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인권만사는

김동석(사단법인 토닥토닥 이사장), 박은영(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 오임술(민주노총 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이채민(충남여성가족연구원), 임병안(중도일보 기자), 안선영(경기도교육청 장학사)님과 같은 지역의 현장 활동가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인권현안에 대해 2주에 한 번씩 글을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불편을 장려하는 사회

작성자대전충남인권연대 작성일21-05-19 22:09  |  693 읽음

글_안선영(경기도교육청 장학사)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휴일 아침 동네 식당에 포장 주문을 하고 직접 가지러 갔다. 1회용품 사용을 줄이려고 통 세 개를 들고. 하나는 주요리 통, 하나는 밥통, 하나는 김치통. 최근 지인의 집을 방문했더니 중국 음식을 주문하고 통을 들고 받아오는 걸 인상 깊게 봐서 나도 다음에 포장 주문을 하면 꼭 해 보리라 마음먹고 있던 터였다. 뭔가 좋은 일을 하는 것 같아 뿌듯하게 식당에 들어섰는데 눈치 빠른 주인아주머니가 가져온 그릇에 포장이 안 된단다. 왜냐는 질문에 답을 주시긴 했는데 그다지 이해가 되는 답은 아니었다. 주문 양에 따라 통 규격이 정해져 있는데 가져온 통에는 양을 맞추기 어렵단다. 더 달라는 것도 아니고, 쓰레기 발생문제, 씻고 분리 배출하는 게 더 귀찮은 일이라는 항변은 오히려 식당에 앉은 사람들의 시선만 집중시켰다. 더 할까 하다 주위의 시선이 신경 쓰여 그냥 일회용기에 담아달라고 했다. 밥이 필요하면 밥값을 더 내란다. 여기서 먹으면 당연히 밥을 주는데 왜 포장은 밥값을 따로 내야 하는지? 심지어 매장을 이용하지 않으면 비용이 더 줄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질문(난 분명 따지는 게 아니라 질문이었다)에 포장 그릇값이 밥값보다 훨씬 비싸서 어쩔 수 없단다. 게으르게 시작하고 싶었던 휴일 아침은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말에 마음만 상했고 결국 바리바리 일회용 그릇에 싸주는 음식을 조용히 받아 들고 나왔다. 


코로나는 인간이 만든 재앙이라고들 한다. 인간들의 무분별한 지구 사용에 인간 아닌 생태계의 공격이 시작되었고 이 공격은 쉽게 끝나지 않을 거라고 많은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가 말한다. 게다가 요식업계는 이번 코로나로 큰 피해를 본 업종 중 하나일 텐데 이런 사태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피해가 컸던 직업군부터 앞장서서 지구 살리기에 나서야 하는 거 아니냐는 질문은 현실을 모르는 사람의 낭만적인 생각일까? 


학교 집중방역 점검 기간이라 학교에 방역 점검을 나갔다. 공용 컵 사용이 금지되어 있어 음수대를 이용하려면 일회용 컵을 비치하거나 개인 컵을 이용해야 한다. 내가 방문한 학교는 학생들이 각자 물컵을 가지고 다니며 음수대를 이용하고 있었다. 교실 책상마다 가림막이 세워져 있는데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은 가림막을 통해 보는 세상이 답답한지 자꾸 일어나서 말을 해 가림막이 무용지물이란다. 심지어 가림막 때문에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학생들도 많은데 철거할 수도 없고 선생님들도 가림막 너머로 아이들을 바라보니 시선 맞추기가 어렵단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되도록 무분별하게 소비한 어른들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그 불편함은 아이들이 고스란히 감수하고 있는 꼴이었다. 당장의 불편함을 감수하면 긴 불편함을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해결하기 어려운 긴 불편함을 멈추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작은 불편함을 장려하는 운동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나는 오늘 어떤 불편함을 자처할 것인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