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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만사는

추명구(대전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오임술(민주노총 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최예린(한겨레 기자), 이채민(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 임병안(중도일보 기자), 안선영(경기도교육청 장학사)님과 같은 지역의 현장 활동가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인권현안에 대해 2주에 한 번씩 글을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위험보다 더 큰 이익을 위한 것?

작성자대전충남인권연대 작성일21-09-08 18:04  |  155 읽음

글_오임술(민주노총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코로나19의 기세가 여전하다. 정부는 백신접종을 재촉한다. 2,300명이 넘게 사망했고 좀처럼 세자릿수 확진자를 줄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백신접종과 거리두기 이외 뚜렷한 해법이 없어 보인다. 백신 부족을 질타하는 여론과 백신접종의 부작용을 걱정하는 여론 속에 정부는 권고한다. '코로나19 백신접종 이익이 위험보다 훨씬 크다'.


한해 약 2,400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한다. 노동자들의 목숨과 노동기본권은 누구의 이익보다 작은 것일까? 노동자, 시민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되었지만 국민입법청원안보다 후퇴되었다. 2022년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며칠 후 시행령이 국무회의에 상정된다. 누더기법으로 비판받는 중대재해법은 경영책임자 처벌을 피할 수 있는 시행령이 들어가 있다. 누구를 위한 위험에 대한 예방조치인가? 노동자 산재사망 예방 백신인 중대재해법이 최고경영책임자 처벌 위험을 줄이는 방향으로 간다. 그런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취지는 최고경영책임자 처벌을 강화해서 노동자들의 산재사망을 줄이기 위한 예방적 조치를 하라는 것이었다.


서구 유럽에서는 백신접종 의무화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노마스크 시위는 물론 백신접종도 거부한다. 서구 사회는 개인의 자유가 국가에 의해 침해당할 수 없다는 흐름이 강력한데, 한국 사회는 공공이익의 이름으로 전체주의화 되는 경향이 있다. 정부의 반노동자성을 규탄하는 민주노총 집회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발열 체크하고 거리두기를 하고 정부 방역지침을 준수하며 시위를 한다. 정부의 방역지침을 위반한 것은 유일하게 집회 참여 인원뿐이었다. 문제는 실내에서 수천 명이 모여 콘서트를 진행하고 각종 선거와 정치인들 행사에는 수백, 수천 명이 밀집해도 아무런 제재가 없다는 것이다. 동일한 정치적 행사임에도 민중들의 분노에 찬 정치적 요구의 집회 시위는 전면금지 되고 있다. 


지난 7월3일 민주노총 집회에서 코로나19 확진자는 나오지 않았으나 정부가 나서서 민주노총을 공격하고 보수언론은 노조 혐오를 부추기며 확대 재생산했다. 국회의원 보좌관이 확진되었다고 국회 전체를 코로나19 확산 세력으로 공격하지 않는다. 정치권과 언론사는 민주노총을 공격하는 것이 자본의 이윤을 위한 더 큰 이익으로 보는 듯하다. 


코로나19의 장기화에 따라 생존권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자영업자, 노동자들의 불만을 억제해야 하는 방식은 불행하게도 인민들의 기본권을 제약하는 형태로 작동한다. 경찰은 지난 9월2일 언론사 건물에 입주한 대한민국 제1노총 사무실을 새벽을 틈타 문을 부수고 침탈했다. 박근혜 정권 시절 사회 공공성 강화를 걸고 파업했던 전국철도노조 위원장 연행에 실패하고 커피믹스만을 연행하다 비난을 받았던 경찰은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을 강제 연행했다. 공공의료 확대를 요구하던 보건의료노조의 파업 협상이 타결되고 불과 3시간 후 민주노총 심장부를 공격한 것이다. 총파업을 선언한 민주노총에 대한 정부와 경찰의 계획된 공권력 남용이다. 민주노총 집회와 코로나19 확진 연관성은 증명되지 않았고, 증거인멸도 불가능하다. 집회와 방역지침을 위반한 이유다. 알다시피 삼성 이재용 회장은 가석방되었다.


노동법 전면개정, 5인 미만 사업장 대체휴일 적용, 비정규직 사용 사유 제한, 중대재해 근본대책 수립, 산별 교섭 강화, 최저임금 대폭 인상 등 민주노총의 요구에 대해서는 만나지도 않고 답을 내놓지도 않으며 코로나19 방역지침을 지키라고만 하고 있다. 코로나19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이익을 위해 민주노총이 위험을 감수하고 투쟁에 나서는 것을 정부가 위협과 위험으로 인식하는 것은 지난 군사정권 시절과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매한가지다’, 라고 울분을 토하는 노동자, 자영업자들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 지금까지 참고 함께 노력해 왔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고의 백신은 집회, 시위, 언론의 자유다. 그러나‘누구는 모여도 되고 누구는 모이면 안된다’는 공정하지 못한 행정력을 누가 신뢰하겠는가! 


위험보다 더 큰 이익을 위해 코로나19 백신접종 권고를 하는 정부는 노동자들을 살리고 민중들을 살리고자 하는 노동계의 요구에 화답해야 한다. 파업은 노동자들을 살리기 위한 헌법적 권리이자 민주주의 백신이기 때문이다. 누가 더 큰 공공이익의 이름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일까! 사회 공공성 확대를 요구하는 민주노총과 기다려 달라는 정권의 화답은 대통령이 바뀌어도 계속 되풀이되고 있다. 가뭄에 웬 파업, 경제가 어려운데, 코로나19인데, 전쟁 위기인데, 시민들의 발을 볼모로, 배부른 자들이, 태풍이 온다는데...............


파업 자체를 불온시하고 노조 혐오를 부추기는 세상은 변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파업을 해야 정부와 자본, 언론들이 반응한다. 모두의 이익을 말하지만 모두의 이익은 없다는 것이다. 위험을 함께 짊어지고 서로의 이익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세상이 코로나19 위험보다 더 큰 이익을 위한 세상이다.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한 것이 어찌 코로나19 백신만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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