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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명구(대전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오임술(민주노총 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최예린(한겨레 기자), 이채민(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 임병안(중도일보 기자), 안선영(경기도교육청 장학사)님과 같은 지역의 현장 활동가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인권현안에 대해 2주에 한 번씩 글을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우리에겐 더 많은 ‘여성의 날’이 필요하다

작성자대전충남인권연대 작성일20-08-19 21:41  |  403 읽음

글_이채민(충남여성정책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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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_뉴시스


  코로나 19로 가슴 조리며 조마조마하게 하루하루를 살다보니 어느덧 8월이다. 8월은 ‘광복의 달’이자 ‘해방의 달’이다. 광복절(8월 15일) 만큼 기억해야 할 날이 있다. 바로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다. 1991년 8월 14일 고 김학순 선생님이 기자회견장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중 최초로 피해 사실을 공개증언한 지 십 수 년이 지난 2017년 8월 14일이 되어서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 국가 기념일로 제정되었다. 기념일 제정까지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투쟁이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소수(여성)의 목소리는 오랜 투쟁과 노력 끝에 겨우 기념된다. 


  8월의 또 다른 한 날을 기억하자면 바로 8월 11일이다. 40년 전 YH 김경숙 열사가 박정희 유신독재정권의 폭압적 진압에 목숨을 잃은 날이다. 가발공장으로 부를 축적했던 YH 는 자금 해외 유출, 횡령, 경영확장 과정에서 부도에 직면하자 직장폐쇄와 함께 여성노동자 187명을 전원 해고했다. YH는 부당한 해고를 알리기 위해 곧 야당당사 농성에 돌입한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경찰 1천여명을 투입해 진압하고 그 과정에서 당시 21살이었던 김경숙 열사가 목숨을 잃었다. 박정희 정권은 김경숙이 자살했다고 거짓된 발표를 했다. 


  이 투쟁으로 당시 최순영 지부장과 간부들 그리고 연대한 목사, 교수, 시인들이 국가보안법과 집시법으로 구속됐다. YH 사건이 불씨가 되어 부마항쟁이 일어났고 마침내 유신정권은 몰락하게 된다. 노동운동사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인 날이라고 생각하지만 안타깝게도 김경숙 열사를 기억하는 곳은 많지 않아 보인다.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이 날 역시 법정기념일로 지정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 노동민주화운동 기념일’ 이나 ‘여성 민주운동가 기념의 날’처럼 말이다. 


   역사가 언제나 힘 있는 지배계급이 그들의 의도에 따라 ‘씌어진다’ 라는 명제에 동의한다면 역사는 남성의 역사이기도 하다. 계급투쟁도 독립운동도 민주화항쟁도 그 속에 우리가 아는 여성들은 (몇몇을 제외하곤)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역사 속 여성들은 정말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기억하지 않으려 했고, 의도적으로 배제시켰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훈장삼아 정치에 입문한 이들이 널려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투쟁에 적극 참여했던 여성들은 투쟁에 참여했다는 사실 자체를 감추며 살아야했다. 민주화항쟁의 주역이었지만 어떻게 주류 역사가 여성의 이름을 지워왔는지 똑똑히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1)


  남성(성)이 기본값인 사회에서 여성들은 ‘남자’같이 용감하지 않기에 당연히 주인공이 될 수 없었고 ‘남자’같은 용감함을 가진 여성은 여자답지 않다는 이유로 배제되었다. 똑똑한 여성은 훌륭하지만 남성보다 똑똑해서는 안됐고(남자 앞길 막는 여자), 활발한 여성은 왈패같다라는 핀잔과 함께 정숙하지 않고 성적으로 문란한 여자로 취급받았다. 결국 '조신하고 순결한 여성'이어야만 했던 여성들은 남성들과 똑같이 투쟁했지만 같은 대우를 받지 못했다. 강렬히 투쟁했던 여성들은 꼭 그만큼 철저하게 본인들의 이름을 지워야만 했다. 이 지독한 가부장제는 여성이 만드는 역사를 허락하지 않았다. 


   어디 이뿐일까... 3·8 세계 여성의 날은 투쟁으로 시작, 여성의 정치·경제·사회적 업적을 범세계적으로 기리는 날이다. 1975년 3월 8일이 유엔에 공식 지정이 되기까지 70년 가까이 시간이 걸렸지만 한국에서 여성의 날이 ‘법정기념일’이 된 것은 불과 2년 전이다.​2) 우리나라는 유엔 지정 43년만에 제도화된 것이다. 글로벌 스탠다드로 보자면 한국은 성평등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 


  그래서다. 더 많은 (역사 속) 여성을 기억해야 한다. 국가 기념일로 이런 날은 어떨까 상상해본다. ‘가부장제 타파의 날’, ‘남성 권력에 희생당한 여성 추념일’, ‘근우회​3) 결성의 날’, ‘성평등 임금공시제의 날’, ‘여성 독립운동가의 날’, ‘ 여성 민주화운동 열사 기념의 날’, ‘미투운동으로 세상을 바꾼 날’, ‘돌봄의 날’ 등등... 어떤가? 인권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인구의 절반인 여성의 역사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역사는 반쪽의 역사일 뿐이다. 가려져왔던 더 많은 여성의 날이 제 날을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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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역사의 주체가 아닌 '성적대상(연애 아니면 결혼)'로만 사유하려 했다. 1988년 국회 광주청문회에 주암마을 버스 생존자로 증언한 홍금숙씨에게 유수호(유승민 의원의 부친으로 13,14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서슬퍼런 박정희 정권 때 시위를 주도했던 당시 부산대 총학생회장을 석방시킨 사람이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소신판결'의 아이콘이 된다.) 그 때 유수호 민정당 의원은 "결혼을 안했으면 경상도 남자랑 하라"는 제언(?) 조언(?)을 한다. (자세한 내용은 'sbs 스페셜 593회 - 그녀의 이름은'을 시청하길 권한다 ) 


2)세계 여성의 날은 유엔이 지난 1975년 여성에 대한 차별철폐를 요구한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범국민적 성평등 인식을 확산하고자 공식 지정했다.

(출처: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9951 )


3)근우회는 일제 강점기 중반에 조직된 여성단체다. 1927년 한국 여성운동가들이 좌우를 초월하여 설립한 단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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