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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만사는

추명구(대전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오임술(민주노총 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최예린(한겨레 기자), 이채민(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 임병안(중도일보 기자), 안선영(경기도교육청 장학사)님과 같은 지역의 현장 활동가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인권현안에 대해 2주에 한 번씩 글을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말짱 도루묵

작성자대전충남인권연대 작성일20-11-03 10:23  |  229 읽음

글_오임술(민주노총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한 해 평균 산업재해로 2,400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빼앗기는 나라, 하루에 7명이 출근해서 퇴근하지 못하는 안녕하지 못한 나라, 떨어져 죽고, 깔려 죽고, 죽어간 자리에서 또 죽임을 당하는 나라, 촛불혁명으로 정권을 잡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 노동존중 사회를 만들겠다던 대한민국의 오늘입니다. 용광로에 빠져 숨진 청년 노동자를 애도하며 ‘그 쇳물 쓰지마라’는 노래 부르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더 참혹하게 노동자가 죽어야 언론에 등장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며칠전 체불임금 문제로 대전지방고용노동청에 찾아간 이주노동자 대리인은 근로감독관에게 황당한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노동자가 불법 체류자인지 아는가? 시종일관 사장을 옹호하는 듯한 감독관에게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자 관계자가 아닌 사람은 나가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임금체불은 불법체류자인지 아닌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지, 미등록 노동자일 뿐이며 체불임금은 등록 여부와 상관없이 근로감독관은 체불 여부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처리해 주어야 합니다. 또한 감독관은 다른 불이익이 없었는지 질문하고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최저임금법을 위반하고 있는 사장이 노동자에게 쓰라고 주었다던 밥솥값 환불 이야기를 하며 관계가 좋았을 때와 나빴을때의 문제로 접근했습니다.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대리인을 제외하고 잔뜩 움츠려 있던 이주노동자와 직접 연락해서 체불임금 진정 사건을 종료시켰습니다. 50년전 전태일열사가 수없이 노동청에 진정을 내었지만 좌절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단지 독재의 시기라 그런 것이었을까요? 어려운 한자투성이 근로기준법을 알기 위해 한문을 아는 대학생 친구를 원했던 바보 전태일과 한국어가 서툰 이주노동자가 한국인에게 도움을 원하는 것은 같습니다. 민주화 시대 노동청은 말짱 도루묵이 된 것일까요.!


국민입법청원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국회에 회부 되었습니다. 지난 19대, 20대 국회에서 故노회찬의원이 대표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한 번의 심의과정도 없이 폐기되었던 국회의 잘못된 시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더이상 노동자, 시민들의 목숨이 흥정의 대상, 정치적 놀음으로 농락당할 수 없기에 국민이 직접 법안을 상정했습니다. 


안전불감증을 말하면서도 근본적인 구조를 바꾸려 하지 않았습니다. 관행과 구조를 바꾸고, 책임과 권력이 있는 자들인 원청과 최고경영자에게 노동자 죽음의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노동자가 죽으면 기업도 망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사람의 생명과 위험 방지 의무를 소홀히 하거나 용인·방조하는 기업 문화 자체를 처벌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한 공무원에게도 책임을 묻는 법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입니다.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안전속도를 더 줄이고 노면표시를 확대하고 처벌을 강화합니다. 방역을 위해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처벌하는 나라에서 왜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한 예방 조치는 멈추어 있는 것일까요? 


국민소득 3만불의 시대, 영화 기생충이, BTS가 1등을 하고 손흥민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에서 우리는 ‘왜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가’ ‘우리는 왜 넘어진 자리에서 거듭 넘어지는가’ ‘우리는 왜 빤히 보이는 길을 가지 못하는가’ ‘우리는 왜 날마다 도루묵이 되는가’ ‘우리는 왜 날마다 명복을 비는가’. ‘우리는 왜 이런가’를 질문하고 있습니다.  수 많은 대책이 말짱 헛것이고 꽝이고 도루묵이 되지 않기 위해 시민들의 직접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원안대로 통과되어야 합니다. 


국제노동기구 설립 100주년이 지났지만,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보장하라는 ILO(국제노동기구) 핵심 협약 비준 요구는 한-유럽 FTA 분쟁에 의한 경제적 손실을 막기 위한 것으로 치환됩니다. 자본의 이익을 위해 ILO핵심 협약 비준을 추진하면서도 자본의 반발을 무마한다며 오히려 노동법 개악안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에게 조삼모사 말짱 도루묵의 환경이 되고 있습니다.


1970년 11월14일 전태일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 산화했습니다. 50년 후 2020년 현재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 400만, 노조할 권리가 사라진 250만 플랫폼. 특수고용노동자, 1인 자영업자가 수백만명의 시대입니다. 노동자들의 피땀과 정부의 지원으로 성장한 재벌가의 상속세를 걱정해 주는 사이 노동 존중 공약은 말짱 도루묵이 되고 있습니다. 당신의 노동은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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