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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만사는

추명구(대전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오임술(민주노총 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최예린(한겨레 기자), 이채민(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 임병안(중도일보 기자), 안선영(경기도교육청 장학사)님과 같은 지역의 현장 활동가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인권현안에 대해 2주에 한 번씩 글을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바이러스만큼 무서운 것들

작성자대전충남인권연대 작성일20-09-02 11:00  |  317 읽음

글_ 최예린(한겨레 기자) 


지난봄 나는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목이 부어올랐고 미열이 있었다. 온몸을 두들겨 맞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시간이 더 지나니 머리가 아팠고, 가슴도 답답했다. 가슴이 답답해 자다가 벌떡 일어나기도 했다. 뉴스에서 나오는 코로나 증상과 비슷했다. 회사에 보고한 뒤 밤늦게 대학병원 선별진료소를 찾았다. 긴 면봉이 코와 목구멍을 찔렀다. ‘진짜 코로나19에 감염된 거면 어떻게 하지’란 걱정에 코 찔리는 아픔은 크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사실 몸살 기운 때문에 어서 검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 눕고 싶다는 생각만 했던 것도 같다.

 진짜 두려움은 검사 뒤 자가격리 기간 찾아왔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그간의 내 동선과 접촉자를 떠올렸다. 여러 출입처들, 출입기자들, 출입처 직원들, 기관장들이 차례로 머리를 스쳤다. 남편의 동선과 아이의 어린이집까지 생각하니 아찔했다. 코로나19 취재를 한답시고 들락거리던 ‘맘카페’에 올라온 글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기레기 확진자’

 확진되는 순간, 신상이 털리고 온갖 조롱과 욕을 먹을 것이 두려워 잠이 오지 않았다. 나의 동선이 공개돼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정보가 돌아다니고, SNS에 올린 나와 가족의 사진이 캡처되고, 나와 남편의 회사에 피해를 주게 될 것을 걱정했다. 출입처인 기관들도 난리가 날테고, 최근 만난 지인과 취재원들에게도 면목이 없어지는 상황. 그런 상황들에 대한 걱정이, 병 자체에 대한 공포보다 컸다. 실제 많은 확진자가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차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안도했으나, 상황 종료는 아니었다. 목아픔과 몸살, 미열 등 증상이 여전했기 때문에 수일 뒤에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으면 2차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재택근무를 이어가는 상황이 계속됐고, 회사에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몸 상태를 상사에게 매일 보고해야 하는 상황도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차라리 아파도 아닌 척 일을 해야 했던 것일까 후회가 되기도 했다. 나도 이런데, 더 열악한 근무환경에 놓인 노동자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이 복잡해졌다. 1주일 뒤 받은 2차 검사에서도 음성이 나오고 며칠 뒤 열이 내리고서야 나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코로나19 해프닝을 겪은 뒤로 확진자 정보를 대하는 내 마음은 늘 무겁다. 몇살에 어느 동에 살고 어쩌다 감염이 됐는지, 어느 곳을 돌아다녔는지 정보가 적힌 기관 자료를 볼 때마다 ‘신상공개’의 두려움에 떨던 기억이 떠오른다. 확진자의 동선을 왜 더 자세히 공개하지 않느냐는 사람들의 비판에도 확진자의 정보는 최소한으로 공개돼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만큼 확진자에 대한 낙인도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대전시청 등 기관을 출입하는 기자들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온갖 난리를 목도하면서 지난봄 나의 걱정이 그저 ‘상상’은 아니었단 걸 확인한다. 비난과 조롱이 이어졌고, 뒷말이 무성했다. 밀접접촉자로 분류된 기자들도 자가격리에 들어갔고, 큰 불편을 겪었다. 그런 상황들을 보며 쉽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까발리는 세태를 생각했다. 

이제 누구라도 코로나19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바이러스만큼 무서운 것들로부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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