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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만사는

김동석(사단법인 토닥토닥 이사장), 박은영(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 오임술(민주노총 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이채민(충남여성가족연구원), 임병안(중도일보 기자), 안선영(경기도교육청 장학사)님과 같은 지역의 현장 활동가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인권현안에 대해 2주에 한 번씩 글을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꽃피는 봄이 오면

작성자대전충남인권연대 작성일22-04-06 19:25  |  126 읽음

글_김동석(사단법인 토닥토닥 이사장) 



장애인 건우는 올해 집 밖을 한 번도 나가지 못했습니다. 코로나 상황은 건우가 세상으로 나가는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몇 년 전의 봄을 떠올려봅니다. 갑천 변에서 봄바람을 씽씽 가르며 달리고 있습니다. 동생 선우는 앞에서 뛰고 있습니다. 아빠는 뒤에서 휠체어를 밀고 엄마는 내 손을 잡고 함께 달립니다.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습니다. 그러다 가슴이 답답해지더니 썩션기 켜지는 소리가 크게 들립니다. 코로 밀고 들어오는 카테터에 눈물이 찔끔 납니다. 


건우는 어느 날 사고 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다리를 수없이 바라보았지만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엄마아빠가 안아서 휠체어에 앉혀주지만 앞으로 밀 수 없었습니다. 나만 빼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멈춰진 휠체어에 앉아있으면 시간이 멈춘 것 같습니다. 집으로 오신 선생님이 오늘은 몇 월 몇 일, 날씨는 어떻다고 말씀하시는데, 내 달력은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봄이 왔다고 합니다. 아빠가 봄바람을 맞으며 뛰자고 말합니다. 아빠를 바라보는 눈엔 의문이 가득합니다. 평소 운동도 안 하던 아빠가 마라톤대회에 나간다고 합니다. 그것도 함께 나가겠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엄마도 황당해합니다. 아빠의 표정을 보니 장난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정말이라고요? 


달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빠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달릴 수 있다고 합니다. 세상은 다리로만 달리는 것이 아니라는 걸, 함께하면 달릴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합니다. 온가족이 마라톤대회가 열릴 예정인 갑천변으로 나갔습니다. 햇살이 너무 따가워서 눈을 뜨기 어려웠습니다. 아빠가 ‘건우 파이팅!’을 외치더니 휠체어를 밉니다. 휠체어가 멈추지 않습니다. 주변이 빠르게 변합니다. 틀어지는 몸으로 버티기 힘듭니다. 가래도 차올라옵니다. 엄마가 손을 잡고 뛰며 나를 보고 있습니다. 


봄바람이 뛰고 있는 나를 마주치며 지나갑니다. 내가 바람을 가르고 씽씽 달리고 있습니다. 다시는 달릴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달리고 있습니다. 휠체어 바퀴가 멈추지 않고 구르고 있습니다. 내 심장소리가 들립니다. 아빠의 심장소리도 들리는 것 같습니다. 아빠는 발로, 건우는 휠체어로, 우리는 심장으로 함께 뛰었습니다. 그리고 우린 마라톤대회에 나갔습니다. 


오늘 아빠는 길을 걷다가 하얗게 변해버린 민들레를 바라봅니다. 하얀 건우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살짝 찡하니 눈물이 납니다. 하얀 민들레를 힘차게 불어봅니다. 홀씨들이 날라갑니다. “꽃피는 봄이 오면 건우와 달릴 것입니다. 기적의 마라톤에 당신의 심장도 함께 뛰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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