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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9-05 22:09
인간의 존엄사란 무엇일까?
 글쓴이 : 인권연대
조회 : 433  

인간의 존엄사란 무엇일까?


                                                          양해림(충남대 철학과 교수)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존엄성을 갖는다. 이 존엄성에 따라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권리를 갖는다.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권리이듯이, 죽는 것도 인간의 권리이자 본인의 자유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찾아온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음의 고통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죽음의 순간에 고통 받지 않고 편안히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이야 말로 인간의 커다란 소망중 하나일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산소호흡기와 같은 현대적 의학시설에 의존하여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과연 행복한 삶일까? 아니면 매일 고통 받는 말기 암환자들이나 불치병에 걸린 중병의 환자들이 죽음보다 더하는 통증을 견뎌가면서 약물에 의존하며 온몸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면서 사는 것이 과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일까?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산다면, 과연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회복될 확률은 거의 0%에 가까운데도 산소 호흡기와 약물에 의존하면서 사는 것이 과연 인간의 진정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회복 가능성이 없는 상태의 환자를 환자의 의견에 따라 인간다운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것을 존엄사(death with dignity)라 부르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인간의 존엄사란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죽을 수 있게 하는 행위나 그런 견해를 일컫는다. 그래서 의사는 환자의 동의 없이는 원칙적으로 치료 행위를 할 수 없다는 것으로서 소극적(간접적) 안락사(euthanasia)라고도 부른다. 여기서 안락사는 어원적으로‘수월한 죽음(an easy death)’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치유될 수 없는 질병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의사들이 보여주는 안락사에 대한 도덕적 태도는 적극적/소극적 구별에 방향에 맞추어 왔다. 그에 따라 죽어가는 생명을 연장하지 않는 것이 도덕적으로 허용하지만, 죽어가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살해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안락사에 대한 적극적/소극적 구별에 대한 논의는 지난 1980년에 미국의 철학자 제임스 레이첼스의 논문을 통해 제기되었지만, 그 찬반논의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환자를 아름답고 고통 없게 죽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야 말로 인간다움을 지키게 해줄 수 있는 일 중 일부이기 때문에 소극적 안락사는 허용되어야 한다는 웰 다잉(잘 죽은 것:well-dying)의 관점이 탄력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런 여러 가지 상황들을 살펴보았을 때,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소극적 안락사는 허용될 수 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자유의지가 있다. 자신이 한 행위에 책임을 진다는 전제하에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행동을 자신의 판단에 따라서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예컨대 환자가 극심한 고통 때문에 혹은 더 이상 희망이 없어서 라는 등의 이유로 소극적 안락사를 선택했다면, 주변인들은 존엄성을 지닌 한 사람의 인간이 자유의지로 내린 판단이므로 존중해 주어야 한다. 종교적 이유 등으로 이를 막으려는 것은 환자의 의견을 무시하여 누구나 갖고 있는 자유의지를 침해하는 행위이며, 자신의 가치관을 상대에게 무조건 강요하는 자비를 가장한 폭력일 수 있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비참한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고통 속에 있는 환자가 죽을 때까지 신음하는 모습을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에게 보이면서 생을 마감하고 싶을까? 또한 그 환자는 죽기 직전까지 그 고통을 받으며 죽어가고 싶을까? 죽음직전에 이르기까지 받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소극적 안락사를 시켜줌으로써 환자는 편안히 그리고 아름답게 생을 마감할 수 있다. 즉,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켜가면서 죽는 가장 이상적인 죽음을 맞을 수 있다.

 환자가 오래 동안 앓는다면, 남은 가족들도 그 환자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해야 한다. 심리적 고통 뿐 만 아니라, 그 환자에게 들어가는 적지 않은 치료비와 의료진의 비용들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렇게 시간이 계속 흐른다면, 가족들에게 금전적 부담이 가정경제에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고, 그 가족들의 생활에도 많은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소극적 안락사를 시킴으로써 금전적 문제를 줄임으로써 남은 가족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 수도 있다.

 만약에 존엄사를 수용한 환자들이 본인이나 가족들에게 장기기증 문제에 대해 수락을 했다면, 그들이 소극적 안락사를 당함으로써 그들의 장기가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 될 수 있다. 결국, 장기기증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이점을 지니고 있다.

 모든 사람들의 운명은 자신들의 손에 달린 것이다.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병으로 인해 육체적 심리적으로 매우 고통을 받고 있는 상태라면,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 환자가 소극적 안락사를 원한다면, 무조건 안 된다고 하지 말고 허용해 줄 수 있도록 고려해 보아야 한다. 그것은 그 환자 본인의 삶이며 죽음이고 스스로 결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존엄사를 하는 것은 사람이 최소한 편안하게 죽을 권리이다. 인공호흡기를 비롯해 생명유지 장치에 의존해 생명을 연장하는 그들의 삶은 과연 행복하기만 할까? 죽지 못해 살고 있는 그런 그들의 목숨을 생명은 소중하다는 이유를 내새워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빼앗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일 수 있다. 또한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를 보며 같이 고통스러워 할 가족과 그를 보살펴야 할 시간과 노력, 치료가 불가능 함에도 불구하고 치료비와 병원비의 부담은 너무나도 크다.

 소극적 안락사를 하는 것에 도와준 의사는 살인 행위라고 말할 수 있지만, 살인이란 당사자가 죽음을 원치 않는데 강제적으로 목숨을 빼앗아가는 행위이다. 본인이 간절하게 원하고 가족의 동의가 있다면, 그것은 살인행위가 아니라 환자의 안식을 도와준 '수단'이라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죽음보다도 더 괴로운 삶, 그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위로의 편지? 불우 이웃 돕기 운동으로 모은 성금? 생을 인간답게 마무리 짓고 가족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안락사. 그것이 최후의 선물 일 수 있다.

 여기서 인간의 생명은 신 이외에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고,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일은 정당화 될 수 없다. 하지만 소극적 안락사는 살인행위이라고 하기 보다는 한 사람의 안식을 돕는 행위라고 생각 할 수 있다. 한 생명은 중요하지만, 그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 역시 그 사람의 삶과 생명을 존중하는 일이며 때에 따라 필요할 수도 있다. 또 인공호흡기를 비롯한 기계에 의존해 생명을 연장시키는 일 역시 자연의 섭리를 벗어나는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