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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사단법인 토닥토닥 이사장), 박은영(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 오임술(민주노총 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이채민(충남여성가족연구원), 임병안(중도일보 기자), 안선영(경기도교육청 장학사)님과 같은 지역의 현장 활동가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인권현안에 대해 2주에 한 번씩 글을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남편은 뭐하냐고요?

작성자대전충남인권연대 작성일22-05-31 23:46  |  202 읽음

글_이채민(한국국제협력단 코디네이터 태국사무소 근무예정, 전 충남여성가족연구원 연구위원)


  7년 동안 일했던 충남여성가족연구원을 떠났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와서다. 십여 년 전 인도네시아에서 2년간 봉사활동 이후 여러 인연들을 맺어왔다. 그 때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만들었는데, 그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남편과 상의 후 함께 일을 정리하고 떠나기로 결정했다. 사실 아이가 있고, 일터가 있는 우리에게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의 생활은 그것 자체가 도전이자 모험이다. 하지만 새로운 자극이 우리 삶에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우리의 결정 이후 사람들의 반응이다. 그동안 내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 두 가지를 소개한다.


 “남편은 가서 뭐하는데?”, 그리고 “다녀와서 뭐 할 건데?”   


첫 번째 질문은 만일 내가 남편의 일로 떠나게 됐다면 듣지 않았을 질문이다. 왜냐면 나의 일은 이미 “아이 돌봄과 집안일”로 셋팅 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에게는 당초 그런 기대치가 없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질문이 그쪽을 향할 수밖에. 워낙 그 질문을 많이 들어 청개구리 출신인 나는 이렇게 되물었다. “꼭 일을 해야 해요?” 그럼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장가 잘 갔네.. “(남편) 부럽다”. 하지만 그 반대는 성립되지 않는다. ‘남자=일’, ‘여자=집안일’이라는 공식이 발현되는 순간이다. 오히려 여자는 자기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는 순간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인간으로 낙인찍힌다. 남성에게는 죽을 때까지 일 강요를, 여성에게는 (일하는) 그가 (계속 일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존재로 만들어버려야만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진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콜라보레이션은 이렇게 일상을 지배한다.​1)

 

  두 번째 질문은  “다녀와서 뭐 할 건데?” 다. 공교롭게도 외국인들과 함께하는 커뮤니티가 있어 같은 소식을 전했는데 외국인 커뮤니티에서는 들을 수 없던 질문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콩그레츌레이션이라며 축하해줬다. 그리고 그것이 네가 원했던 일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면 너무 재밌겠다. 그리고 끝. 그 외 질문은 남편 포함 없다.) 이 질문은 십여 년 전 내가 인도네시아를 가려고 할 때도 숱하게 들었다. 당시에도 나는 그 질문이 무척 피곤했다. 왜 내 삶의 선택을 해명해야 하는가. 한국사회의 시간표가 다양한 인간임에도 똑같은 시간표만을 강요하는 듯 했다. 마치 지금 유지하는 삶 외의 다른 삶은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듯 말이다. 결국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는 꿈만 꾸게 된다. 만일 십여 년 전 내가 지레 겁을 먹고 인도네시아행을 결정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기회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 때의 경험이 나의 삶을 훨씬 더 다채롭게 만들어주었음은 물론이다.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또 다른 대답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내일 일도 모르는데 2년 후 일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삶의 모습은 생김새가 다르듯 모두 다르다. 삶의 속도 역시 그렇다. 문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설렘과 동시에 두렵다. 더욱이 지금은 십여 년 전 혼자가 아닌 가족이 함께 가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매 선택의 순간 방황과 삽질 끝에 지금까지 해왔듯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다짐한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헤매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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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학 기술의 발전은 집안일에서 여성을 해방시킬 수 있을까? 애석하게도 아니다. 연구에 따르면 각종 집안일 앱이 나왔지만 집안일을 누가 더 많이 하는지 확인하는 것에 그치거나 성차별 고정관념을 확산시키는 데 오히려 일조하고 있었다.  https://www.technologyreview.kr/chore-ap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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