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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만사는

김동석(사단법인 토닥토닥 이사장), 박은영(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 오임술(민주노총 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이채민(충남여성가족연구원), 임병안(중도일보 기자), 안선영(경기도교육청 장학사)님과 같은 지역의 현장 활동가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인권현안에 대해 2주에 한 번씩 글을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작성자대전충남인권연대 작성일22-02-08 11:36  |  427 읽음

글_안선영(경기도교육청 장학사) 


드리마 오징어 게임을 유행이 다 지난 뒤에 어렵게 봤다. 권투도 못 보는 걸 아는 아들이 엄마는 못 본다고 해서 아예 볼 생각을 안 했다. 사람들과의 대화도, 여기저기 초록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타나는 TV 프로그램도 이해할 수 없어 용기 내 봤지만 역시나 첫 장면부터 힘들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싸우는 장면이 나오면 어떤 방법으로든 피한다. 만약 실제로 영화에서처럼 때리고 맞으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영화를 만들 때 공식이 있는 것처럼 웬만한 영화는 극한의 폭력 장면이 어김없이 나오고 관객들은 점점 더 심한 자극을 원한다. 차량 블랙박스에 찍힌 사고 장면을 보고 가해와 피해 정도를 해석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사고 장면을 보는 게 무서워 얼른 채널을 돌린다. 차들이 부딪치고 사람들이 소리 지르는 장면을 보면 심장이 심하게 벌렁거리고 기분이 나빠진다.


폭력을 대놓고 즐기는 스포츠들도 참을 수가 없다. 멀쩡한 소를 흥분시켜 사람을 공격하게 만드는 투우경기. 소의 흥분이 정점에 달할수록 관객들의 환호성도 높아진다. 소에게 창을 꽂는 투우사보다 피 흘리는 소를 보며 흥분하는 관객들이 더 밉다. 사람을 사각 링 안에 가두고 서로 주먹다짐을 시키는 권투. 한사람이 맞아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면 이긴다. 쓰러지지 않으면 끝까지 상대방을 때려야 한다. 눈이 부어 잘 떠지지 않고 피를 흘리면서도 계속 주먹을 휘두른다. 주먹이 세게, 정확하게 상대를 가격할 때마다 관객들의 환호가 요란하다. 심지어 발로 차고, 온몸의 무게를 실어 바닥에 패대기치는 격투기, 레슬링.... 행여 채널을 돌리다 잠깐 스쳐도 화가 난다. 


속력을 구하는 수업 중에 잠깐 독일에 다녀왔던 경험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독일의 아우토반은 차들의 속력이 빨라 사고가 나면 대부분 사망사고라고 하더라는 말을 했던 것 같다. 다음 날 학부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아이가 수업시간에 들은 이야기로 충격을 받아 힘들어했다고. 다음부터는 끔찍한 이야기는 삼가 달라고...


생각보다 폭력에 예민한 사람들이 많다. 영화나 스포츠는 취향이니 좋은 사람은 즐기고 싫은 사람은 피하면 된다. 하지만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폭력에 노출된 경우가 얼마나 많을까? 우리나라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은 몰라서 평온했고, 시리아, 소말리아, 미얀마, 아프카니스탄, 예멘... 끔찍한 내전을 겪고 있지만 먼 나라 이야기니 덜 민감했고, 가급적 외면했다. 


몇 일 전 출근길에 라디오에서 어느 대선 후보가 선제타격이라는 발언을 했다는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상상할 수 없는 최악의 폭력을 벌이겠다는 발상에 화가 나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몹시 슬펐다. 심지어 TV 토론에서 다른 후보가 선제타격에 대한 생각을 묻자 온 국민이 지켜보는 카메라 앞에서 버젓이 선제타격을 주장하는 사람을 보면서 분노, 억울, 좌절 등 온갖 감정들이 밀려와 참기가 힘들었다. 아직도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쉬고 있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실감이 난다. 중앙아시아 어느 조용한 산골 마을이라도 알아봐야 하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아직 살날이 많이 남은 젊은이들이‘이러시면 아니되옵니다’라고 목소리 좀 높여주기 바란다. 아무도 아프지 않고 그 누구도 피 흘리지 않는 곳에서 살고 싶다. 좀 평화로운 세상에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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