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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인권이야기는

지역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인권현안에 대한 이상재 사무국장의 칼럼을 소개합니다.

어느 주말 밤 이야기

작성자대전충남인권연대 작성일19-04-11 13:30  |  720 읽음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지난 11월의 어느 주말에 있었던 일이다.

촛불집회에 가고 싶다는 중학교 2학년 딸아이를 데리고 부부가 함께 서울 광화문에 다녀왔다. 딸아이도 그랬겠지만, 꽤 오랫동안 집회에 나가봤던 우리 부부조차도 그렇게 많은 집회 군중은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박근혜 정부와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에 분노해서 거리에 나왔음에도 대개의 시민들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수많은 사람을 확인한 안도감인지, 아니면 흥겨운 집회 분위기에서 오는 승리감인지 모를 밝은 표정들 일색이었다.

버스를 타고 자정이 넘어 집에 도착했지만, 그냥 자기에는 집회에서의 흥분이 잘 가시지 않았다.

치과 진료차 집에 오셨다가 막내 아이를 봐주고 계시던 장모님도 고생했다며 가볍게 맥주 한잔을 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가 광화문 광장에 있었던 세월호 농성장에까지 이르렀을 즈음 아내가 장모님께 조금은 느닷없는 질문을 했다.

“엄마, 엄마는 아직도 죽은 언니와 오빠가 자주 생각나?”

이 질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처가의 아픈 가족사를 꺼내야만 한다. 아내가 아주 어렸을 때 처가에 불이 나서 아내의 오빠와 언니가 저세상으로 가는 슬픈 일이 있었다고 한다.

가족에게는 엄청나게 큰 사고였지만 당시에 아내는 너무 어려 기억이 전혀 없어서 그런지 연애 시절에도 나에게 비교적 담담하게 이야기를 해 준 사건이었다.

그날도 장모님은 세월호 사고 희생자 부모들의 이야기 끝에 나온 아내의 그 질문을 덤덤하게 듣고 있었다.

장모님은 대답하셨다.

“그럼 항상 생각하지. 성당 갈 때마다 너희 부부와 손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지만 먼저 간 그 아이들을 위해서도 늘 기도한단다.”

40여 년이 흐른 세월 속에서도 먼저 간 처남과 처형을 위해 항상 기도하신다는 말씀이 무겁게 마음에 와 닿았다. 그리고 또 장모님은 말씀하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큰길로 못 다녔어. 아이들을 먼저 보낸 것이 늘 죄스럽고 부끄러워서 작은 골목길로만 다녔어…….”

장모님의 뜻밖의 말씀에 아내도 나도 한동안 다음 대화를 이을 수가 없었다. 아내는 처음 듣는 얘기에 장모님이 안타까웠던지 그런 생각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끝에 눈시울을 붉히기까지 했다.

장모님은 참 밝고 활동적인 분이시다. 트로트 가요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가사를 적어 외워서 부르는 노래가 꽤 있으며, 지역 합창단과 성당 활동도 열심히 하시고 동네일도 거의 꿰뚫고 있으시다.

그런 분의 내면에 우리 부부로서는 도저히 짐작도 못 할 슬픔이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자리 잡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새삼 ‘어머니’라는 존재가 자식에게 얼마나 커다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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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지난 11월 26일 서울 을지로에서 세월호 고래와 함께 광화문 광장으로 행진하고있다. 

사진출처_한국일보 


한편 이제 2년이 지났을 뿐인 세월호 사고 희생자 부모들의 마음은 장모님의 그것과 비교해 얼마나 힘들었고 또 아팠을까를 짐작해본다.

혹시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심리상태도 그 사고에 대해 부모로서 아이들을 먼저 보낸 ‘부끄러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하지만 세월호 사고에 대한 ‘부끄러움’은 희생자 부모의 것이 아니라 당시 각종 부조리로 사고를 일으켰던 선박회사와 구조를 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못하고, 이제껏 진상조사를 위한 어떠한 적극적인 조치도 하지 않는 정부 당국의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연말을 넘어 새해로 넘어가고 있는 촛불집회의 기운이 세월호 진상규명에도 미치기를 염원한다.

11월 어느 주말 밤 시골 장모님께서 얘기해 준 ‘부끄러움’의 사연은 나에게 세상을 보는 또 한 가지 시선을 깨닫게 해 주었다.

부조리한 대한민국 현대사에는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떳떳하게 세상을 활보하며 다니고 그것과 상관없는 대다수의 민중은 창피함과 부끄러움을 느꼈어야 했던 시간이 상당수였다.

이번만큼은 촛불집회에서 많은 사람이 외치고 있는 각종 구호처럼 세상이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닿는다. 그래서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었던 위정자들에게 제대로 된 ‘부끄러움’을 알게 해 주었으면 싶다.

“당신들은 큰길에 나설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가?”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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