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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만사는

김동석(사단법인 토닥토닥 이사장), 박은영(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 오임술(민주노총 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이채민(충남여성가족연구원), 임병안(중도일보 기자), 안선영(경기도교육청 장학사)님과 같은 지역의 현장 활동가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인권현안에 대해 2주에 한 번씩 글을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공정이라는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작성자대전충남인권연대 작성일21-06-16 09:29  |  635 읽음

 글_오임술(민주노총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잇따른 중대재해 사망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광주 건축물 철거과정 사고로 아까운 시민들의 생명이 사라졌다. 또 어김없이 들려오는 위험의 외주화와 안전불감증, 지침위반, 다단계 하청구조, 이윤극대화가 원인으로 들려온다. 언제까지 똑같은 사고 원인을 들어야 하고 반복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사망사고를 줄이고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실질적 권한과 책임이 있는 최고경영책임자의 처벌을 주장해 왔다. 권한 있는 자가 사고의 책임과 처벌에서 벗어나 있으면 사고 예방을 위한 진지한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산업재해 피해 유족들과 노동사회단체의 노력으로 중대재해법이 탄생 되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단식투쟁까지 하며 만들었던 누더기 법안조차도 재계와 사용자단체들은 형사처벌을 삭제하기 위한 시도를 자행한다. 경제 활성화를 무기로 정부를 향해 노골적으로 중대재해법 무력화 압박을 자행한다. 노동계는 공사 발주처와 인.허가 과정의 불법을 자행한 공무원 처벌조항 삽입과 사용 인원 규모와 상관없이 중대재해법을 적용시켜야 함을 주장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과 개정안을 둘러싸고 계급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싸움이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자본가들의 공정과 노동자들이 바라보는 공정은 다르다.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에 따라 100만해고 대란설이 유포했었다. 최저임금 인상을 을들간의 다툼으로 몰고 근거 없는 실업 대란 논리도 매년 반복된다. 이명박정권 시절 종부세 무력화를 주도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중산층과 서민에게는 대못을 박으면 안 되고, 고소득층에 대못을 박는 건 괜찮은 것이냐"는 '부자감세' 주장 또한 대표적인 자본의 공정 논리다. 당시의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다툼은 비정규직 정규직화 공정성 논란으로 이어지고 중대재해법, 최저임금인상, 종부세 논란, 조국사태 논란까지 자본과 정치권 보수언론의 공정성 프레임 논쟁은 현재까지 궤를 같이한다.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 조합원들이 건강보험 공공성 강화, 공단의 직접고용을 외치며 파업에 돌입했다. 똑같이 시험을 본 것도 아니고 고용업체도 다른데 직접고용을 외치는 것은 ’불공정하다‘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원청의 직접적인 지시는 불법파견의 요소가 있어, 서류상 직접 지시가 없을 뿐이다. 하청업체는 원청이 정해 놓은 과업 지시서나 시방서에 따라 업무를 수행한다. 시민들은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 노동자들도 당연히 국민건강보험공단 소속으로 건강보험 상담업무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대형마트나 백화점 안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몇 개의 업체 소속으로 나뉘어져 고용되어 있다는 생각을 못하는 것과 같다. 공정한 고용형태가 아니라는 상식이 있는 것이다.


효과적으로 노동력을 착취, 최대의 돈벌이를 위한 방식은 효과적인 인력운영과 경영 합리화를 위한 아주 공정한 자본주의 방식이 된다. 위험과 책임 요소는 외주화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 것이 자본이 말하는 공정이다.


비정규직과 하청이라는 고용형태가 처음부터 다수의 방식은 아니었다. 무리한 구조조정을 강요했다고 자인한 IMF의 요구를 받아들인 결과 한국 사회는 비정규직, 특고 노동자의 지옥이 되었다. IMF의 공정은 노동의 유연화와 금융시장 장악이었다. 결국 IMF 위기를 가져온 재벌과 정치권은 살아남았다. 불안해진 고용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청년들은 너도나도 신의 직장이라는 공공기관, 공무원 취직 대열에 나섰다. 시험은 절대불가 공정의 잣대처럼 신성화 되어졌고 비정규직 확산으로 빈부격차는 심각해지고 사회 불평등 문제로 대두되었다.


공정에서 살아남고, 살아가기 위해 온갖 스펙을 쌓으라고 자본과 정부는 강요했다. 근본적 해결 방안 없는 상황은 청년들에게 각자도생 의자 놀이에 열중하며 '나만 아니면 돼'를 세상은 가르쳤다. 자본은 값싸고 질 좋은 노동력을 얻기 위해 서열화를 조성했다. 서열화된 계급에 진입하기 위한 능력 발휘는 공정이라는 유령의 덫에 걸려 들었다.


내로남불의 시대, 국회의원 0선, 최초 30대 야당 대표의 당선, 언론들은 호들갑을 떨었다. 그가 과연 공정이라는 틀에서 탄생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청년층과중도층을 견인하는 정치공정의 새로운 상품의 탄생을 찬양 할 뿐이다. 이준석대표의 능력주의는 좋은 학벌을 배경으로 콘테스트에서 선발, 시험에서의 승리가 곧 공정한 것이 되는 것이라면 그의 공정은 노동자들의 공정 가치는 아니다.


자본은 경쟁, 노동은 공동체다. 자본은 승자독식, 노동은 함께 살자다. 자본주의 적대적 계급간에는 사회를 바라보고 변화시키는 과정의 공정 철학이 다르다. 자본의 논리가 압도적인 언론, 교육, 종교, 문화공간에서는 노동의 공정을 위한 투쟁이 불공정이 되기 쉽고 불법의 딱지와 떼쓰기로 쉬이 되곤 한다. 제도나 법은 시대에 따라 계속 변화해 왔다. 법은 공정한가? 판사는 공정한가? 법은 타협의 산물이면서 강자 또는 다수가 만들어 놓은 것이다. 노동법은 자본가들에게 불공정하다. 노동자들에게도 노동법은 불공정하다. 무엇이 공정한가?


노동자들에게 작업공정은 중요하다. 아프지 않고,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작업공정을 위해 공정한 세상을 꿈꾼다. 이중 의미가 있는 공정은 공정할 수가 없다. 배회하고 있는 공정이라는 유령의 고스트버스터즈는 노동자의 철학이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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