입사해 59세가 됐으니 청춘을 온전히 푸르덴셜과 함께 한 삶이었네요. 긴 세월이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참으로 빠른 세월을 살아온 것 같아 열심히 살았다는 방증이므로 저 자신에게도 위로를 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2017년 9월 5일 회사 건물 21층에서 투신자살한 푸르덴셜 생명 OO지점장 양모씨가 불과 1주일 전, 8월 말에 회사 내부게시판에 올렸던 글이다. 그는 1995년에 입사해 성실히 일한 결과 2001년부터 지점장으로 일해 왔다. 이른바 ‘잘 나가던’ 회사원이었다. 그런데 회사가 8월 말로 계약 해지를 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 핵심은 실적 평가였다. 8월초에 나온, 2017년 상반기 영업 실적에 대한 평가 결과가 낮았던 것이다. 6개월마다 한 번씩 이뤄지는 각 지점별 실적 평가에서 실적이 낮으면 지점장 계약 관계가 해지된다. 박근혜 정부 당시 노동법 개정 관련 내용 중에 ‘저성과자 해고’가 들어 있었는데, 문재인 정부에서 사실상 노동법 개정이 어려운 상황임에도 노동 현장에서는 저성과자 해고 조치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물론, 그 실적 평가가 얼마나 공정하고 객관적인가 하는 문제는 늘 논란거리다. 하지만, 많은 연구자들이 우려하듯, 노조원이나 내부고발자 등 ‘사장의 눈 밖에 난’ 사람들은 능력과 성과가 훌륭함에도 낮은 평가를 받기 쉽다. 양씨 역시 바로 그런 경우다.

  양씨의 위 사내게시판 글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제가 지난번 제기한 두 가지, 1. (부당 조치로 해촉시킨) 당사자의 진정한 사과와 퇴진, 2. OO지점의 존속, 다 해결되지 않았기에 책임 규명은 계속 할 것입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우리는 양씨가 회사로부터 부당한 인사평가와 부당한 조치로 해고 위기에 내몰렸으며 심지어 회사는 그가 일하던 OO지점마저 폐쇄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그가 부당한 평가를 받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는 자신이 일하던 지점에서 노동법상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되는 보험설계사의 법적 지위를 보장해 회사가 쉬운 해고를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백방으로 알리고 다니는 중이었다. 보험회사의 지점장이긴 하지만, 그 의식은 거의 노동조합 활동가 수준이었다. 22년 동안 근무해 온 보험회사에서 지점장으로까지 승승장구한 조직인 내지 회사인이지만, 그는 결코 한 인간으로서의 양심과 양식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돈벌이를 지상 최고의 목적으로 삼는 자본주의 기업은 인간적 양심과 책임성 있는 행동을 곱게 보지 않는다. 게다가 ‘입바른’ 소리를 잘 하던 양씨는 2016년에도 본사 고위 임원에게 ‘찍혀’ 해촉을 당할 뻔 했다. 그러던 차에 실적 평가의 두 기준인 생산성(영업 실적) 및 리크루팅(채용 실적) 중, (생산성은 회사 평균 수준을 웃돌았으나) 리크루팅 부분에서 합격기준 70점을 1.7점 밑돌았다. 리크루팅, 즉 신입 보험설계사를 뽑는 것도 지점장의 실적 평가에 있어 중요한 요소인데, 양씨의 OO지점에서 신입 보험설계사를 뽑아 본사에 최종 면접으로 올려 보낼 때마다 다 불합격했다. OO지점의 리크루팅 점수가 최 하위권이었던 배경이다.

 

  이를 두고 양 씨는, “16년 동안 지점장을 해 왔는데 해당 본부장이 지점 평가를 무시하고, 3명의 후보자를 연달아 최종면접에서 탈락시킨 예를 본 적이 없어 더욱 황당하다.”며 “3명 중 1명이라도 5월이나 6월 입사가 결정됐다면, 지점 평가는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양씨는 실적 평가에서 낮은 평가를 받았고, 회사는 이를 근거로 양씨의 지점장 위촉을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렵다며 해촉을 통보했다. 사실상의 해고였다.

