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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만사는

김동석(사단법인 토닥토닥 이사장), 박은영(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 오임술(민주노총 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이채민(충남여성가족연구원), 임병안(중도일보 기자), 안선영(경기도교육청 장학사)님과 같은 지역의 현장 활동가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인권현안에 대해 2주에 한 번씩 글을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불편함과의 연대

작성자대전충남인권연대 작성일22-01-19 10:30  |  478 읽음

글_오임술(민주노총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사람의 권리, 인권이란 가치 중립인가? 아직도 모르겠다. 어떤 사안을 볼 때 사회적 존재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다른데 과연 가치 중립적 위치는 어디까지 가능한 것인지 모르겠다. 


의사는 진료실에 앉기도 전에 ’물리치료 받으시면 되죠! 치료 받으세요‘! 앉지도 못하고 선 채로 진료실에서 나와 진료비를 계산했다. 그런데 약 처방은 없나요? ’약 처방 필요하세요‘라고 오히려 되묻는다. 헐! 아니, 처방을 제가 하나요!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뭐가 잘 못 된 것 같다. 이 노동자에게 화를 내야 할까? 허경영씨 한테 전화가 오면 바로 끊을 수 있다. 그런데 다른 광고성 전화가 오면 갈등을 하게 된다. 콜 센터 노동자들의 건수 실적(본콜)이 되려면 아마도 최소 30초 통화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모든 전화를 30초 이상 받아 주지는 못한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늦게 들어온 친구와 저녁 10시쯤 식사를 하는데 전화가 왔다. 차를 빼 달라는 경비 노동자와 친구의 통화는 길어졌다. 살짝 눈치 보며 그냥, 차 빼 주면 안 돼! 라고 말하고 있는데,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가 나를 자극했다. ‘다들 차 빼 달라고 하면 아무 말 없던데 아줌마만 왜 그래요! 다른 동에 가면 주차 할 곳 많아요’, 평소 노동자의 입장을 생각한다던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경비 아저씨를 만났다. 처음 보는 분이었다. 재활용 수거 장소를 주차 장소로 변경했다고 설명한다. ‘아저씨 어려움은 알겠는데’, ‘15년 넘도록 아무런 문제가 없던 것을 변경하려면 미리 공지를 하셔야죠’, ‘아줌마 어쩌구 저쩌구 말씀하신 건 잘못된 것 아니신가요’? 이미 주차된 차를 다른 동에 주차하라고 하면 늦게 들어와서 밥 먹는 사람이 어떻겠어요’! 목소리가 커지고 다른 경비 노동자가 오고서야 사과를 받았다. 나는 수많은 갈등을 해야 했다. 지금 갑질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신의 업무를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분한테 괜한 소리를 했나?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에 이어 고공, 본사 점거 농성을 진행하고 직접 고용되었다. 그러나 직접 고용된 노동자들은 자신의 업무가 아닌 다른 업무를 수행하고 있고 온갖 부당행위를 당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불법파견에 따른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투쟁을 했다는 이유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벌금형을 받았고 13명은 기소되었다. 법에 따라 법을 지키라고 요구했던 노동자들은 기소가 되어 다시 해고의 위기에 처했다.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의 멸공 논란으로 스타벅스나 이마트에 대해서는 불매운동을 할 수 있지만,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는 불매운동도 할 수 없다. 아주 오래전부터 하이패스가 노동자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불편해도 현금이나 카드로 계산해 왔을 뿐이다. 자본의 편리함이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쫒아내는 것을 최대한 늦출 것이라며 스스로 위로했다. 불편함과 노동연대 중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투쟁으로 직접 고용된 노동자와 직접고용을 거부하고 자회사로 들어간 노동자들 중 누가 톨게이트 수납 업무를 해야 할까? 우리는 누구와 연대해야 할 까? 


지금도 너무나 많은 선택적 갈등이 존재한다. 정규직 노조 위원장이 비정규직과 연대했다고 불신임 되고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연대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전에도 밝혔지만 두 개의 용역업체가 통합되어 하나의 업체가 되는 과정에서 외곽 청소와 건물 안 청소 업무를 순환 배치하자고 했더니 다수였던 실내 청소노동자들이 외곽 청소노동자들만 위한다며 노조 위원장을 탄핵했다. 나는 절망스러웠다. 희망하는 노동자들에 한 해 순환 배치를 하는 것으로 조정을 했어도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용납하지 않았다. 비정규직과 연대한다고 청년세대가 정규직 노조를 탈퇴하고 별도 노조를 만드는 사업장도 늘어나고 있다. 언론은 과연 어떤 부분을 보도하고 있을까? 


일방통행 도로에서 만난 어떤 여성 운전자에게 창문을 열고 역주행 하고 있다고 말했더니 퉁명스럽게 ‘알고 있어요‘! 라며 창문을 올린다. 이것 참 내가 잘못했구나. 역주행하는 운전자가 남자였더라도 지적질을 했을까? 물론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창문을 열기는 했다. 운전하면서 보게 되는 ’쪽바리차는 비켜주지 않는다‘. ’성질 나쁜 아이가 타고 있어요‘. ’아이를 먼저 구해주세요‘!. 자동차에 붙여진 문구를 보면 반감이 생긴다. 저런 스티커를 붙인 사람들이 운전을 더 안전하게 하고 있지 않다는 선입견이 있다. 혐오를 붙이고 다니거나 자신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만 강변하는 사람들이 불편하다. 본질을 이해하기보다 자세와 태도를 중심으로 판단할 때가 많다. 마치 자본주의 물신성처럼 말이다.


아침 대용으로 먹는 두유 제품에 빨대 없이 먹자니 불편하다. 인권연대에서 받은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것도 불편하다. 자본은 끊임없이 편리함을 강조한다. 새 아파트는 건조기, 식기세척기를 원하고 오래된 장롱은 폐기 처분하는 것을 강요한다. 자본은 자신들의 상품을 만들어 놓고 편리함을 강조하며 상품들을 준비한다. 혼자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불편함을 동행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2022년 새해에도 산업재해 노동자 사망 소식은 끊이지 않고 있다. 1월27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에 따라 1호 사법 처리를 피하겠다며 대기업 건설회사는 공사를 당분간 중단 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어떤 법은 누구에게 불편하다. 여전히 50대 꼰대 남성으로서 세상사가 불편하다. 그리고 갈등하고 선택해야 한다. 혐오, 차별, 기후 위기, 젠더감수성, 노동 감수성 등 생각할 것이 많아진다. 노동자 철학의 삶으로 살아가는 세상은 불편해도 괜찮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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