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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만사는

추명구(대전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오임술(민주노총 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최예린(한겨레 기자), 이채민(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 임병안(중도일보 기자), 안선영(경기도교육청 장학사)님과 같은 지역의 현장 활동가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인권현안에 대해 2주에 한 번씩 글을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포괄적 성교육, 선택이 아닌 필수다.

작성자대전충남인권연대 작성일20-11-18 16:37  |  295 읽음

글_이채민(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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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_여성가족부의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에서 회수 대상이 된 도서 중 3. 교보문고 홈페이지ⓒ 



  여기 독립영화 한편이 있다. 2008년 전고운 감독의 '내게 사랑은 너무 써'라는 영화다. 소녀에게는 불운한 일로 가족과 떨어져 혼자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남자친구가 있다. 어느 날 꾀병으로 조퇴한 소녀는 허름한 고시원에 사는 남자친구를 만나러 온다. 둘은 속삭이더니 이내 고시원의 작은 공간에서 사랑을 나눈다. 허름한 고시원이기에 작은 소리조차 내지 않으려 노력했고, 그렇게 '거사'가 끝났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소년이 다른 일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둘의 사랑을 엿듣던 옆방 남자가 들이닥친다.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학생이 공부는 안하고 뭐하는 짓이냐'라고 훈계를 하더니 지금 일어난 일을 엄마에게 알린다고 협박한다. 소녀는 이 일이 엄마한테 알려지게 될까 두렵다. 결국 누가 들을까 소리도 못 지른 채 옆방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만다. 


  영화는 남자친구와 잤다는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성폭행 당한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수능공부를 하는 소녀로 끝난다. 이 잔인한 경험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성문화의 모습을 날카롭게 보여준다. 대학진학이라는 목표 아래 모든 욕망은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십대의 성적 욕망과 학생 본분을 운운하면서도 그것을 미끼삼아 여고생을 성폭행하는 옆방 남자의 비열한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보수적인(일그러진) 성 문화를 볼 수 있다. 문제는 대한민국에 사는 여성들이라면 누구라도 이런 (더러운) 경험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데 있다. 


  현재 학교에서 진행하는 성교육은 순결교육​1)만 없어졌을 뿐이지 십 수 년째 정자와 난자가 만나고 있고 (달라진 것이라곤 화질 좋은 정자, 난자뿐이다) 대부분 들어도 도움이 되지 않는 교육이다.​2) 여성가족부가 배포한 성교육 교재 '나다움 어린이 책'이 선정성 논란으로 결국 회수되었는데 그 이유는 신박하기 그지없다. 


  성추행과 불법카메라가 일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고, 성폭행 범죄자들은 시나브로 (누가 허락했는지 모르는) 컴백한다. 가해자 조두순은 곧 만기출소로 집으로 간다는데, 피해자 가족들은 공포심에 더 이상 안산에 살 수 없다며 떠난다. 웰컴 투 비디오 사이트로 아동 성 착취물 20여만 개를 유통한 손정우는 대한민국의 솜방망이 처벌 덕에(솜방망이 처벌이 아니라 공범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겠다) 집에 있다. 몸만 섞으면 관상도 알 수 있다는 관심법을 가진 의원까지...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벅찬 ‘강간 왕국’에서 노골적인 성 묘사로 인한 학생들의 '조기 성애화'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소가 웃을 일이다. 


 ‘조기 성애화’ 우려는 우리보다 훨씬 개방적으로 성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근거없는 소리다. 스웨덴은 세계 최초로 성교육을 의무화한 나라로 만 4살부터 성교육을 시작하고 중학교 때부터 피임 교육을 진행하며 콘돔을 무료로 나눠준다. 성은 부끄럽거나 숨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정 속에서 제대로 알려줘야 하는 생활의 한 부분이라는 인식에서다. 


  독일은 남성의 성기를 측정하여 성기 둘레가 10cm 라면 작은 사이즈의 콘돔, 12cm 면 표준 사이즈의 콘돔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정확한 크기를 알면 맞지 않는 콘돔을 사용해 피임에 실패할 확률을 줄일 수 있도록 알게 한다. ‘포르노에 나오는 비정상적인 크기의 성기’에 아이들의 걱정을 덜기 위해서다. 만 6세인 초등학교 1학년부터 10학년(고교 1학년)까지 의무적으로 성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지난 2009년부터 세계보건기구(WHO), 유엔여성기구 등과 함께 현장에서 포괄적 성교육(Comprehensive Sexuality Education, CSE) 시행을 요청하고 있다. <성교육 국제 실무 안내서>(International Technical Guidance on Sexuality Education) 개정판에 따르면 포괄적 성교육이란 ‘경험적, 감정적, 육체적, 사회적 맥락에서의 성(sexuality)교육’을 말한다. 성교육의 목표 역시 청소년이 향후 타인과 원만하게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 위한 지식·기술·태도·가치를 갖추도록 하는 데 있다.​3) ‘인권’과 ‘성평등’에 기초하여 여성과 남성의 신체 구조 차이와 같은 생물학적 특징뿐 아니라, 아동과 청소년의 권리를 포함하여 보편적 인권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고, 인간 생애에서 성과 관련된 모든 경험을 포괄하는 교육인 것이다.  


  이제 섹스, 자위, 포르노 같은 질문을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원치 않은 임신​4)으로부터 아이들과 여성을 보호하고 ‘나를 알아가는 것’, 그것이 진짜 성교육이어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여성들이 정확하고 단호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그 상황을 빠져나가야 하나? 아니, 그게 가능하기는 하나? 제대로 된 성교육..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 제안 : 학교에서 진행하고 있는 성교육의 변화를 기대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된다. 전문기관과의 연계로 정규 시간을 배치하여 하루빨리 학교 교육부터 진행해야 할 것이다 *






1)필자가 받은 성교육의 기억은 이렇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고, 낙태장면으로 이어진다. 낙태기구가 몸에 들어온 순간 태아는 몸을 움크린 채 고통스러워한다(이 영상은 후에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선생님은 순결사탕을 주었다. 당시 필자는 절대 낙태하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남자학교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2)20192월 여성가족부가 전국에 있는 청소년 16,500(초등학교 4-6학년, 중학교 1-3학년, 고등학교 1-3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을 대상으로 성교육이 도움 되지 않는 이유를 조사한 결과, 학년별 성교육 내용이 별로 다르지 않다(34.1%), 교재가 재미없다(18.2%), 기타(15.3%)로 집계되었다. 이외에도 성교육 교육 진행자가 전문적이지 않다(9%), 성교육 시간이 부족하다(7.2%) 등으로 나타났다

3)출처 : 유네스코 https://unesco.or.kr/data/unesco_news/view/741/508

4)영아유기 사건은 3년 새 4배 이상 증가하고 있다. 영아유기 사건이 벌어지면 언론에서는 어김없이 비정한 엄마’. ‘버려진 아이 숨져 안타까워등으로 도배가 된다. 현행법은 영아유기책임을 엄마에게 묻는다. 아이를 키울 수 없는 환경에서 원하지 않거나 예상치 못한 임신을 한 미혼모들은 어렵게 아이를 키운다 해도 미혼모라는 낙인 속에 살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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