  이에 양씨는 순종을 거부하고 회사가 부당한 조치로 실적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주어 자신을 해촉했다며 사태의 시정을 요구해왔다. 회사에 내용증명서를 보냈고, 회사 내부게시판에도 두 번이나 글을 써 이 문제를 조직 구성원 모두에게 알리려 노력했다. 동시에 사장에게 여러 차례 면담을 요청했다. 그러나 한 번도 성사되지 않았다. 양씨를 잘 아는 사람에 따르면, 작년에도 당할 뻔 했는데, 이번에는 의도적으로 ‘당한 것’이라 한다.

  양씨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일이 본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과거에도 이런 문제가 반복적으로 자행돼왔고, 앞으로도 똑같은 문제를 겪게 될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회사의 잘못을 제대로 짚고 넘어가기로 결심했다. 회사 임원들 마음대로 평가 기준이나 시기 등을 바꿔 직원을 해고하는 상황을 계속해서 두고 볼 수는 없다는 마음이었다. 실제로, 그는 같은 날 해촉 당한 동료 A씨와 함께 ‘퇴직금 반환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양씨는 OO지점장이었음에도 실제로는 회사의 관리 직원에 불과하니, 부당한 해고도 문제지만, 만약 퇴직 시엔 당연히 퇴직금도 받아야 한다고 보았다. 자신은 회사와 형식상 ‘계약직’인 개인사업자로서 ‘계약 해지’를 당했지만, 실은 퇴직금을 받아야 한다고 보았다. 실질적으로는 지점장으로서 회사 내부의 관리직 역할을 해왔고, 고정급 성격의 수당까지 받았기 때문에, 본사 직원들과 동일한 ‘노동자’ 지위를 지닌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일반 보험설계사들조차 마치 독립된 사업자인 것처럼 취급할 것이 아니라 사실상 보험회사 영업직원이기 때문에 (특수고용이라 애매하게 말하지 말고) 확실히 ‘노동자’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고 보았다.

  물론 보험사마다 다르지만, 대부분의 보험사는 본사 직원을 지점장으로 보내 보험설계사들을 관리한다. 이 경우, 지점장은 당연히 관리직 직원이며 노동법상 노동자(근로자) 지위를 갖는다. 그러나 푸르덴셜생명사의 경우 1990년대 후반부터 지점장들을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바꿨다.

  이런 맥락에서 양씨와 그 동료는 변호사와 함께 이러한 내용을 골자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었다. 양씨가 투신한 9월 5일은 이들이 서로 만나 소송 자료를 최종 검토하기로 한 날이었다. 바로 그날 양씨는 마지막으로 사장을 만나러 본사 21층까지 올라갔으나 또다시 좌절감을 맛보았다. 사내게시판에 위 글을 올린 5일 뒤였다. 그러나 고위 임원만이 그를 형식적으로 응대했을 뿐, 사장과의 면담은 또다시 거절당했다. 마지막 희망의 고리가 차단되자, 양 씨는 그날 오후 1시 19분쯤 회사 건물에서 지인과 가족들에게 이름과 연락처 등이 적힌 쪽지 한 장을 사진으로 찍어 보낸 뒤 투신자살하고 말았다. 극도의 억울함을 도무지 견길 수 없었던 탓이다. 그의 자살은 결코 나약한 자아 때문이 아니라 회사의 부당한 처우에 대한 최후의 저항이었다. 양씨의 자살을 사회적(또는 기업적) 타살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근거다.

  이에 대한 회사의 초기 대응은 전형적인 부인(denial) 전략으로 일관했다. 양씨가 숨진 당일, 해당 총괄본부장은 OO지점 지점장과 부지점장에 “동요하지 말고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하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다음 날에는 전략 발표 자료를 빨리 제출하라고 닦달했다.  

  반면, 양씨의 외침은 각 지점장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 이전에 양씨가 회사의 부당함을 알리고자 사내게시판 등에 열심히 글을 쓸 때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 이후 동료 지점장들은 회사의 실적 평가 문제 등을 공동으로 논의하기 위해 소통하기 시작했다.

