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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사단법인 토닥토닥 이사장), 박은영(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 오임술(민주노총 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이채민(충남여성가족연구원), 임병안(중도일보 기자), 안선영(경기도교육청 장학사)님과 같은 지역의 현장 활동가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인권현안에 대해 2주에 한 번씩 글을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코로나19 망인과 유족에 씌워진 굴레

작성자대전충남인권연대 작성일21-12-22 10:31  |  420 읽음

글 _ 임병안(중도일보 디지털룸)


엊그제 찾아간 대전 화장장은 예상은 했지만, 말 한마디 꺼내기 어려운 침묵 속에 빠져 있었다. 하루 4차례 이뤄지는 일상적 화장 외에 코로나19 확진환자 중 사망자를 위한 화장이 5회차 오후 5시 30분에 이뤄진다. 비감염의 일반적 망인에 대한 화장을 모두 마치고 유가족들이 모두 떠난 후 코로나19 확진 사망자만을 위한 화장절차가 진행되는 것이다. 위아래 방역복을 두른 직원들이 운구차에서 내리는 관을 받아 정수원 안으로 들어갔고, 관이 움직일 때마다 분사기를 든 방역요원은 일대를 소독하는 데 여념 없었다. 유족들도 방역복을 입고 두세 걸음 떨어진 곳에서 나지막하게 망인이 된 가족이 옮겨지는 것을 숨죽여 지켜봤다. 목놓아 통곡하는 것조차 어려운지 유족들은 낮은 신음을 낼 뿐이었다.


이날 멀리서 지켜본 대전 정수원의 모습은 2015년 그때도 취재 차원에서 찾았을 때 풍경과 정확히 일치했다. 중동호흡기증후군의 메르스가 대전을 덮치고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감염병에 대한 공포심은 극에 달했을 때다. 이끌리듯 찾아온 그 날의 정수원은 무더웠고, 한낮인데도 인기척조차 없었다. 예정된 화장을 모두 미뤘는지 텅 빈 주차장에 운구차 한 대가 들어오고 하얀 방호복이 내리더니 관을 꺼내 같은 방호복 차림의 정수원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메르스 때는 유족도 화장을 참관할 수 없었고 이 때문에 방호복 서넛이 관을 옮기는 게 전부였다. 


나는 눈을 껌벅이며 이 것이 어떤 현상인지 분석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곳이 지구상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맞는지부터 저기 하얀 방호복 안에서 움직이는 게 사람인지 아닌지조차 의구심이 들 정도로 낯설고 두려웠다. 당시 하얀 방호복이 화장을 마친 유해를 유골함에 들고나와서야 유족은 망인이 된 가족을 마주할 수 있었다.

다시 오늘로 돌아와 코로나19 확진으로 사망한 망인과 유족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와 인권은 무엇이 있을까. 엊그제 정수원에서 머물며 머리 속에 든 생각이었다. 아버지이자 어머니였던 가족이 어느 날 코로나에 확진돼 격리병상에 입원했고, 의료체계의 한계로 더는 치료하지 못하고 숨을 내려놓아야 할 때 가족들은 임종조차 곁에서 지키지 못했다. 망인이 돼 육신조차 가족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육신을 닦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는 전통 염습도 할 수 없어 분골이 되어서야 돌아오는 형국이다. 2015년 메르스 때 부모를 잃은 대전 유성의 한 유가족은 정부를 향해 소송을 하겠다는 생각을 꾸역꾸역 참았다. 부모가 다른 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뿐인데 어이없게도 떠나보내야 했던 부당함, 보내는 길조차 자식들이 지키지 못했다는 죄스러움이 오랫동안 남아 있다고 했다. 


코로나19 확진으로 사망한 유가족을 직접 인터뷰하지는 못했으나, 2015년 메르스 때 유가족이 처했던 상황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감염병 대응에는 정부가 앞장서 치밀한 정책을 세워 국민들에게 강요에 가까운 의무를 지우고 있다. 그러한 방역의 틈새에서 감염된 사망한 시민과 남겨진 유족을 위한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유족에게만 떠맡길 것인가, 유족들에게 지역사회가 해줄 수 있는 도의는 없는 것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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