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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만사는

추명구(대전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오임술(민주노총 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최예린(한겨레 기자), 이채민(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 임병안(중도일보 기자), 안선영(경기도교육청 장학사)님과 같은 지역의 현장 활동가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인권현안에 대해 2주에 한 번씩 글을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너를 부르마

작성자대전충남인권연대 작성일20-12-30 16:33  |  54 읽음

추명구(대전지속가능발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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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처 실무자들과 함께
사진출처_추명구
 

2020년 마지막 주말에 출근한다. 이전에도 한 달에 며칠은 쉬는 날에도 출근했다. 실무책임자가 된 후 다양한 모임에 참석하는 기회도 많아졌고 이웃 단체들과 지역사회에서 연대하기 위해 파트너쉽을 요청하거나 요청받기 때문에 업무를 처리하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할 때가 많다. 또한 각자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각 방이 필요하다는 두 딸의 요구처럼 업무 전화를 받지 않거나 실무자들과 소통하지 않고 혼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 출근은 그런 이유는 아니다. 올해 사용하지 못한 연차를 사용하기 위해 며칠 쉬었더니(그동안 계획하고 실천하지 못했던 헌 옷 버리기, 물건 정리하기, 안방 다시 정리하기 등 집안일을 했다.) 지금의 일을 그만두고 싶은 핑곗거리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마음잡기 요량으로 출근을 하는 거라 가는 내내 자전거 페달이 무겁게 느껴진다. 


올해는 유난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연초 모 법무법인으로부터 8년이나 지난 웹 포스터 폰트 사용 문제로 내용증명을 받았고 그래도 이 분야에서는 나름 선수(?)라고 생각해서 직접 소송을 준비하려고 했는데, 결국 경찰서 조사와 합의로 마무리되었다. 지금도 억울함은 풀리지 않았고, 예측 불가한 다양한 사건 속에서 ‘휘말리면 빼박이다.’ 라는 두려움을 주는 선례가 머릿속에 각인 되었다. 또한 코로나 19는 사업의 많은 변화를 요구했다. 감염병 초기에는 사업보다는 안전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사업계획만 변경하며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것도 한 두달이나 가능하지, 시간이 지날수록 예산 집행의 어려움만 가중됐다. 여러 단체에서는 새로운 방식의 사업을 모색했고, 우리 또한 비대면이라는 새로운 사업방법을 찾기 위해 애썼다. 다행히 7월말부터 12월 초까지 전염병의 잠잠한 틈을 타서 많은 사업을 짧은 기간 안에 추진했다. 우리는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미련하게 보일 만큼 애썼고 서로의 마음은 고장나 보였다. 결국 코로나19는 자연이 지구인들에게 새로운 삶의 전환을 요구했다. 우리의 노동은 오프라인 사업과 온라인 사업까지 동시에 준비해야하는 실무 역량과 프로듀사(모 방송국의 드라마 제목으로 프로듀서에  선비 사(士)를 합성한 합성어)도 아닌데 신박한 아이디어를 내 놓아야 하는 스트레스의 장을 만들어 주었다.


나는 이 단체에서 7년을 활동했다. 내 활동에 있어서 최장의 활동이다. 한 분야에 한결같이 있지도 못하고 얇고 넓게 다양한 분야를 기웃거리는 나의 단점이 이것저것 시도해 볼 수 있는 다양한 활동과 만나 동력을 얻었다. 그리고 더 결정적 한 방은 예측불가능하게 성장하는 세 아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늘 나에게 질문하고 대답하고 실천해야 하는 시간이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팀장에서 국장 그리고 (의도하지는 않았지만)처장까지 되었다. 시작의 아쉬움은 컸지만 대타 선수로 거버넌스 맨을 자처하며 부지런히 활동했다. 권력은 뛰는 자의 것이라고 했나?(웃음) 나는 그동안 활동을 진득하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그동안 결론적으로 실패(어떤이는 실패하기 전에 회피 했다고 반문하고 진짜 실패를 해 봐야 질적인 변화가 있다고 말했다.)했기 때문에, 더 솔직히 표현하면 나는 지금 잘 모르기 때문에 바짝 긴장했다.


대전NGO지원센터에서 공익활동가 심리지원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다면적 인성검사 MMPI-2(개인 심리검사)와 전문가 상담 4회를 지원받았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생각했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숨통이 트일 것 같다. 코로나 19로 사업 환경이 바뀌어서 힘들어진 건지, 역량의 한계에 다다른 건지, 자신의 돌봄에 대해 소홀한 건지, 아니면 무엇이든 쉽게 힘들어하는 놈인지, 지금은 전투력 상실이다.

상담을 받으면서 나를 긴장하게 하고 압박하는 관계, 환경, 요인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나는 요즘 내가 활동가라는 것과 더 나은 사회에 대한 믿음과 신뢰, 자부심 보다는 부담감, 일상의 모순에 대한 자각, 부끄러움이 앞선다. 불러서 그리우면 사랑이라고 시인은 말했는데 내 마음이 두근거리지 않는다. 다섯 명이 일을 하는 사무실과 다섯 명이 살고 있는 집. 나는(맞벌이는) 어디를 가던지 업무와 집안일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지 들어야 하고 대답을 해야하고 결정을 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여기에 내가 없어 보인다. 아내와 두 딸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는데 한국 사회에서 보고 배운 게 뻔한 40대 후반의 남성이 30대 초 중반의 여성 4명과 공감하고 그녀들의 문화를 이해하면서 일을 만들어가는 것이 어렵다. 그래도 3년 이상 같이 일을 했는데 그냥 얄밉고, 잘났고, 똑똑하고, 알뜰하고, 잘 챙겨 먹고, 참 냉소적이다. 20여 년 전 여성학 A 학점인데 다시금 공부해야 할까 보다. 바깥일에 잔뼈가 굵어진 아내는 더 과감해졌다. 아내는 “삶은 각자 알아서 사는 거”라고 나에게 선전 포고를 한 것인지 아니면 부족한 나의 독립심을 심어 주려고 한 말인지 아내의 깊은 뜻을 모르겠다. 


이렇게 올 한해는 코로나 19 위기, 기후위기, 양극화 위기, 그리고 활동가 추씨의 위기로 저물어 가고 있다. 나는 여전히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귀가 때마다 맥주를 사 들고 엔딩 없는 하루를 마감한다. 그래야 내일도 좋은 사회를 위해 일을 할 수 있다. 나는 지금 자유롭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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