 

  한 보험설계사에 따르면, “언제부터 푸르덴셜에는 듣는 사람이 없으니 말하기도 어려워졌다”고 한다. 소통 부재가 조직 문화를 지배하고 있었던 셈이다. 특히, “내부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 글을 내리라 전화가 오고, 댓글을 달면 댓글을 지우라고 하는, 이상한 푸르덴셜이 우리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오직 이 회사만 그럴까? 돈벌이를 맹신하는 조직은 그 구성원들을 오로지 돈벌이 기계 내지 그 부속품으로 만들어간다. 그 와중에 사람들은 나름의 소망과 느낌, 감정과 의견을 내적으로 억압한 채 오로지 생산성과 수익성의 지표만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감정이 죽어 있으면 사람은 제대로 살아 있는 게 아니다. 살아 있는 송장, 즉 좀비(Zombie)일 뿐이다.

  전국의 지점장들이 소통하고 연대의 움직임을 보이자 마침내 회사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태가 예사롭지 않음을 감지한 커티스 장 푸르덴셜생명 대표는 직원들에게 사과문을 통해 “회사 내부 감사를 통해 이번 사고가 발생하게 된 경위에 대한 진상조사를 객관적이고 진실되게 진행할 것”이라 밝혔다. 또 진상 조사와는 별도로, 해당 총괄본부장과 본부장이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스스로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기로 해 대기발령 상태로 되었다.

  과연 회사가 양씨의 죽음에 진심으로 사죄하며 양씨의 요구대로 모든 것을 정상으로 돌릴지, 아니면 그렇게 하는 척만 하고 말 것인지는, 지점장들의 집단대응 및 민주노조 진영이나 시민운동 진영, 그리고 언론 및 관계 당국의 사회적 대응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떠하건 우리는 바로 이 사건에서도 몇 가지 교훈을 얻는다.

  첫째, 양씨의 경우처럼 아무리 성실히 일하고 높은 성과를 내더라도 일단 한두 번 상사에 ‘찍힌’ 경우 ‘고의로’ 해고당할 위험성은 상존한다. 따라서 사회적 차원에서는 내부고발자 내지 양심적 비판자에 대한 법적 보호가 더욱 확실히 이뤄져야 하고, 기업의 차원에서는 내부 고발 내지 양심적 비판을 자연스런 조직문화로 받아들이는 경영 민주화가 이뤄져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라도 기업 조직의 모든 구성원들은 ‘자발적 복종’의 문화가 아니라 ‘건강한 비판’의 문화를 조직문화로 구축하는 일에 사명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것이 개인도, 기업도, 사회도 모두 잘 되는 길이다.

  둘째, 양씨를 자살로 몰고 간 보험회사 사례처럼 기업들이 그 직원들로 하여금 형식적으로는 자살이지만 ‘사실상 타살’을 행한 혐의가 짙을 때는 영국에서 행하고 있는 ‘기업살인법’을 도입하고 적용할 것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영국은 2007년 ‘기업 과실치사 및 살인법’을 제정해 2008년부터 기업 등이 ‘주의 의무’를 위반해 노동자가 숨지면, 이를 범죄로 규정하고 ‘상한이 없는’ 벌금을 부과한다. 기존에는 안전보건 담당자나 경영진의 부주의와 범죄 의도를 밝혀야 책임을 물었지만, 기업살인법에서는 기업 등의 ‘부주의’가 밝혀지기만 해도 처벌이 가능하다. 결국 상당한 정도의 경제적 압박과 사회적 낙인을 통해 기업이 안전 의무를 강화하도록 강제한 것이다. 이 법이 시행된 2008년 이후 영국의 산재 사망률이 줄어든 것은 시사적이다.

  셋째, 한국 회사건 외국 회사건 돈벌이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 한, 일하는 사람들의 헌법상 가치인 인간 존엄성이 부단히 침해받는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일하는 사람들의 단결과 연대(노동3권)는 인간 존엄성을 수호하기 위한 권리이자 의무이다. 헌법 33조의 단결권, 교섭권, 행동권 등 노동3권이란, 다른 각도에서 보면 부당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을 권리와 의무이기도 하다. 외면하지 않을 용기가 절실하다.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노동자와 일반 시민 모두는 이 점을 한시라도 잊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